'나는 어떤 사람일까?' 이 질문을 품기 시작한 뒤로 무의식 중에 나를 살피기 시작했다. 가장 많이 마주하는 건 상황에 따라 반응하는 감정의 움직임이었다. 꽤 많은 경우 '그냥'이라는 말로 일축돼버리는 감정들을 하나씩 해체해 보기 시작했더니 미세하게 다른 점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불편한 감정이 일어날 때 이유를 묻는 말에는 대체로 특별한 답을 하기보다 '그냥'이라고 답했다. 그 당시에는 정말 달리 할 말이 없었다. 그런데 여기서 한 발 더 들어가 보니 그 아래 여러 갈래의 이유가 잔가지처럼 뻗어있었음을 알았다.
자기 자신을 탐구하는 사람들은 나를 알면 알수록 양파껍질을 벗겨내는 것과 같은 기분이라는 표현을 종종 한다. 그만큼 내가 안다고 생각하는 나의 모습은 거울에 비친 것처럼 가장 표면적인 모습일 가능성이 높다. 한 겹씩 껍질을 벗겨내다 보면 이제 것 내가 알던 나와 점점 멀어지는 것을 느끼는 순간이 온다. 그 순간이 반가울 수도 있고 설렐 수도 있지만 생각보다 받아들이기 힘들 수도 있다.
과거에 나는 나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설명하기 어려운 모습조차도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라고 넘겼다. 그런데 지금 와서 돌아보면 잘 알지 못했기에 설명할 수 없었다는 걸 깨닫는다.
안다는 건 곧 표현할 수 있다는 뜻이다. 언어의 한계로서 표현의 한계를 경험할 때도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이 또한 진정 안다고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언어의 지경을 확장시켜 나가는 것이 나를 아는 것에 도움이 되며, 글쓰기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믿는다. 다른 무엇보다 내 언어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한동안은 '글을 쓰다 보니 나를 알게 되었다'는 말을 자신 있게 내뱉곤 했다. 지금 와 생각해 보면 낯부끄럽기만 하다. 그것이 틀렸다는 건 아니지만 오래도록 뚫지 못한 꽤 두터운 벽이 있다는 것과 그 앞에서 계속 서성이고 있었다는 걸 알고 나니 지난날의 자신감이 도리어 민망해졌다.
생각해 보면 이 또한 나를 알게 되었기에 할 수 있는 말이긴 하다. 그리고 지난 5년 사이 이만큼이라도 나아갈 수 있었던 건 멈추지 않고 글을 썼기 때문이다. 쓰면서 나를 바라보고 읽으면서 곱씹으니 그전보다는 곱절로 나에게 더 집중하게 된다.
결국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그래서 글쓰기를 시작해 보라는 것이다. 가장 정적인 자세로 가장 역동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건 글쓰기 만한 게 없다고 생각한다. 설령 지난날의 내가 안다고 믿었던 것이 민망해지는 경험을 할지라도 이 또한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고 나에게 더 깊어진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깨달음일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 다시 한번 글을 쓰면 나를 알 수 있게 된다고 말하고 싶다. 다만 과거와 다른 건 끝이 없는 긴 여정이 시작되는 것이라는 말을 덧붙이고 싶다. 그리고 그 여정은 생각보다 견딜만한 의미 있는 여정이라는 말도 함께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