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장 생활은 나에게 성장의 밑거름이 되었다.
나에게는 두려움이 있었다. 누군가 나에게 던지는 '왜?'라는 질문이 가끔 두려웠다. 첫 번 째 두려움은, 질문에 잘 답하지 못하고 있는 나를 마주하게 되는 상황이었고, 두 번째는 그런 내가 생각 없는 사람으로 비칠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상황과 기분'에 따라 감정상태가 달라졌던 과거의 나는 언제나 타인의 시선을 의식했다. '저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하는 생각이 항상 내재되어 있었다. 그 덕분에 나름의 처세술이 발달했고 사회생활을 할 때 상황 대처 능력 또는 순발력은 대체로 좋은 편이었다.
무엇이 나로 하여금 타인의 시선을, 타인의 생각을 더욱 신경 쓰게 만들었을까. 그 원인을 알고 싶어 20대 초반에 상담을 받아본 적이 있었다. 그때 들었던 내용은 어릴 적 다소 강했던 아버지께 주눅 들어있던 심리적 위축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었다.
집에서는 둘째였고, 아버지는 당신의 주장이 강한 편이셨으니 둘째의 타고난 생존 본능과 심리적 위축이 함께 만나 '자유롭지 못한 처세술'로 성장해 버렸다. 덕분에 대체로 주변 사람들과 원만하게 지냈지만 정작 ‘내가 진짜 원하는 것, 내가 바라는 삶, 나 자신’은 그동안 흐릿하게만 존재했었다. 그러다 보니 누군가 내 생각을 물어볼 때 종종 말문이 막혔던 것이다.
지금은? 그때와 비교해 본다면 정말 달라졌다. 물론 질문에 바로 답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질문을 받아들이는 나의 상태는 그때와 확연히 다르다. 나의 좋고 싫음이 분명해졌다. 그리고 나의 생각을 전함에 있어 굳이 상대방의 눈치를 보지 않는 편이 되었다. '할 말은 하겠다' 주의로 변화되었다.
떠오르는 일화가 있다. 회사 생활을 할 때 대표님과 편하게 대화를 나누는 편이었다. 짧게 설명을 더해보자면 지난 회사의 대표님은 직원들과 대화를 나눌 때 편하게 대해주셨다. 이 부분은 정말 좋은 점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면, 한 번은 회의시간에 업무 분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1:1로 대면했을 때야 편하게 대화를 나눈다 해도 회의 시간에는 분위기라는 것이 있으니 다소 경직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무엇보다 업무에 관한 안건이 나올 때면 언제나 분위기는 더 가라앉는다. 어떻게 답을 하느냐에 따라 누군가에게 본의 아니게 팩폭을 날리는 격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조심스러웠다.
당시 영업팀이었던 나에게 대표님 이하 부장님과 팀장님은 해외 업무 오퍼레이션과 사무 업무에 집중해보는 것을 제안하셨다. 해외 업무 오퍼레이션은 모든 해외 거래선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일원화하겠다는 의미였고, 사무 업무는 영업팀에서 병행하고 있던 일부 업무를 더 꼼꼼하게 진행될 수 있게 만들기 위해서 한 사람에게 일임해보자는 것이었다.
다들 말을 아끼거나 소극적으로 동의를 표하던 이때 나는 혼자 강력하게 반대했다. 몇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첫째는 당시 해외 업무와 국내 업무를 각 담당자들이 모두 진행하는 시스템이 회사에는 맞다고 생각했다. 냉정하게 생각했을 때 나는 우리가 일을 더 해야 한다고 여겼기에 각자 하고 있던 해외 업무를 일원화시킨다면 오히려 오히려 시간이 붕 뜰 것이라는 게 빤히 보였다.
규모가 작은 회사다 보니 굳이 대기업들이 취하는 분업화를 적용하는 것이 과연 효율적인가에 대해 많이 고민했다. 처음 일했던 회사가 대기업이었기에 나에게는 오히려 비교할 수 있는 경험 데이터가 있었고 이를 통해 판단했을 때 당시 회사는 진행하던 대로 계속 가는 것이 오히려 속도감 있게 업무를 진행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둘 째는 해외 업무를 일원화시켜서 모든 대외 업무를 한 사람이 집중적으로 마크하도록 하겠다는 것의 궁극의 경지는 사장님이었다. 즉 사장님이 커버하는 것처럼 일을 하는 것이 그 포지션 담당자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는 의미인데 보통 이런 역할은 팀장급에서 진행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왜냐하면 그만큼 경력과 경험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일을 나에게 맡긴다는 것은 자칫 그저 다른 사람들의 귀찮은 일들을 떠안는 꼴이 될게 뻔했고 나아가 앵무새처럼 그들이 하는 말을 그저 해외 거래처에 전달하는 역할밖에 안될 것 같아 보였다.
그래서 결론은?
결국 다 떠안았다. 그리고 이 일이 계기가 되어 난 더욱 이 포지션은 필요가 없는 자리라는 것에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첫 째, 영업팀의 불만 중 하나는 영업을 나가면서 해외 업무까지 병행하기에는 버겁다는 것이었다. 직접 해보니 대부분의 업무는 오전이면 끝났다. 때로는 한두 시간만 메일을 보내면 더 이상 할 일이 없었을 정도다.
둘째, 예상했던 데로 그저 앵무새 노릇을 하게 되었다. 여전히 굵직한 대외 업무는 사장님이 직접 핸들링하셨다. 그러다 보니 레귤러 한 수입 스케줄 정도만 컨트롤하였는데 그것마저 코로나가 겹치니 점점 줄어들었다.
셋째, 사무 업무 역시 마찬가지였다. 과장님이 진행할 때야 의문은 있었지만 직접 물어보지는 않았다. 그런데 역시 직접 해보니 그것도 집중하면 길어야 3시간 업무로 끝이었다.
이렇게 되니 정작 내 시간이 붕 떠버렸다. 오히려 나에게 독이 되어버린 것이다. 회사의 방침이 그러했으니 어쩔 수 없이 따라갔지만 결과적으로는 모두에게 전혀 동기부여도 긴장감을 가져다주지도 못한 어중간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뭐, 남는 시간 덕분에 자기 계발은 열심히 했다.
시간이 지나 퇴사할 무렵 나는 사장님께 다시 말씀드렸다. 이 시스템은 현재 회사의 여건과 맞지 않는다는 점에 대해서 말이다. 이후로야 어떻게 되었는지 소식을 접하지 못해 잘은 모르겠다만 중요한 것은 나의 내면의 변화이다.
과거에는 내 생각을, 내 주장을 분명하게 말하기보다는 주로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편이었다 그냥 그렇게 하는 게 모두를 위해 맞다고 받아들였었다. 그러나 지나고 나니 그건 결코 옳은 결정도 아니었고 중요한 것은 굳이 '모두를 위해' 나를 뒤로 할 필요도 없다는 것을 배운 것이다.
물론 팀워크에서 팀의 화합과 가치, 그리고 방향을 개인보다 우선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것과 이것은 엄연히 상황이 다르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다. 더 나아가 스스로 나 자신을 먼저 존중해주지 않으면 장기적으로는 팀 내에서도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전히도 '왜'라는 질문은 편치만은 않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두렵지 않다. 그냥 질문은 질문으로 받아들이고 답을 찾게 된다. 무엇이 나를 변화시켰을까 생각해보면 우선 내가 나를 존중해주기 시작한 것과 나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줬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 쌓인 작은 성취감들이 자기 효능감을 높여준 덕분이다.
두려움을 마주한다는 것은 언제나 부담스럽다. 그런데 제대로 마주해보면 그 안에 답이 있고 그 답은 결국 내 안에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러니 지금 내가 느끼는 두려움이 있다면 그것을 글로 기록해보고, 눈앞에 데려다 놓고 불편한 시간을 견뎌보자. 결국 답을 찾게 될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