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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나요?

- 퍼스널 브랜딩으로 경제적 자유를 꿈꾼다며 망설이기만 하는 분들께.

by 알레
2000년 11월. 대입 수능을 마친 후 특차 전형을 검토해보던 나에게 아버지는 스페인어를 공부해보길 추천해주셨다. 앞으로 비전이 있는 언어가 될 것이라는 이유였다. 한 마디도 몰랐던 스페인어였지만 그냥 선택했다. 왠지 그게 맞다고 생각했다.


2005년 10월. 스페인 어학연수를 떠났다. 4월에 군 제대 후 공백기가 있어 여행을 다녀온 후 복학하기 전에 전공 언어 공부를 할 겸, 어학연수도 다녀오고 싶었기에 부모님께 말씀드리고 떠나게 되었다. 그리고 이듬해 2월에 돌아왔다. 아버지는 학기를 얼른 마치고 사회생활의 경험을 쌓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씀하셨고 난 또 그게 맞다고 생각했다. 사실 나는 1년 정도 머물고 싶었었다.


2008년 3월. 대학원 석사과정을 시작했다. 당시의 꿈은 UN 산하 기관에서 일을 하는 것이었다. 학위가 요구되는 자리였고 난 그 길을 선택했다. 훗날 인생을 회고할 때마다 난 나의 대학원 시절을 가장 최악의 시절로 회고한다. 정말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이 세 가지 기억에는 공통점이 있다. 내가 진짜 바라는 것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이 부족했다는 점이다. 물론 스페인어 전공은 매우 만족스럽고 지금도 좋아하는 언어이지만 적어도 선택의 과정에서 나는 나에게 집중하기보다는 부모님의 말씀을 쉽게 받아들였다는 부분이 한편으로는 아쉬움으로 남는다.








요즘 들어 20대를 보면서 두 가지 상반된 감정이 생겨난다. 하나는 '정말 부럽다'이고 다른 하나는 '너무 안타깝다'이다. 서로 상반된 이 감정이 생겨나는 것은 내가 잃어버린 지난날에 대한 아쉬움이 고스란히 투영된 이유이기 때문이다.


부러운 측면은 매우 진취적이고 주체적인 삶을 사는 모습을 볼 때다. 다양한 소셜 플랫폼 덕분에 요즘 들어 특히 더 자주 접하게 되는 듯하다. 반면 안타까운 모습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취업준비에 올인하고 있는 경우를 보게 될 때 그렇다. 내가 20대를 보낼 때 보다 더 다양한 인생살이에 대한 사례들을 쉽게 접할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취업만이 유일한 길인 것처럼 한 우물만 죽어라 파는 모습을 볼 때면 나의 지난날을 답습하고 있는 듯 감정이 이입된다.


40대가 되어 인생 돌아보기를 참 많이 하게 되는데, 대체로 책을 통해 지난날을 대입해보곤 한다. 오늘도 책 속에서 한 문장을 만났는데 순간 흐름을 멈춘 채 멍하니 그 문장을 바라보게 되었다.



시키는 대로 따르기만 하면 생각할 필요가 없다
시키는 대로 따르기만 하면 무엇이든 얻을 수 있다는
'확실성'을 얻는 대가로 자신의 자유와 책임을
포기하는 것이다.

책 <린치핀> 중



대체로 나는 시스템에 순응하며 살아왔다. 시스템이라 하면 세상이 만들어 놓은 제도일 수도 있고, 직장 내 사칙일 수도 있으며, 부모님이나 권위자의 말이 될 수도 있다. 시스템은 나에게 언제나 안전지대였다. 나는 늘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사회에서 '좋은 사람'은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었다. 하나는 진짜 사람의 됨됨이가 바르다는 의미고 다른 하나는 순종적인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시키는 대로 따르고, 주어진 것을 완수해 낸다. 조직에서는 바람직한 사람이었을지 모르겠지만 시스템 밖으로 나와 홀로서기를 위해 고군분투 중인 지금의 나에게는 가장 독이 되어버린 습성으로 남았다.


요즘 매일 삶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있다. '시작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프리 워커로, 1인 기업가로 경제적 자유를 향한 첫 발을 내딛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며 도달한 결론은 가치를 증명할 만한 경험의 부재였다. 즉 다시 말하자면 사회적 증거의 부족이었다. 마침 이런 생각을 뒷받침해주는 글을 발견하였다.


아래는 현재 콘텐츠 메신저로 활동 중인 1인 사업가, 앤디슨님의 블로그에 올라온 글 <퍼스널 브랜딩은 왜 이렇게 어려운 걸까?>에서 캡처한 문장이다.


출처: 앤디슨님의 네이버 블로그 (https://blog.naver.com/hungryman11/222679997225)



퍼스널 브랜딩이 완성되어가는 과정을 '점, 선, 면, 입체적 모양'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그중 가장 첫 번째는 반복적으로 점을 찍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점은 '경험'을 뜻하는데 이는 머리로 배우는 지식이 아닌 몸을 체득화한 경험을 의미한다. 바로 이 부분이 나의 고민과 일맥상통한 부분이었다.


michael-dziedzic-vLmo8kAVVt4-unsplash.jpeg 점이 모여 선이 되고, 선이 만나 면이 되고, 면이 합쳐 쳐 입체적 모양을 이루어낸다.


다시 생각을 나의 과거로 시선을 돌려 보았다. '나는 어떤 경험을 쌓아왔나.' '나의 지난 9년 동안의 직장생활에서 나는 어떤 경험을 체득화 했나.' '나는 그것으로 누군가에게 어떤 가치를 제공해 줄 수 있는가.' 안타깝지만 답이 보이지 않았다.


전공 언어인 스페인어는 손을 놓은 지 이미 오래다. 업무 경력을 돌아보면 직무로는 해외영업팀 근무 경력과 업종의 특이성으로는 원예 회사 근무경력이 나름 존재하지만 가치를 창출해 낼 만큼 주도적으로 일을 하지 않았음이 삶을 뒤늦은 후회로 밀려왔다.


참 때늦은, 의미 없는 후회지만 수동적으로 살아온 나의 지난 세월 속에 나도 모르게 스며든 습성이 내 나름의 점은 찍었지만 탄착군이 형성되기에는 너무 중구난방으로 찍혀있거나 그렇지 않으면 너무 희미해서 점이 잘 보이지 않는 경험이었다는 것을 이제 깨닫게 되었다.






'이제라도 깨달았으니 새롭게 점을 찍어가면 되지 뭐'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로해보지만 다시 무언가를 파고든다는 것이 막막하기만 하다. 하필 육아로 인해 근근한 에너지로 살아가는 요즘이라 더 애달프기만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야 하는 것이 지금 나에게 주어진 숙명 같은 과제라면 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지 않겠나, 마음을 다져본다.


비록 후회스러운 지난날의 기억을 회고하며 뼈아픈 마음을 기록해 보았지만 앞으로가 기대되는 것은 보다 밀도 있는 시간을 만들어갈 자신이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의 삶이 시행착오였다면 앞으로의 삶은 시행착오를 통해 집중적으로 치고 나가는 삶이 되리라 기대해본다.


지금의 내가 처한 상황은 결코 나에게 우호적이지만은 않지만 그래서 오히려 방향을 찾기 위해 온 몸의 세포가 협업 중이다. 이제 남은 건 내 의지고 실행하는 것뿐이다. 지난 20년 동안 자유와 책임을 포기한 대가를 치르며 살아왔다면 앞으로의 20년은 가치 있는 사람으로 살아갈 것이다. 여전히 가다 서다를 반복하고 있지만 그래도 중요한 흐름은 계속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여전히 시작을 망설이고 있다면, 시작하기에 경험 자산이 부족하다고 느끼며 한탄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면, 함께 다시 시작을 선언해보는 것은 어떨까. 혼자보다는 함께 가는 것이 더 힘이 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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