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고 나서야 알았다. 쓰지 못하는 날이 얼마나 처참한지.
하루 종일 누워있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누워있는 것조차 편치 않았다. 허리, 목, 등, 관절마다 쑤셨다. 잠이 쏟아져 어쩔 수 없이 눈을 감았지만 그마저도 온전하지 않은 상태. 꼬박 이틀을 앓았다. 다시는 아프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이토록 간절했던 적이 또 있었나 싶을 만큼.
아직 다 낫지 않았다. 그래도 이 밤이 다 가기 전에 한 자라도 써보겠다는 마음으로 자리에 앉았다. 누워있는 동안 그렇게 쓰고 싶었는데, 막상 앉으니 뭘 써야 할지 모르겠다. 당황스럽다. 쓰고 싶다는 마음과 쓸 수 있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였나 보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유가 있었다. 한참 쓸 말이 넘쳤던 시절이 있었다. 지나가다 마주치는 모든 상황이 글감으로 다가왔고, 순간을 놓칠세라 메모장을 켜고 부지런히 기록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러지 않았다. 쓰는 것에 익숙해지자 메모하지 않아도 머릿속에서 꺼내면 됐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게 실수였다. 점점 흰 바탕을 바라보는 시간이 길어졌다. 마치 전성기를 지난 가수가 목도 제대로 풀지 않고 라이브 무대에 오르듯, 쓰고 나서도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건지 헷갈리는 글을 써재꼈던 날도 있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굳이 감추지 않는 건, 글쓰기에 대해서만큼은 양심적이고 싶기 때문이다.
쓰지 못했던 이틀이 가르쳐준 건 단순했다. 궁리하지 않으면 쓸 말이 사라진다는 것. 글감은 저절로 오는 게 아니라 온몸의 감각을 열어두어야 비로소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걸 잊고 있었다.
그래서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글감 수집부터. 메모장을 다시 켜고, 지나치던 순간들을 다시 붙잡기로 했다. 그건 단순히 소재를 모으는 행위가 아니다. 다시 온몸의 감각을 글쓰기로 영점 조준하겠다는 선언이다.
아프고 나서야 건강의 소중함을 안다고들 한다. 글쓰기도 다르지 않았다. 쓰지 못하는 날이 있어야 비로소 쓸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당연하지 않은 일인지 깨닫게 된다. 당연한 것들은 대부분 잃고 나서야 보인다.
오늘 이 글이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아직 몸이 다 낫지 않은 채로 자리에 앉아한 자를 눌러쓴 것. 그것만으로도 오늘은 충분하다. 다시 쓰는 사람으로 돌아왔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