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 날의 기록

by 알레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 날, 그냥 멍하니 있어봤다.


그런 날이 있다. 뭔가를 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몸이 말을 듣지 않는 날. 오늘이 딱 그런 날이었다.


미드를 봤고, 음악 작업을 했고, 몇 페이지 독서를 했고, 스레드에 몇 자 끄적였고,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이따 코칭도 예정되어 있다. 그런데도 하루를 알차게 보낸 것 같지 않다. 잔잔했던 마음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일렁이기 시작한다.


머릿속에선 소리 없는 음성이 되풀이된다. "뭐라도 해." "하루를 이렇게 보낼 순 없어." 그런데 오늘따라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마음이 내키지 않는 것 같다. 이렇게까지 저항할 땐 그냥 두는 게 차라리 낫다.


열거한 것들을 보면 딱히 아무것도 안 한 건 아니다. 다만 집중하지 못했다는 게 편치 않은 느낌을 만든다. 생각해보면 하루에 얼마나 많이 했는지보다 한 가지를 하더라도 얼마나 깊이 몰입했는가가 만족감의 크기를 결정하곤 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어떤 것에도 온전한 몰입을 경험하지 못했다.


이유는 명확하다. 누적된 피로감이 바닥에 깔린 상태에서 공동체 분쟁의 일이 설상가상으로 하루의 발목을 잡았다. 이럴 땐 차라리 밖에 나가 걷거나 뛰면 도움이 될 텐데, 오늘은 그마저도 옴짝달짝하기 싫은 상태다.


이런 날엔 책을 읽어도,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드라마를 봐도 머릿속에 글감이 남지 않는다. 오늘의 빌런 역할을 하는 사건에 대해 신랄하게 써 내려가면 가장 좋겠지만, 다소 민감한 부분도 있고 굳이 부정적인 기운을 나누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의 감정 상태를 그냥 있는 그대로 기록하고 있다.


뭐든 남는 게 없는 것 같은 시간 속에서도 글은 써야 하니까.


뭐라도 하지 않으면 온종일 불안감이 올라오는 걸 보니, 여전히 존재의 의미를 행동에서 찾으려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늘 괜찮다고 말하면서도 그저 그런 하루를 보내는 나 자신을 다 용납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마냥 퍼져 있었던 것도 아닌데. 오랜 세월 마음 깊이 뿌리를 내린 사고방식은 이처럼 뽑아내기가 어렵다.


그래도 멍하니 앉아 있는 덕분에 불안감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애써 외면하거나 다른 무언가로 채우려 하지 않고, 그냥 거기 있게 뒀다. 불안은 생각보다 조용했다. 소리를 지르거나 달려들지 않았다. 그냥 거기 있었다. 어쩌면 불안이 원하는 건 해결이 아니라 그냥 바라봐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언제쯤에야 아무것도 하지 않고 흘려보내는 하루조차 평온할 수 있을까. 아니, 그런 날이 오긴 올까. 모르겠다.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다. 차라리 낮잠을 잘 걸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