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오늘이 가장 평온했다.
빵 몇 조각을 먹고, 약을 먹고, 미드를 봤다. 그게 전부였다. 그런데 이상하게 오늘이 가장 평온했다. 분주하지도 않았고, 뭔가를 해냈다는 성취감도 없었다. 그냥 조용히 흘러간 하루였는데, 마음이 편안했다. 왜일까.
지난주에 아이가 아프기 시작했고 뒤이어 나도 앓아누웠다. 아직 완전히 회복한 건 아니어서 아침부터 피로감이 남아있었다. 오늘은 무리하지 않기로 했다. 틈틈이 보던 미드 몇 회차를 내리 봤다. 보다가 혼자 울컥하기도 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다 보고 나니 오히려 피로감이 사라진 느낌이었다.
생각해 보니 미드를 찾게 되는 때는 공통점이 있다. 현실 감각을 일깨우고 싶을 때, 삶의 주도권을 쥐고 어떻게든 나아가려는 에너지가 필요할 때. K드라마와는 다른 종류의 긍정 에너지가 거기 있다. 국내 드라마는 감정적으로 소모되는 경향이 있고, 선이 분명하지 않은 관계의 얽힘이 내내 이어지다 보니 보고 나면 말끔하지 않은 여운이 남을 때가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내와 함께 봐야 하기 때문에 혼자 앞질러 갈 수 없다. 이럴 땐 미드가 제격이다.
드라마를 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삶이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는 것 같을 때, 나는 늘 조급해졌다. 1분 1초라도 더 갈아 넣어야 할 것처럼 스스로를 몰아붙였다. 그런데 그렇게 한다고 결과가 확연히 나아진 적은 없었다. 몸과 마음이 지친 나만 남았을 뿐이다. 이럴 땐 차라리 템포를 늦추는 게 낫다. 하루를 이완시키는 선택이 하루를 버리는 게 아니라, 오히려 하루를 버는 것일 수 있다.
퇴사 후 가장 어려웠던 것도 바로 이것이었다. 내 삶의 진정한 주도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 조급함은 늘 선택의 순간에 삐끗하게 만들었다. 감정에 치우친 선택과 후회를 숱하게 반복하고 나서야 비로소 멈추는 법을 배웠다. 이게 진짜 내가 원하는 건가, 숨을 고를 수 있게 됐다.
오늘 중요한 힌트를 하나 발견했다. 하루의 주도권이란 단순히 내가 무엇을 할지 선택하는 것만이 아니다. 어떻게 보내도 괜찮다고 나 자신에게 허락해 주는 것. 그것까지 포함해야 진정한 주도권이다.
이제야 모든 것이 선명하게 꿰어 맞춰진다. 퇴사 후 나답게 살고 싶다는 갈망, 새벽 기상에 대한 갈증, 혼자만의 고요한 시간에 대한 집착. 그것들은 전부 하나의 뿌리에서 나온 것이었다. 나에게 주도권이 있다는 감각을 되찾고 싶었던 것이다.
우리 내면에는 늘 익숙한 방식대로 살아가길 강요하는 소설가가 존재한다. 엄청난 스토리텔러이고 각색의 귀재라서, 정확히 내가 어떤 말에 멈춰 설지 알고 그 부분만 집중 공략한다. 그런데 무모한 한 걸음을 실제로 떼어본 사람은 안다. 정작 그 소설가가 들려준 이야기는 대부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진짜 나를 존중한다는 것은 거창한 일이 아니다. 오늘 내가 내린 선택이 진짜 나로부터 시작된 것이라면, 그것을 믿어주는 것이다. 타인에게는 쉽게 건네는 그 존중을, 나 자신에게도 한 번쯤 건네보자.
갓생도 좋다. 하지만 가끔은 감각하며 살아가는 하루도 필요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 같은 오늘이 어쩌면 가장 나다운 하루였을지 모른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나다운 삶의 방향을 알고 있는 존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