돕고 싶다고 말하면서, 정작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타인을 도울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편하고자 하는 마음이 늘 앞섰다. 삶의 의미를 꽤 자주 떠올리는 사람치고는 부끄러운 고백이다.
오늘 오랜만에 봉사활동에 다녀왔다. 참여하고 있는 성경 읽기 모임에서 집 근처 봉사자를 모집한다는 글을 보고 신청했다. 한 가지 솔직하게 말하자면 집을 나서는 순간까지 살짝 후회했다. 아직 컨디션이 다 돌아오지 않은 탓에 그냥 집에서 쉬고 싶다는 마음이 밀려왔다. 그럼에도 나갈 수밖에 없었다.
낯선 장소, 처음 보는 사람들. 나 혼자 얼음 상태로 있었다. 다들 서로 처음 보는 사이라는데 어쩜 그렇게 대화를 잘 나누는지. 단체에서 나눠준 김밥을 먹으며 아내와 카톡을 하다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이쪽저쪽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를 한 번씩 듣다가 다시 밥을 먹기를 반복했다.
가끔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내향인이라고 하면 절대 믿지 못하겠다는 반응을 보인다. 과거 MBTI 검사를 떠올려 보면 내향과 외향이 반반으로 나왔으니 거짓말은 아니다. 다만 조금만 긴장이 풀리면 외향인이 활개를 칠 뿐, 언제나 둘은 공존한다.
이쪽저쪽으로 왁자지껄한 가운데 침묵하며 앉아있다 보니 작업 시간이 됐다. 오늘은 150명의 자립 청년들에게 보낼 물품을 포장하는 일이었다. 여럿이 분주하게 움직이다 보니 공기가 점점 후끈해졌다. 맨투맨을 벗고 반팔 차림으로 작업을 이어갔다.
마트에서 테트리스하듯 물건을 담던 경험과 매주 재활용 쓰레기를 정리하던 경험이 십분 발휘되는 순간이었다. 배송 박스에 담을 건 가지런히 담고, 물건 박스들은 잘 포개어 정리하는데 모든 게 자연스러운 연결 동작으로 이어졌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3~4시까지로 계획된 작업이 2시쯤엔 택배 상차까지 모두 끝났다.
땀을 흘리고 돌아오는 길에 보이는 풍경이 사뭇 다르게 다가왔다. 오전에 걸어온 같은 길인데, 담기는 마음은 정반대였다. 가슴이 뭉클했다. 이어폰에서 들려오던 찬양 가사가 평소와 다르게 마음에 박혔다.
"위대한 일 이 땅에, 더 놀라운 일 이 도시에 이뤄지리."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마음이 생겼다. 갈수록 삶은 어려워지고, 꿈꾸기조차 버겁게 살아가는 이 시대에 그보다 더 어려운 생계를 감당해야 하는 이들에게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길 바라는 마음이 올라왔다.
마음 한편에선 불편한 목소리도 올라왔다. '네가 지금 누구를 도울 때야? 너부터, 네 가정부터 챙겨야지.' 그동안 돕고자 하는 마음을 늘 뒤로 미루게 만든 것도 바로 같은 목소리였다.
그런데 오늘 겪어보니 알겠다.
거창한 활동도 아니고 드러나는 것도 아니었다. 오늘 내게 주어진 시간의 일부를 150명에게 보낼 물품을 포장하는 데 썼을 뿐이다. 그런데 마음이 꽉 채워지는 걸 느꼈다. 마음이 풍요로워지자 더 이상 그 불편한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어쩌면 도움이란 내가 충분해진 다음에 줄 수 있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오히려 반대다. 작은 것이라도 내어주는 순간, 마음이 먼저 채워진다. 오늘이 그걸 가르쳐줬다.
작업장을 나오기 전 봉사자 리스트에 이름을 적어두고 나왔다. 몇 번이라도 더 참여해보고 싶었다. 이 시간을 통해 어떤 틀 안에 머물러 있던 나로부터 조금 더 자유로워질 것 같다는 기대감이 생겼기 때문이다.
감사하다는 말이 절로 흘러나오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