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지 못한 하루는 저물수록 무겁다

by 알레

글을 쓰지 못한 하루는 저물수록 무겁다.


긴 시간 만남의 일정이 있었고 수많은 대화를 나눴지만, 글감으로 건져 올릴 만한 것은 거의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지극히 일상적인 대화나 다소 민감한 사적인 대화에서 어떻게 글감을 건져야 할지 아직 잘 모르겠다고 말하는 게 맞다.


오래도록 글을 쓰고 꾸준히 책을 출간하는 작가들을 보면 그저 신기하다. 그들의 언어에는 특별함이나 난해함이 없지만 표현은 늘 새롭다. 일상을 바라보고 사유하며 살아가지만, 손끝을 거쳐 나온 글은 더 이상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 모두의 오늘이 된다. 얼마나 오랜 시간 생각하고 되새김질하면 그런 글을 써 내려갈 수 있을까. 상상만으로도 허리가 뻐근해진다.


집에 돌아와 자판을 두드렸지만 3문단을 넘기지 못했다. 쓸수록 감정에 치우치는 게 느껴졌고,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희석되어 갔다. 이럴 땐 차라리 멈추는 게 낫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은 건, 멈춤이 가져올 여파를 알기 때문이다.


아이가 하원하고 나면 글쓰기에 몰입할 수 없다는 걸 알기에 마음이 조여왔다. 어떻게든 시간을 만들어 보려 했지만 집중력이 분산된 상태로는 여간 쉽지 않았다. 슬슬 아내와 아이 눈치를 보며 방으로 들어왔다.


다행히 오늘은 아내가 구원투수가 되어줬다. 아이를 재워주겠다고 했다. 시간이 생겼다는 안도감에 잠깐 숨을 돌렸다. 그러면서 유튜브 쇼츠를 열었고, 눈 깜짝할 새 1시간이 흘러버렸다. 글을 쓸 때 틀어놓을 음악을 고르려다가 궁금한 콘텐츠 하나를 열어봤던 게 화근이었다. 사람 마음이 이처럼 간사하다. 자괴감이 밀려오는 순간이었다.


그렇다고 하루가 다 끝난 건 아니니, 마지막 스퍼트라도 해보자는 마음으로 다시 자판 앞에 앉았다.


강물이 흘러가듯 삶도 매 순간 흘러간다. 아이를 등하원시키고, 집안을 정리하고, 저녁을 준비하고, 아이와 놀아주다 씻기고 재우는 것. 유튜브 쇼츠를 보고 드라마를 보는 것. 이런 것들은 크게 애쓰지 않아도 몸이 저절로 반응하는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반면 새벽 기상, 글쓰기, 독서, 콘텐츠 작업은 다르다. 굳이 시간을 내어야만 하고, 흐름을 거슬러야만 가능한 것들이다. 더 큰 에너지가 필요하다.


오늘은 하루의 대부분을 흘러가는 대로 보냈다. 이대로 끝마쳤으면 편했겠지만, 하루의 끝에서 흐름을 거스르려 하니 넘어야 할 장애물이 참 많다. 모자란 시간부터, 평소라면 인식하지 못했을 주변 소음까지 신경을 곤두세운다.


결국 오늘 하루도 내가 선택한 하루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나니 예민해진 신경이 조금 가라앉는다.


루틴이란 특별한 날을 위한 게 아니다. 오히려 오늘처럼 흘러가는 대로 살고 싶은 날,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을 버텨내기 위한 것이다. 만약 새벽 기상만 잘 이어갔어도 오늘은 달랐을 것이다. 이미 아침에 충분히 해냈다는 감각이 있었다면, 유튜브 쇼츠 1시간이 이렇게까지 자괴감으로 돌아오지는 않았을 테니까.


흐름을 따라가는 삶은 편안하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방향은 흐름의 아래가 아닌, 내가 선택한 곳이다. 그 방향을 지켜내는 것이 루틴이고, 루틴을 지켜내는 것이 결국 내가 원하는 삶으로 가는 가장 조용하고 확실한 방법이라는 걸 오늘 하루가 또 한 번 가르쳐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