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 없는 성장은 없고, 성찰 없는 성숙은 없다

by 알레

욕망에는 고삐가 필요하다.


이 세상에 욕망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 누구나 사익을 추구하고 싶은 마음이 있고, 그 마음은 꽤 강력한 동력이 되기도 한다. 사익 추구가 잘못되었다는 게 아니다. 다만 내가 처한 위치에 따라 그것이 큰 흠결이 되거나 위법의 행위가 될 수도 있다면, 그 어느 때보다 긴장을 늦추면 안 된다. 욕망은 워낙 힘이 센 야생마와 같아서 잠시라도 고삐를 느슨하게 쥐는 순간 낙마할 수 있기 때문이다.


리더의 자리는 고독한 자리라고 한다. 때로는 고독을 넘어 외롭기까지 할 정도로, 그 자리는 홀로 견뎌야 하는 시간이 기본으로 깔려있다. 아무리 친근하게 대해도 리더와 팀원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어쩌면 그래서 리더에게 더 큰 욕망의 충동이 일어날 수도 있겠다는 상상을 해본다. 특히 그 자리가 일종의 성역에 가깝다면 더욱 그럴 것이라는 조심스러운 추측도.


세상일이 그렇다. 좋을 땐 다 좋은 법이다. 암묵적 합의 하에 절차를 간소화하고 넘어갔거나, 미처 인지하지 못하고 지나쳐도 좋을 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안타깝지만 문제가 터지고 나면 그 시절의 경과는 손바닥 뒤집듯 책임 추궁의 요인으로 탈바꿈한다. 억울하다고 아무리 외쳐도 판관의 눈은 오직 적법성 유무만 판가름할 뿐이다.


법과 원칙을 들이대면 세상살이가 각박해 보일 때가 있다. 특히 '정'이 곧 '신뢰'이고 법과 원칙보다 강하게 작용하는 한국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해외 업체와 계약할 때 토씨 하나로 옥신각신하다 보면 뭐 이렇게까지 하나 싶지만, 훗날 분쟁이 생기면 오히려 합의가 쉽다. 반면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 한마디로 진행되는 계약 관계는 한 번 어그러지는 순간 치열함을 넘어 치사하고 치졸한 싸움으로 번진다.


오래 머물렀던 한 공동체 내부의 싸움이 공식적으로 끝났다. 승소했음에도 개운하거나 후련하지 않은 건 그 시간 동안 너무 큰 걸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서로에 대한 신뢰와 사랑. 어쩌면 이 싸움에는 진정한 승자가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싸움의 결과와 상관없이 이 시간은 양측 모두를 일깨우는 시간이었길 바란다. 시스템이 부재한 공동체에서 중심에 서있던 리더가 자리를 떠날 경우 어떻게 표류하는지 여실히 볼 수 있었다. 나 또한 내게 주어진 역할에 전력투구했는가 반문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수술대에 오르기 전, 연고와 진통제로 아픔을 가라앉힐 수 있었을 때 멈췄더라면 어땠을까. '대체 왜 그러는 건데'라는 억하심정이 아니라 '우리가 놓치고 있는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라는 성찰의 시간이 깊었더라면 어땠을까. 그랬더라면 최악으로까지 치닫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픔 없이는 성장할 수 없고, 성찰 없는 성숙은 없다. 시간은 되돌릴 수 없고 상황은 이미 주워 담을 수 없게 됐다. 쓰디쓴 경험이었지만 이것만은 말할 수 있다. 욕망의 고삐를 쥐는 것은 나 자신을 억압하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내가 지키고 싶은 것을 끝까지 지켜내기 위한 가장 조용하고 단단한 방법이라는 것을. 부디 서로에게 반면교사의 교훈으로 남길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