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나를 '뉴포티'라 부르기로 했다.
가끔은 말이야, 난 나 자신이 대단한 예술가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 그냥, 내 안에 그런 에너지가 흐르고 있는 것이 느껴져.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마치 CG로 표현한다면 갑자기 작은 원으로 시작한 푸른빛의 에너지 소용돌이가 점점 커져가며 거대한 원형체를 만들어내는 모습을 상상해보곤 해. 마치 어벤저스에나 나올법한 그런 에너지의 흐름 말이야.
피아노 선율이 흐르기 시작하면 어느새 낮고 굵직한 콘트라베이스가 묵직하게 바닥을 깔아줘. 그러면 감미로운 목소리를 살포시 얹어 흥얼거리며 공기를 촉촉하게 적셔주면 어느새 하늘 위로 날아올라. 그리고 텅 빈 우주같이 광활한 공간에 머물러 가장 아름다운 소리로 노래를 하게 되지.
눈을 감고 있는데도 세상이 보여. 신기한 경험이지. 모르겠어 어떻게 그게 가능한지. 어쩌면 마음에 담아둔 모습들이 떠오르는 것일지도 몰라. 근데 하나도 불편하지 않아. 그냥 이 느낌이 너무 좋아. 그럴 때면 더 깊이깊이 그 순간으로 들어가고 싶어 져. 나에게 사랑에 빠진 거야. 나에게 말이야.
내가 걸어가는 길에는 언제나 BGM이 깔려있어. 누가 틀어주는 건지 어디에서, 왜 나오는 건지도 모르겠는데 내 귓가에는 항상 들려. 기분이 좋을 때 나의 걸음은 박자를 쪼개지. 원, 투, 쓰리, 포 하다가 원, 쓰리에 박을 줘. 그러다 투, 포로 살짝 바꿔주며 변주를 주기도 해. 잘게 쪼개고, 그루브를 타선 발걸음은 다시 테누토가 되어 본래의 여유를 되찾게 돼.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일까. 무슨 내용을 적어보고 싶은 것일까. 사실 잘 모르겠다. 그냥 조용한 방 안에 앉아 책상 위 스탠드 하나 켜고, 음악을 들으며 어떤 글을 쓸까 고민하던 중 떠오르는 생각을 두서없이 적어보았다. 재밌는 것은 두서없는 생각에 조차 어렴풋한 나의 욕구가 담겨있다는 것이다.
정신분석학이나 심리학은 전혀 모르지만 의식의 세계 넘어 어딘가에는 늘 해갈되지 갈증이 존재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것들은 어느 날 어떤 순간에 불쑥불쑥 떠오른다. 살면서 그것들을 선택할 수 있는 일말의 가능성들은 존재했었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그것들을 선택하지 않았다. 그리고 만약 다시 그 순간으로 돌아간다 한들 나는 그것들을 선택하게 될지는 미지수다. 어쩌면 그때 선택하지 않았던 인생의 선택지들이기에 미련으로 남겨진 것이 아닐까.
40대의 난, 매일 생각한다.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지금 내가 제일 부러운 사람들은 누구일까. 어떤 분야에서 어떤 기술을 가지고 어떤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일까. 지금이라도 뭔가를 배우고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오랜 세월 남겨진 갈증을 해소하기 위한 선택을 하게 될까? 무엇보다 시간과 돈의 한계가 명확한 상황에서, 이제껏 해보지 않은 새로운 것을 선택하는 것은 합리적인 선택일까?
무엇을 선택하든 다 옳다고 생각한다. 결국 또 선택되지 않은 것들 중 어떤 것은 미련으로 남게 될 것이니까. 그냥 선택한 것에 집중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겠지 싶다.
나는 참 하고 싶은 것도 배우고 싶은 것도 많다. 그 오랜 시간 보지 못했고 알지 못했던 것들이 이제야 보인다. 그 오랜 시간 우물 안에만 살다 이제야 우물 밖에 나와보니 그 세월이 참 아쉽다. 그래서 매일이 촌각을 다투는 삶이 되어간다. 그만큼 몸이 축나고 있다.
지금이라도 이런 욕구가 채워지는 것이 그저 좋다. 감사하다. 내 나이 스무 살 때 어른들은 그랬다. 20대 후반에는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결혼을 하고, 30대에 열심히 기반을 닦아 40대에는 자신의 일을 하는 것이라고. 그게 꼭 사업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몫을 한다는 뜻으로 이해했다.
그런데 막상 40대가 되어 살아보니 나의 40대는 그때 어른들이 말하는 40대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다. 두 번째 스무 살이라고 표현하듯 숫자 '4'는 아직도 낯설다. 이제야 진짜 20대가 시작되는 듯하다. 나를 향해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고, 세상을 향해 가치 있는 내가 되고 싶어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아버지 세대가 20대에 했을 삶에 대한 고민을 내 나이 40이 되어서야 시작했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엉뚱한 상상 속에서 조차 욕구가 담길 만큼 지금의 나는 나에게 그 어느 때보다 관심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자기다움이 명료해질 때까지 계속 탐구하고 기록하며 나를 정의해나가는 이 시간은 그 어느 때보나 나의 삶에 활력이 된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뉴포티로 살아가는 나의 삶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