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Vol.14] 목요일 라이프 매거진
[관성]
1. 물체가 밖의 힘을 받지 않는 한 정지 또는 등속도 운동의 상태를 지속하려는 성질. 보통 질량이 클수록 물체의 관성이 크다.
2. 사람의 말이나 행동에 버릇처럼 굳어진 습성.
<출처: 네이버 국어사전>
물리학에서 이야기하는 관성의 법칙. 그것이 일상의 습관에서도 존재한다는 것을 이미 오래도록 느끼며 살아왔다. 이제는 별로 새로울 것도 없는 이야기이지만 굳이 그것을 다시 꺼내어 보는 것은 지난 한 주 동안 내 안에 작용한 관성을 꺼내어보기 위함이다.
지난 한 달은 브런치 글쓰기와 독서에 열을 올린 한 달이었다면 4월에 접어들면서 쉬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거짓말 같이 모든 것을 멈춰 버렸다. 결정적인 계기는 가족 여행이 있었지만 한 달의 시간을 달려왔기에 여전히 그 관성이 남아 있을 것이라 여기며 잠시 쉬는 것도 괜찮겠지라고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내 안에 존재한 더 큰 관성은 '아무것도 하길 싫음'의 상태였음을 알게 되었다.
그동안 나는 꾀나 부지런하고 무의미한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러나 내 인생에 '하기 싫음' 또는 '그냥 쉬고 싶음', 또는 '편하게 살고 싶음'의 상태는 질량이 너무나 커서 관성도 그만큼 크다는 것을 이제야 인정하게 된다.
목요진 열네 번째 이야기는 삶의 관성에 대한 것이다. 삶에는 참 다양한 관성이 존재한다. 행동에도, 생각에도 관성이 작용한다면 과연 우리는 관성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잘 쉬는 것도 자기 계발이라는 주제로 열세 번째 목요진을 기록한 이후 한 주 동안 어떠한 생산성 활동을 하지 않았다. 직장 생활을 할 때와는 달리 직장을 졸업하고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전부이다 보니 비생산성의 시간이 지속되다 보면 점점 불안과 함께 약간의 우울감마저 찾아온다.
생각이 가라앉기 시작하는 것이 먼저인지 지속적 비생산성 활동으로 인한 체력 저하가 먼저인지 정확하게는 판단할 수 없지만 서로는 참 유기적으로 움직임에는 틀림없다. 무엇이 먼저이든 하나가 시작되면 자연스레 나머지 하나가 곧 따라온다.
거의 1년 가까운 시간 글쓰기를 지속해왔고 틈틈이 독서와 콘텐츠를 소비하며 기록을 남기는 시간을 보냈다. 그만큼 이제는 삶의 습관이 길들여졌다고 생각했기에 조금은 마음 놓고 쉬어보았다. 그런데 막상 쉬고 나니 또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듯 보이는 나의 모습을 보며 더욱 마음이 가라앉아버렸다. 그러는 사이 SNS를 통해 누군가는 계속 성장하는 모습을 보게 되고 또 다른 누군가는 꾸준히 무언가를 생산해내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러면 점점 나 자신이 무능해 보이기까지 하다.
이쯤 되니 내 안에 부정적 생각의 관성이 얼마나 센지 놀랄 정도다. 삶을 바라보는 관점은 대체로 긍정적인 편에 속하지만 어느 순간 불안과 무기력이 찾아오면 부정적인 생각은 한동안 등속 운동을 한다. 외부의 어떤 힘이 작용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4월이 시작되고 다시 글을 쓰고 책을 읽기까지 거의 2주 가까이의 시간이 흘렀다. 잘 쉬기 위해 잠시 멈춰 섰던 걸음이 어쩌다 보니 불안으로 변질되어 오랜 시간을 멈춰 서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제라도 관성의 법칙에 따른 등속 운동이 멈춰 서게 돼서 그나마 다행이다.
지금부터는 다시 반대편으로 최대한 생각의 추를 옮기는 일을 시작할 차례다. 다시 차곡차곡 시간을 쌓아 지난 2주와는 다른 방향으로 관성 운동을 하기까지 부지런히 걸음을 옮겨보려 한다.
일상생활에 작용하는 관성들은 생각보다 많다. 앞서 짧게 언급한 생각의 관성들도 더 잘게 쪼개 보면 상당히 세부적인 요소들로 나뉨을 알게 된다. 가령 부정적인 생각 중에는 불안감, 우울감, 무기력감, 자신감 없음, 낮은 자존감 등이 있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긍정적인 생각들도 세부적으로 나뉠 수 있는데 부정이나 긍정 모두 사람마다 더 세게 작용하는 것들은 다르다.
지난 한 주간 나에게 주로 작용했던 관성은 불안감과 무기력감에 대한 관성이었다. 며칠 동안은 정말 날이 선 채로 하루하루를 보냈을 만큼 그 힘의 작용은 매우 컸다. 그런 힘의 작용을 전환시키기 위해 몇 가지 방법을 선택해보았다.
첫째로는 의도적으로 집 밖으로 나가는 방법이었다. 아이의 어린이집 등원 시간과 하원 시간에 잠시 집을 나서는 것 외에도 아이를 유모차에 태워 근처 공원으로 꼬박꼬박 산책을 나갔다. 집콕 생활을 시작한 이후 대부분의 부정적인 생각들이 시작되는 것은 매일 반복되는 생활의 반경이 지극히 한정적이라는 것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직장 생활을 할 때 집은 가장 편안한 장소였지만 하루 종일 집에 있다 보면 집은 감출 수 없는 생활 소음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는 공간이 된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가족들에게는 감추고 싶은 불안의 감정들 조차 온전히 감출 수 없는 상황이 되면서 오히려 부정적인 생각이 해소되지 못한 채 쌓이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럴 때는 역시 집이 아닌 다른 공간에 머무르는 시간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두 번째로는 꺼내놓는 것이다. 이 부분은 사람의 성향마다 다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던가 아니면 글로써 나의 감정을 표출해 내는 방법을 사용한다. 일전에도 언급한 적이 있지만 부정적인 생각은 자라나는 속도가 매우 빠르다. 그래서 감춰둔 채로 견디려 하면 오히려 걷잡을 수 없이 커져버린다.
반면 대화나 글을 통해 꺼내놓으면 신기하게 더 이상 자라나지 않거나 확장의 속도가 매우 더뎌진다는 것을 경험하였다. 그래서 가까운 지인 중에 제일 공감을 잘해 줄 수 있는 사람에게라든가 아니면 공개된 플랫폼 또는 자신만의 메모장에 기록해 두는 것은 언제나 좋은 효과를 가져다준다.
세 번째로는 콘텐츠를 집중적으로 소비하는 방법이다. 이 시기에는 강의 콘텐츠보다는 동기부여 콘텐츠나 아니면 복잡한 생각을 잠시 덜어주는 콘텐츠들이 좋다. 개인적으로는 음악을 좋아하다 보니 플레이리스트 콘텐츠를 여러 개 구독하고 있는데 거의 매일 매 순간에 음악을 켜 두었던 것 같다. 음악 외에도 사진 촬영에 관심이 있어서 사진과 관련된 콘텐츠를 무작위로 열어 보았다.
세 가지로 관성을 다루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해보았다. 이 세 가지 방법의 공통점은 부정적인 생각을 만들어내는 근원적인 요소로부터 나를 멀어지게 만들 수 있는 것들이라는 점이다. 즉 관성의 법칙에 따라 등속 운동을 하려는 생각에 외부적인 힘을 작용하여 멈출 수 있게 만들기 위한 방법인 셈이다.
단순히 멈추기 위함에 그치기보다는 이왕이면 다시 긍정의 방향으로 선회할 수 있는 단계적 에너지를 서서히 채워 나가는 것이라면 더 좋다. 관성이라는 것이 결국 반대 방향으로 향하기 위해서는 급 선회가 아닌 U턴을 하듯 부드럽게 돌아서기 때문이다.
누구나 각자만이 느끼는 삶의 관성의 영역이 있을 것이다. 좋은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면 가능한 한 멀리, 지속적으로 힘이 작용할 수 있도록 에너지를 불어넣어 주는 것이 좋다. 반대로 부정적인 방향이라면 서서히 제동을 걸 수 있도록 단계적으로 조치를 취해줄 필요가 있다.
삶을 살아가는 동안은 결국 어느 쪽이든 관성이 작용하기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지금 나에게 작용하고 있는 것이 어느 쪽으로 향하고 있는 것인지 민감하게 캐치하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그것들에게 적절하게 대응해 주는 것이 내 안에 관성을 잘 다루는 방법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익숙하지 않을 때는 어려울 수밖에 없겠지만 조금씩 익숙해지면 마치 밀려오는 파도에 몸을 맡기며 파도를 타는 서퍼들처럼 어느 방향의 관성도 능수능란하게 다룰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왕이면 좋은 방향으로 향할 때 오래 지속될 수 있도록 생각과 마음의 힘을 길러보는 것은 어떨까.
설령 부정적인 방향으로 관성이 지속된다 하더라도 너무 불안해하지는 말자. 낙담의 골짜기는 결국 다시 우리를 성장시켜주기 위한 응집된 에너지가 되어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