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를 부여잡기 위한 몸부림이 필요하다.
'윙~' 귓가가 울린다. 조금 더 컸다고 이제 제 고집이 많이 늘었다. 아이는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 모든 일에 짜증이다. 아이의 짜증은, 시작되는 순간부터 끝나는 시점까지 소음이 동반된다. 그만큼 좀 더 강한 피로감을 유발한다.
퇴사 후 거의 9개월가량 전업 육아 아빠로 살고 있다. 이제 18개월을 살아가고 있는 아들의 성장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축복이고 아빠로서 행복한 삶이다. 그러나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는 아들은 마치 '나'라는 세계의 균형 역시 무서운 속도로 파괴시키는 존재가 돼버린 듯하다. '파괴'라는 표현이 다소 격해 보이긴 하지만 다른 표현이 또 있을까 싶은 심정이다.
성경에 보면 '밀알'에 대한 비유가 나온다. 밀알은 땅에 떨어져 썩어져야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킨다. 아빠의 삶은, 부모가 된다는 것은 밀알이 되는 것과 같다. 나를 죽이지 않으면 새로운 생명을 온전하게 살피기 어렵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내가 다 죽어버리면 나의 삶을 지켜갈 수 없기에 적정선을 찾아 매일 고뇌한다.
어찌 되었건 육아는 피로를 동반한다. 무엇을 하든 끊임없이 에너지를 소모해야 하기에 하루의 컨디션에 따라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는 현격히 차이가 생긴다.
요즘 들어 불쑥 과거의 어떤 장면들이 스쳐 지나간다. 아내와 둘이 떠났던 발리의 조용한 리조트. 그보다 더 오래전, 군 제대 후 형이랑 둘이 떠났던 미국 여행, 대학생 시절 자유를 만끽했던 스페인 어학연수. 이 모든 장면이 떠오르는 공통된 순간은 한바탕 육아 쓰나미가 지나간 후 식탁에 앉아 초점을 잃은 눈으로 어딘가 멍하니 바라볼 때다. 밀려오는 피로는 과거의 어느 평온했던 시절로, 에너지가 넘쳤던 시간으로 나를 데려다 놓는다.
생각해보니 출퇴근 시간만으로 왕복 2-3시간을 들였던 직장 생활을 할 때도 피곤하다는 말을 매일 입에 달고 살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피곤하기는 매한가지라고 생각하니 삶과 피로는 동전의 양면처럼 늘 함께하는가 싶다.
직장생활의 피로와 육아의 피로에 대해 문득 생각해본다. 다른 사람이야 어떨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 자신에 대하여 스스로는 직장생활의 피로를 조금 더 인정해주는 듯싶다. 일단 무엇을 하고 돌아왔건 직장이라는 곳에 정해진 시간 동안 머물다 왔으니 말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월급이라는 분명한 결과물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반면 육아의 피로는 인정해주는 듯하면서도 은연중에 온전히 인정해주지 못하는 부분도 있다. 하루 종일 일을 하는 직장인과 달리 아이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학교에 다니게 되면 물리적인 공백이 생긴다는 점에서 그렇다. 전적으로 내가 나 자신에 대해서 그렇다는 말이다.
가끔 이런 사연을 들을 때가 있다. 집에서 육아를 전담하는 아내에게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이, 집안이 잘 정리되어있지 않거나, 저녁 준비가 되어 있지 않는 모습을 보고, "아니, 당신 오늘 뭐했어?!"라고 핀잔을 주었다는 누군가의 사연을 들을 때면 같은 남자지만 전업 육아를 하는 입장에서 순간 화가 치밀어 오른다. "그럼 댁이 육아를 하던가!" 하는 내면의 외침이 감정이 실려 나도 모르게 실제로 입 밖으로 살짝 내뱉어지기도 한다. 그만큼 현실 육아는 쉬는 게 사실 쉬는 게 아닌 경우가 많다.
분명 아이가 없는 시간 동안 책도 읽고, 운동도 하고, TV를 볼 때도 있는데 마음에는 왜 이리 여유가 없는 것인지. 아이는 분명 4시에 하원인데 12시가 넘어가면서부터 알 수 없는 조임이 시작되는 것은 아직 내가 초보 아빠라서 일까. 마치 오래전 사회 초년생 시절에 일요일마다 개콘이 끝날 때면 우울해지곤 했던 것과 비슷한 느낌인지도 모르겠다.
경제활동이 전부는 아닌데, 경제활동이 나 스스로의 노동을 인정해주는 하나의 주요 변수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 조금은 서글프기도 하다. 사실 아이를 돌본다는 것은 그 이상의 정신적, 육체적 에너지를 소모하는 행위인데. 아무래도 경제활동을 하고 있지 않은 가장의 부담 때문이겠지만, 그럼에도 일단 나부터 생각을 좀 고쳐먹어야 할 듯하다. 돈은 못 벌고 있어도 육아는 그 자체로 숭고하다!
육아의 피로감에 대해 주저리주저리 써보긴 했지만 사실 본질적으로 하루가 피곤한 가장 큰 이유는 내 삶의 습관에 더 많이 기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피곤하면 그냥 일찍 자면 된다. 그러나 일찍 잠들지 못하는 이유도 늘어놓자면 줄줄이 인 것도 이해가 되기에, 역시 적절한 균형점을 찾는 게 필요하다.
개인적으로는 직장 생활을 할 때보다 육아를 한 뒤로 보상심리가 더 강해졌다. 하루의 끝자락에 마치 밀린 것들을 해치우듯 무언가를 시작한다. 그러다 보니 잠자리에 드는 시간이 새벽 3-4시가 기본이 돼버렸고 매일의 일상이 피곤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그 시간 동안 채워지는 만족감이 있기에 여전히 쉽게 삶의 습관을 바꾸진 못하고 있다. 입버릇처럼 피곤하다고 하면서도 말이다.
사실은 마음의 헛헛함이 가장 큰 이유라는 것을 알고 있다. 내 안에 강하게 밀려오는 보상 심리는 어쩌면 내가 아빠가 아닌 나로 보내는 시간에 대한 간절함 때문일 것이다. 아이를 재우고 난 늦은 시간부터 하는 모든 행위는 '아빠'라는 페르소나를 벗어버린, 오롯이 '나'라는 원형의 시간이기에 움켜쥔 손을 펴기란 참 어렵기만 하다. 머리로는 일찍 잠들어야지 하면서 여전히 깨어있는 것은, 그래도 이 시간이 있기에 또 하루를 견디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육아를 하며 날 견뎌내기 위해서는 어쩌면 '엄마', '아빠'가 아닌 '나'로 살아가는 시간이 적절하게 채워져야만 가능하지 않을까. 어떤 방법으로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