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름에 비 오는 날을 특히 싫어합니다.
여름은 여러모로 나에겐 피곤한 계절이다. 내내 습한 날씨와 에어컨이 없으면 보낼 수 없는 더위는 언제든 피하고 싶어 진다. 누군가에겐 여름휴가가, 또 누군가에겐 길어진 태양만큼 하루를 불태우는 계절일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에겐 아니다.
난 개인적으로 여름과, 여름에 비 오는 날을 싫어한다.
다른 계절과 달리 여름엔 유난히 숙면을 취하지 못한다. 아무래도 대기의 습도가 높아지는 것이 원인인 듯하다. 에어컨으로 적정 온습도를 유지해 놓고 잠이 들지만 예약 시간이 지나 작동이 멈추고 나면, 내 몸은 서서히 열기를 느낀다. 그래서인가, 서서히 깊은 잠에서 수면 위로 올라오는 시간이면 어김없이 찌뿌둥한 기분으로 잠에서 깬다. 시간을 확인해보면 대략 6시 즈음. 이내 다시 잠이 들지만 눈을 뜰 때면 머리가 맑지 않다.
숙면을 방해하는 요소는 물론 여러 가지다. 육퇴 후 늦은 시간까지 사부작사부작 거리는 삶의 습관이 문제일 수도 있고, 늦은 저녁 식사가 문제일 수도 있다. 아니면 육퇴 후 아내랑 넷플릭스를 보면서 마신 맥주가 원인일 수도 있고, 이것도 아니면 그냥 걱정을 한가득 담고 살아가는 내 심리상태가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오늘은 그냥 날씨를 탓하고 싶다. 자꾸 모든 걸 내 문제로 여기다 보니 나 자신이 너무 문제덩어리로 보이니 그냥 그렇게 넘어가려 한다.
아. 그러고 보니 오늘의 감정 날씨가 우울인 가장 큰 이유가 있었다.
요즘 애기가 열이 나기 시작했다. 지난주에도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열이 나서 가정보육을 했었다. 다행히 목요일에 열이 내려 어린이집에 보냈는데, 주말을 지나면서 또 열이 나기 시작한 것이다. 주말 폭염을 지나며 에어컨 바람을 너무 많이 쐐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다른 문제가 있는 건지, 혹여 코로나에 걸린 건 아닌지 걱정이 되어 월요일 댓바람부터 병원에 가보았다.
코로나도 아니고, 요즘 유행한다는 수족구도 아니고, 그냥 애기 몸에 이상 증상이라고 해봐야 비염이 전부였다. 원인을 모를 아이의 열. 그 와중에 다행인 건 아이가 축 쳐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정 안 되겠을 땐 해열제를 먹인다. 잠시 뒤 약효가 도는지 땀을 흘리며 열이 좀 내린다. 그러면 아이도 좀 살 것 같은지 조금 전보다는 더 활발하게 움직인다. 그러나 이것도 잠시 뿐이다.
애기 몸에서는 열이 나고, 밖에는 비가 내려 습하고, 여전히 날은 더워 20도 후반에서 30도를 넘나드는데 에어컨이 고장나버렸다. 안 그래도 지난주에 냉기가 돌지 않아 급하게 기사님을 불러 냉매를 충전했지만 결국은 교체시기가 온 것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럼에도 이번 여름은 좀 버텨주길 바랬는데, 3일밖에 안 지나 도루묵이 돼버렸다.
덕분에 집 안 온도가 27-28도라고 나온다. 그 덕에 애기는 열이 더 오르는 것 같다. 답답하다.
결국 아내와 시원하게 에어컨을 질렀다. 지금 우리 형편에 정말 통 큰, 아니 어쩌면 간 큰 결정인지도 모르겠지만 하루가 멀다 하고 어디로든 피신을 가고 싶은 상황이라 달리 방법이 없었다.
소득은 없는데 빚만 늘어간다. 여름, 장마철 그 자체로 불쾌지수가 높아지는데 아기가 아프니 마냥 불쾌할 수도 없다. 흘려버려야 할 감정을 욱여 삼켜버리니 몸이 피로하다. 그리고 마음은 우울해진다. 통상적으로 나의 우울감은 몸의 피로와 맞물려 찾아오는 경향이 있다. 우울감에 집중하면 끝을 모르고 내리꽂는 롤러코스터처럼 감정이 미끄러져 내려간다. 그래서 이럴 땐 그냥 '아, 나 좀 피곤하네'라고 별것 아닌 듯 치부해버린다.
육아 세계는 참 변수가 많다. 아이의 감정도, 아빠의 감정도, 외부의 환경도, 또 집안 환경도, 심지어 에어컨의 고장도, 예측할 수가 없다. 가끔은 뭔가 착착 들어맞는 듯 하루가 보람찰 때도 있지만 대체로는 하루가 부족하다. 그 와중에 아이가 아파 가정보육을 하는 요즘 같은 날엔 아무 생각 없이 하루가 흘러간다.
그나마 오늘 이렇게 글을 쓰는 것은, 글로 풀어내지 않음 결국 우울의 롤러코스터를 타게 될 상황 이어서다. 육아 아빠인 나에게 글쓰기는 어찌 보면 심폐소생술 같은 것이다. 나를 다시 숨 쉬게 해주는 유일한 행위. 그것이 글쓰기다. 지금 당장 쓰지 않음 안될 것 같으 초조함이 밀려와 아무 말이라도 써야겠다는 심정으로 써 내려가는 중이다.
내일은 해가 뜨려나.
내일은 애기 열이 내리려나.
내일은 좀 더 나은 기분을 하루를 알차게 보내려나.
무엇 하나 장담할 순 없지만, 그래도 셋 중 하나 꼭 이루어졌음 하는 것은, 제발 우리 아기 열은 좀 내렸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