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처럼 자유롭게 살아가길.
육아를 시작하고 나는 종종 결핍을 느꼈다. 무엇일까. 고민해보니 온라인 상에서 잘 나가는 듯, 부지런히 살아가는 듯 보이는 누군가를 볼 때면, 현재 나에게는 도무지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에 대한 불만족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럴 때면 불쑥 이런 생각이 가득 찬다.
'나도 나다운 삶을 살고 싶다.'
'나도 내 거 하면서 자유롭게 살고 싶다.'
육아맘, 육아 대디와 대화를 나누다 보면 쉽게 공감하게 되는 부분이 '나를 잃어버리는 듯하다'라는 것이다. 누구의 엄마, 아빠로 살아가다 보면, 때론 부모라는 책임과 체력 저하로 인해 내가 점점 사라져만 가는듯한 감정상태에 빠지기도 한다.
최근 나의 지난 메모들을 훑어보니, 대부분의 내용이 불안과 절망이었다. 어딘가 씁쓸했다. 다른 무엇보다 경제적인 기반이 충족되지 못한 채 살아가는 현실에서 오는 두려움은 여전히 시한폭탄처럼 내 마음을 옥죈다. 이런 상황에서 SNS를 보다 보면 나만 빼고 다들 잘 나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만 뒤처지고 있고 다들 전력질주를 하며 달려 나가는 느낌이다. 정신을 차리기 위해 스마트폰을 내려놓지만, 이미 나의 마음은 깊은 수렁에 빠져버렸다.
나는 다시 생각에 잠긴다.
'나다움을 발견하면, 나를 더 잘 알면, 나도 내 콘텐츠를 만들고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어!'
그러다 문득, 또 나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보았다.
'아니, 그럼 지금은? 나답게 살고 있지 못하다는 거야?'
나는 쉽게 답을 내리지 못했다.
19개월 된 아들은 요즘 부쩍 재롱둥이다. 제 멋대로 웃다가 바닥을 구르다가, 누워있는 아빠에게 올라타 말을 타듯 마음껏 뛰고 논다. 열심히 장단을 맞춰주다 보면 어느새 아이는 엄마 아빠의 스마트폰이 생각났는지 갑자기 식탁 위를 기어 올라가려 한다. 위험하니 잡아 내리면 좀 전까지 깔깔거리던 아이는 순간 꼬마 악마로 돌변한다.
오만 짜증과 소리를 지르며 눈물을 흘린다. 아이가 좋아하는 다른 장난감으로 달래 보지만 풀리지 않는다. 결국 아이를 안고 소파에 앉아 스마트폰으로 제 모습을 촬영한 영상을 보여준다. 순간 다시 평화가 찾아온다.
디지털 네이티브라서 그런지, 19개월밖에 안된 아기는 벌써 검지 손가락을 펴 스마트폰을 능숙하게 다룬다. 화면을 위아래로 움직이면서 자기가 좋아하는 영상을 골라 본다. 한참 재밌어하다 어느 순간 또 아빠에게서 벗어나 자기 장난감을 가지고 놀기 시작한다.
점점 자기 의사표현이 분명 해지는 아이를 보고 있으면 시간이 참 빠르구나 싶다.
약속이 있어 다녀오는 길에 유튜브 영상을 보았다. '나다움'에 대한 영상을 하나 둘 찾아보았다. 몇 가지 중 유난히 기억에 남는 콘텐츠가 있었다. 그 영상에서는 나답게 사는 것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었다.
나답게 사는 것은 심오한 것이 아니라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스스로에게 정직해야 되고 용기가 있어야 한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내 아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이들은 참 자유롭다. 아직 길들여지지 않은 아이는 부모의 선택에 강요받기를 완강하게 거절한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 원하는 것에 솔직하고 그것을 쟁취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얻어내면 좋아서 웃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울고불고 난리를 친다.
나는 아이의 모습에서 한 가지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어쩌면 우리는 태어났을 때 가장 나다운 모습으로 시작하지만 성인이 되어가면서 점점 그 모습을 감추며 살게 된 것은 아닐까. 부모나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에 순응하며 살다 보니 그것이 왜 좋은 것인지도 모른 체 그저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도 모르게 누군가에게 선택의 주도권이 넘어간 체 긴 시간을 살다 보니 정작 내가 선택해야 할 때 혼란스러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저마다 상황은 다르겠지만 부모가 되는 것은 용기 있는 선택을 한 것이라고 믿는다. 삶의 많은 부분을 내려놓아야 하는 선택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럼에도 그 선택을 할 수 있는 용기를 냈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가장 자기 다운 선택을 한 것이다.
육아는 언제나 고되고 채워지는 것보다 쏟아내는 것이 더 큰 삶이다 보니 마음의 평화가 깨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소위 현타가 자주 찾아온다는 소리다. 그럴 때면 유난히 '나답게 살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밀려온다. 그러나 그것은 그저 자기 연민에 속는 것이고 내가 선택하지 않는 삶에 대한 환상을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나는 육아를 하고 있다고 해서 나답지 못하게 살아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엄마, 아빠로 살아가는 것 또한 나다운 삶을 살아가는 것이라 믿는다. 그저 이전에 살아오던 방식과, 그리고 주변에 자녀가 없는 친구들과 다른 모습일 뿐, 이 또한 결국 나의 삶이니 말이다.
우리는 충분히 나에게 허용된 시간 안에서 아이처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엄마, 아빠라는 페르소나를 입고 살아가는 중에도 '나'의 바람대로 무언가를 선택할 수 있다. 그러니 혹 연민의 감정에 갇혀있다면 거기에서 나와 진짜 나다운 삶을 살아가길 바란다.
아이처럼 자유롭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