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함께 성장 중이에요

- 결국 부모는 아이를 통해 자신을 바라보게 된다.

by 알레
세상의 빛을 처음 마주한 지 벌써 곧 300일이다. 빛 가운데 태어난 아가는 빛의 속도로 성장한다. 아가의 성장 속도를 느낄 때면 지나온 시간들에 아쉬움이 남는다. 나름의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 아빠가 쓰는 육아 기록 중


제주 한 달 살기 중 어느 날이다.

서울에서였으면 맘 편히 세탁기를 돌렸을 아이 옷가지를 제주에서는 혹여나 하는 마음에 손빨래를 하고 있다. 쭈그리고 앉아 아이의 옷을 주물 락 거리다 보니 순간 밀려드는 감정이 있었다.


'어느 날 이 아이도 더 이상 아빠의 손을 필요로 하지 않겠지'


갑자기 깊은 아쉬움이 밀려왔고 어느새 지나버린 9개월의 시간이 서운해지기까지 했다.






오랜 기다림에 만난 아이였다. 1월에 태어난 아가는 정말 작게만 느껴졌다. 초보 아빠가 다 그렇듯 아이를 어떻게 안아야 할지, 어떻게 씻겨야 할지 엄두 조차 나지 않는 그런 작은 생명체를 선물 받았다. 육아는 아빠보다 엄마의 고생이 더 크다지만 아빠는 또 아빠 나름 발을 동동 구르느라 분주했다.


100일의 기적을 경험하기 전까지 짧은 간격으로 먹이고 재우고 씻기는 과정은 마치 부모가 되기 위한 훈련소에 입소한 느낌이었다. 이전까지 삶의 습관을 모두 뜯어고쳐야만 하는 시간은 고되기만 했다. 솔직한 고백이지만 그나마 출근해 있는 시간이 나름의 휴식시간이었다.


아이가 통잠을 자기 시작한 이후부터 육아로 인한 피로감은 한결 나아졌다.


여전히 목에 힘도 없고 제 몸 하나 거느리지 못하던 시기에는 누워서 먹고 싸는 게 전부였다. 엎드려 놓으면 힘겹게 목을 들어 올리려 애쓰는 모습이 안쓰럽기까지 했다. 시간이 지나 조금씩 근육이 발달하고 소근육을 사용하기 시작한 아가에게 주변은 신기한 것들 투성이었다.


머리 위에 모빌을 잡아당기기 시작하고 손에 잡히는 것은 모두 입으로 가져간다. 목을 들고 허리를 세우고 싶어 용을 쓰는 아가의 손을 잡아주면 얼른 허리를 세운다. 언제 그만큼 컸는지 싶을 정도로 옷이 작아지고, 표정이 다양해졌다. 이름을 부르면 고개를 돌려 눈을 마주칠 때면 신기하고 감격스럽기만 하다.


이제 10개월이 다 된 아가는 자아가 발달하여 제멋대로다. 기저귀를 갈 때, 옷을 갈아 입힐 때, 이유식을 먹일 때, 분유를 먹일 때, 카시트에 앉힐 때, 장난감에 태울 때, 많은 순간들에 아빠랑 힘겨루기를 한다. 상황 판단 능력도 발달하여 어지간한 눈속임은 속지도 않는다. 기는 속도는 어찌나 빠른지 현역 군인들과 낮은 포복 시합을 해도 밀리지 않을 것 같다.


그냥 매일매일을 부대끼며 살아왔을 뿐인데 지나온 시간을 세어보니 곧 300일이다.

믿어지지 않는다.






지금은 퇴사 후 아가랑 함께 제주에서 한 달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여전히 아가는 아빠와 엄마의 도움이 없으면 스스로 제 몸 하나 건사하지 못하는 존재다. 그런데 생애 주기를 보면 이 시기는 정말 태어나 1년 남짓이다. 스스로 걷기 시작하고 말하기 시작하면 이미 독립을 위한 여정이 시작된다.


주변에 아이를 키우는 집을 보면 그나마 엄마하고는 친구처럼 지내는 모습을 많이 본다. 아빠는 대부분 찬밥이다. 그렇게 되고 싶지 않지만, 그래서 아가에게 더 마음을 쏟아붓지만 아이 마음을 누가 알 수 있을까.


설령 아이와 아빠의 사이가 서먹하지 않은 관계일지라도 아이가 아빠의 손길을 뿌리치는 순간을 상상하면 아이의 자립을 지지해주기보다 서운함부터 밀려들 것 같다.


손빨래를 하며 이런 생각을 하고 앉아있는 나도 어쩔 수 없는 아들 바보인가 보다. 제 멋대로 굴면 단전부터 끓어오르는 짜증을 느끼곤 하지만 어느새 곤히 잠든 아가의 모습과 아침에 일어나 미소를 던지는 아가의 얼굴을 보는 순간 모든 것을 잊는다. 힘든 기억을 망각하게 만드는 순간 덕분에 육아를 할 수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지난 시간에 아쉬움을 느끼다 보니 그래서 매일이 소중하다. 아이는 어떻게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주어진 매일에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따지고 보면 하루 중 고작 몇 시간이지 않나 싶다. 지나간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 법이니 그저 감사하며 아이에게 줄 수 있는 만큼 마음을 다하기로 했다.

- 아빠가 쓰는 육아 기록 중





오늘도 제주의 밤은 깊어 간다.

나를 더 깊이 발견하기 위한 마음으로 떠난 제주 한 달 살기에서 아이를 통해 나의 마음을 바라보게 된다.

아빠는 아이와 함께 성장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