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행복을 놓치고 싶지 않아 고민의 밤은 길어진다.
어느새 실업급여의 마지막 달이 되었다. 안 그래도 먹고살 고민이 한가득이었는데 근래에 그 고민이 지구를 뚫고 나갈 기세다. 퇴사 후 벌써 9개월. 그 사이 뭐라도 돈벌이를 찾을 줄 알았지만 여전히 방법을 찾지 못했다. 아이와의 행복이 쌓여갈수록 근심도 깊어진다.
'이 행복을 놓치고 싶지 않은데...'
가끔 다시 어디든 취직해야 하나 생각할 때면 9개월 동안 아이에게 맞춰진 하루의 루틴을 깨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강하게 올라와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전업 육아 아빠로 살다 보니 아이에게 고마운 것은 시시때때로 아빠를 찾는다는 것이다. 솔직히 아주 조금은 귀찮을 때도 있지만 아이가 찾아줄 때나 찾아주는 것임을 잘 알기에 이 시간이 너무나 소중하다.
어린 시절 나의 아버지는 저녁에만 집에 있는 존재였다. 지금도 대부분의 아빠들이 가족을 건사하기 위해 저녁에만 함께하는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내 아이에게 나는 아침에 등원시켜주고 오후에 데리러 가며, 잠잘 때까지 함께하는 아빠로 있어줄 수 있다는 것이 가장 뿌듯하다.
아이가 태어나고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아이의 성장을 차곡차곡 기록하고 싶었다. 가끔 사진들을 꺼내 본다. 불과 한 달 전보다도 훌쩍 커버린 아이를 보면 성장 속도에 섭섭한 마음이 밀려올 때가 있다. 반면 시간이 흐르면서 아이의 표정이 또렷해지고 전에 없던 장난기가 묻어나는 것을 볼 때면 혼자 피식 거리기도 한다. 가끔은 세상모르고 잠들어 있는 아이의 요상한 자세들이 너무 귀여워서 조심스레 만지작 거리기도 한다.
육아는 행복만이 전부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이 자리할 때가 더 많다. 정신없는 하루의 육퇴를 할 때면 나의 하루를 보상받고 싶은 마음이 밀려오기도 하지만, 아이가 태어나 지금까지 지나온 시간 동안 전반적으로 남겨진 감정은 행복이다. 그래서 더 나의 삶에 간절해진다. 출퇴근하지 않고 아이와의 시간을 함께하며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삶 말이다.
다른 삶을 선택하게 만든 가장 큰 동기는 아이였다. 물론 시대적 흐름도 있었지만 아이의 존재는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방식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들었다. 때론 '좀 더 신중했어야 하나'하는 생각이 밀려와 잠을 못 이룰 때도 있다. 그럴 때면 방법을 찾기 위해 더 나 자신을 태워버린다. 잡념을 끊기 위해 필사를 하기도 하고 글을 쓰기도 한다. 방법을 찾다 찾다 찾지 못해 결국 다시 월급쟁이가 되는 한이 있다 해도 방법 찾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최근 아이는 구사할 수 있는 단어의 종류가 하나씩 늘고 있다. 이제는 엄마, 아빠를 넘어 아지(할아버지), 자동차, 토끼, 멈머(강아지), 꼬꼬(닭 또는 땅 위에 있는 비둘기), 뉴나(누나), 앉아, 빼(장난감 모자 빼 달라고 할 때), 오예, 물, 포코(포클레인)까지 할 줄 안다. 발음이 안되거나 하기 싫은 것은 '음음'으로 통일한다. 더 신기한 것은 이 모든 단어들을 적절한 상황에 구사한다는 점이다.
내 아이의 성장을 기억할 수 있다는 것은 부모로서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특권이다. 나는 나의 유아기가 떠오르지 않지만 가끔 나의 부모님이 그 시절을 말씀해주실 때면 재미있다. 나의 기억 속에는 남아있지 않은 나를 부모님의 기억을 통해 만날 때면 왠지 잃어버린 나를 찾는 듯한 기분이 든다. 아이의 시간을 글로, 사진으로, 그리고 영상으로 기록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언젠가 아이가 기록들을 열어볼 때 어떤 표정을 지을지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삶은 무엇이든 거저 주지 않는다. 지금의 난 결과적으로 지난 몇 개월 동안 아이와의 행복을 쌓기 위해 생계의 비중을 상대적으로 내려놓은 셈이 돼버렸다. 그러나 이제는 그 균형점이 다시 옮겨져야 할 시점이 왔다. '어떻게?'라는 생각으로 고민의 밤이 계속되고 있지만 또 다른 균형점을 찾아야 할 때가 왔음을 직감한다.
고민의 밤이 길어질 때면 자존감이 바닥을 칠 때도 있지만 '아이와 행복한 삶'이라는 분명한 목적이 있기에 다시 기운을 내어본다. 그리고 분명히 찾아낼 것이라고 나 자신에게 용기를 북돋아 준다. 언젠가 고민의 시간들이 아이에게 들려줄 수 있는 인생 이야기로 기록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