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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레 Aug 26. 2022

기록으로 발견한 재능

- 재능을 발견하고 싶다면 기록을 시작하세요.

지금까지 나의 삶을 수식하는 한 가지 단어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애매하다'일 것이다. 조금 과장을 보태어, 올해 41살인 나는 지난 40년을 애매한 나로 살아왔다. 그런 내가 지난 1년 사이에 달라진 점이 있다면 더 이상 나를 애매한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나는 기록을 통해 나의 재능을 발견할 수 있었다.






Ep.01 면접


작년에 퇴사했던 회사에 입사 면접을 보러 간 날이었다. 소규모 회사이다 보니 소개를 통해 찾아가게 되었고 별다른 과정 없이 면접 자리에서 대표님과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회사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나의 지난 경력을 답하면서 무난하게 대화가 오가던 중 대화의 말미에 이런 질문을 받게 되었다.


"그래서, 알레씨는 뭘 잘하세요?"

"저요?... 흠...."


선뜻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뭔가 지난 경력과, 대학 시절 전공을 생각하면 나의 외국어 능력을 어필해야 할 타이밍이었지만 그것들은 여전히 나에게 애매한 능력이었을 뿐이다. 그래서 곰곰이 생각한 끝에 나는 이렇게 답했다. 


"네, 저는 매우 성실한 사람입니다."


참 클래식하고 식상하고, 할 말 없음을 스스로 증명하는 바로 그 답, '성실합니다'를 내 입으로 말하고 있는 그 순간 참 뭐 하고 있는가 싶었다. 그러나 뭐라도 답을 했어야 했기에 '성실함'에 뒤이어 나름의 부연 설명을 더해 어떻게든 나의 인생철학을 담아내기 위해 노력했다.


다시 떠올려 봐도 이직 자리에서 좋은 답을 한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마음 한 구석에 남아있다.



Ep.02 성적


나의 성적은 늘 중간지대를 벗어난 적이 없다. 중, 고등학교뿐만 아니라 대학 그리고 대학원 까지. 언제나 중간지대에 머물렀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만큼 공부를 더 하지 않았을 뿐이고, 이와 더불어 딱히 성적에 욕심도 없었다. 이제 와서 돌이켜 생각해보니 어쩌면 그 시절 동안 무의식 중에 베어든 습관이 스스로를 더 애매한 사람으로 여기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물론 나에게도 학창 시절에 특별히 성적을 잘 받았던 과목은 있었다. 그것이 영어였고 그래서 나는 외국어를 전공하게 되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나는 늘 중간지대에 있다 보니 딱히 잘하는 것이 없어 보였다. 스스로를 늘 부족한 사람으로 여기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중간이 참 그렇다.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못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중간이고 그래서 애매하다. 조금만 더 하면 상위권에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딱히 욕심이 나지도 않는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나는 경쟁을 그리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어서 그랬나 싶기도 하다. 




두 가지 에피소드는 내가 생각하는 '애매한 나'의 역사에 중요한 사건이다. 요약해보면 지난 삶 전반에 걸쳐 무언가를 크게 갈망하고 살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 내 안에 내세울 만한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해 본 적 없이 이만큼 살아오게 되었다. 


사실 재능이라는 것을 이야기할 때면 대부분 선천적 재능을 이야기하는 듯싶다. 나 역시 일단 떠오르는 것은 역시 타고난 재능이라는 측면이다. 물론 태어날 때부터 눈에 띄는 어떤 재능을 일찍 발견하여 그것으로 일찌감치 성공하는 사람도 있다. 어쩌면 주로 회자되는 스토리는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여서 자연스럽게 선천적 재능을 떠올리게 되는 것 같다. 


그러나, 재능의 사전적 정의에 보면 이렇게 되어 있다. 

어떤 일을 하는데 필요한 재주와 능력. 개인이 타고난 능력과 훈련에 의하여 획득한 능력을 아울러 이른다


타고난 재능만이 아니라 훈련에 의하여 획득한 능력을 모두 재능이라고 여기는 것이 옳다는 것이고 따라서 살면서 배움을 통해 할 줄 아는 것들을 모두 재능으로 여길 수 있다는 의미이다. 


여기에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사실 그동안 '애매함'으로 수식했던 모든 능력들은 애매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것들 또한 재능이다. 그런데 왜 그렇게 애매하다고 여겨온 것일까?



나의 재능이 애매하기만 한 이유


첫 번째 이유는 돈이 되지 않는 재능이기 때문이다. 요즘 시대는 바야흐로 재능이 돈이 되는 시대다. 수많은 콘텐츠들은 재능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그리고 실제로 주변에 한 두 다리만 건너보면 소소한 수익부터 월급 이상의 수익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있다. 


이러한 사례들은 나에게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하지만 내가 가진 재능들을 자연스럽게 경제적인 부가가치와 연결 지어 생각하게 만든다는 단점도 있다. 즉, 당장 어떤 수익을 만들어 낼 수 없는 것 또는 사회적 증거가 부족하여 경력으로 내세우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서 '재능'이라고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우리에게 필요한 능력은 보통보다 조금 더 잘하는 정도이다. 나의 경우에도 지난 회사 생활 동안 나의 쓸모는 외국어 능력에 있었다. 나 스스로는 그렇게 애매하다고 여기는 그 능력이 나의 밥줄이었다는 것이다. 그럼 내가 객관적으로 외국어 능력이 탁월했을까? 그건 뭐라고 설명하기 어렵다. 그저 그 상황에 대처할 수준은 되었다는 것 밖에는 할 말이 없다.


그 흔한 토익 점수도 900점이 안 되는 나였지만 나는 그것으로 직장생활을 영위했었고 해외 출장도 여러 차례 다녀왔으며 콘퍼런스 콜은 수차례 진행했다. 그럼에도 나는 이것을 애매하다고 여겼던 이유는 언제나 타인과 나를 비교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두 번째 이유이다. 


두 번째 이유는 나의 재능을 늘 극단적으로 잘하는 누군가와 비교했기 때문이다. 가령 외국어의 경우 언제나 교포 출신 직원 또는 유학파 등 수준급으로 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존재했다. 그들과 나를 비교하는 것은 참 어리석은 일이지만 자꾸 비교하며 나를 열등한 자리에 놓았다. 그러니 나 역시 밥벌이는 할 수 있을 만큼의 능력을 애매하다고 여기며 오히려 스스로를 무능력한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세 번째 이유는 진지한 자기 점검 시간을 충분히 가지지 못했다는 것이다. 청소년기부터 청년기를 지나오면서 사람은 자신에 대해 질문하고 답을 찾아가는 시간을 가져야 앞으로의 삶을 살아가기 위한 방향을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시기에 나는 별생각 없이 하루하루를 단순하게 보냈다. 그 덕분에 30대가 되어서야 질풍노도의 시기가 찾아왔고 그것은 마흔이 된 지금도 나에게 숙제로 남아 계속 진행 중이다.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 비단 존재에 대한 탐구만을 위해서는 아니다. 이 시간을 통해 나는 내가 가진 것들, 삶의 방향을 점검하게 되는데 소위 말하는 방황기가 나에게는 없었던 것이다. 


네 번째 이유는 반복적으로 아웃풋을 내 본 경험이 적었기 때문이다. 무엇이 되었든 생산을 해본다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그 과정을 통해 시행착오를 경험하게 되고 시행착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발전하는 과정을 통해 재능은 더 탁월해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물론 직장 생활은 아웃풋의 연속이긴 했지만 그럼에도 충분치 못하다고 느끼는 것은 대부분 짜인 틀 안에서 별 다른 노력 없이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구조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낯선 경험을 해 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 경험을 통해 얻게 된 인사이트들을 기록해 두는 것이 또한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하게 되었다. 



기록은 어떻게 나의 사고방식에 변화를 주었나


지난 1년 동안 내가 가장 많은 시간 집중했던 행동은 무엇이었을까 고민해보니 '기록'이었다.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 인스타그램에 생각을 기록하는 것, 블로그에 자기 계발의 시간을 기록하는 것, 모든 것은 기록으로 귀결된다. 


그렇다고 그 이전에 기록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삶의 전반에 걸쳐 우리는 알게 모르게 기록을 하며 살아간다. 학창 시절 노트 필기부터, 일기, 연애편지, 그리고 업무 노트 등 기록은 이미 우리 삶과 밀접하다. 그러나 그때와 지난 1년과 가장 큰 차이는 기록이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지 않고 특정 영역에 모여 있다는 점이다.


기록이 중요한 이유 중 한 가지는 오랜 시간 축적된 기록은 '맥락'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재능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저마다 숨을 쉬듯 행동하는 것들이 있을 것이다. 나에게는 글쓰기가 그렇고 누군가에게는 운동일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요리가 될 수도 있겠다.  


단편적인 경험은 그것이 나의 재능이라고 말하기에는 충분치 않지만 오랜 시간 반복된 경험은 스스로를 설득시킬 만큼의 증거가 되어준다. 지난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나는 브런치에 꾸준히 글을 쓰고 있다. 글쓰기 자체로는 여전히 애매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는 없지만, '솔직한 글, 공감이 되는 글, 쉽게 읽히는 글'이라는 피드백을 통해 글쓰기에서도 보다 세부적으로 나의 재능이 어디에 있는지를 발견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가장 벗어나기 힘든 부분은 재능은 돈이 되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었다. 그러나 이 부분은 의외로 쉽게 벗어날 수 있었다. 나는 그들처럼 그만큼 집중하는 시간을 아직은 가져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오히려 '나도 할 수 있겠구나'라는 식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유튜버 이연님은 본인의 콘텐츠에서 이런 말을 하였다. 자신의 재능이 애매하다고 여겨진다면, 그 애매한 재능들 몇 가지를 더해보라는 것이다. 그럼 그것이 유일한 한 가지가 될 수 있다고. 








우리가 타고난 재능을 궁금해하는 이유는 그것이 마치 성공의 지름길처럼 여겨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에 계속 얽매여 오히려 스스로를 무능한 사람으로 여기기보다는 차라리 나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하는 삶을 사는 게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나 이거 좋아하나? 나 이거 재밌나? 나 이거 할 때 막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빠져있나? 그리고 그것들의 답을 계속 기록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하루 이틀 지나면 그때의 감정을 잊어버리기 쉽기 때문이다. 


그리고 재능이라는 것을 엄청난 능력, 슈퍼 히어로 같은 능력치로 생각하면 죽었다 깨나도 재능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재능은 그냥 살아가는 데 무언가를 해내기 위해 필요한 능력 정도라고 받아들이는 게 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보통의 수준보다 조금 더 나아가는 정도. 그 정도면 충분하다.


이제 더 이상 나의 애매한 재능들은 애매한 것이 아닌 그냥 재능들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단지 각각의 레벨이 다를 뿐이다. 최근에 깨닫게 된 것은 나는 별 것 아니게 생각한 능력들조차 필요한 곳에서는 대단한 능력이 된다는 것이다. 


필요한 곳에 가면 나의 애매한 재능도 충분히 활용 가치가 높은 재능이 되기 마련이다. 그러니 이제 더 이상 재능이 없다는 말, 애매하다는 말보다는 내가 할 줄 아는 것들에 대해 나에게 이런 능력들이 있구나 하고 받아들여주는 것은 어떨까. 그리고 작은 시도를 계속 반복해 나가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기록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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