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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레 Nov 26. 2022

R.I.P. 내 안에 응어리들. 여기 이 글에 묻히다.

글로 풀어내는 하루의 고단함

힘들다. 그냥 하루가 힘들게 흘러간다. 마지막까지 힘겹게 끝나간다. 인생에는 답을 알고 싶은 부분이 몇 가지 있다. 그중 하나가 오늘 같은 하루다. 어디서부터 인지 꼬이기 시작한 하루는 결국 마지막까지 팽팽한 긴장감을 놓지 않는다. 참으로 지겨운 녀석이다. 


평소 무척이나 바랐던 것이 있다. 민감함. 다른 뜻보다는 나와 나를 이루는 세상을 느끼는 예민한 감각 말이다. 글을 쓰다 보면 소재에 대한 갈증은 늘 존재할 수밖에 없다. 처음보다야 글 쓰는 게 수월해진 것은 사실이고, 또 쓰다 보니 글이 글을 불러오는 것도 맞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싶을 때, 나는 민감함이 고파지곤 했다. 그런데 그게 언제나 좋은 건 아닌가 보다.


확실히 글쓰기 전보다야 예민해졌다. 더 많은 것을 바라보고 느낀다. 생각의 회로가 돌고 돌아 그것들을 끊임없이 뒤섞기를 반복한다. 어떤 날은 그것들이 글을 통해 술술 풀린다. 그러나 더 많은 경우는 가슴속 응어리처럼 속에서 어딘가에 뭉쳐 앉아 내내 체기를 느끼게 된다. 답답한 속내를 안고 하루를 보내는 날은 어김없이 뭔 일이 터지긴 한다. 


오늘도 그런 날이었다. 늘 금요일이면 반복적으로 해오던 일들이 있다. 평상시야 미리 고민하고 실마리 정도는 잡아둔다. 아무리 계획형 인간이 아니라 해도 삶이 시간에 대한 강박과 조급함으로 흘러가다 보니 조금은 앞서 생각하는 습관이 생기긴 했다. 그런데 오늘은 그것들을 모두 놓쳐버린 하루였다. 왜 그랬을까. 자책하는 마음이 생겨났지만 이내 마음을 잡고 해야 할 일들을 한다. 


역시 이런 날은 또 어김없이 진척이 느리다. 이래서 인생은 멘털 싸움이라고 하는가 보다. 이미 난 멘털이 무너진 상태로 경기에 나간 선수나 다름없었다. 오늘따라 자꾸 생각이 분산되었다. 글이 잘 읽히지 않고, 이미지는 하나같이 맘에 들지 않아 30분, 1시간이 지나 결국 애기 하원 시간에 임박했다. 정말 꾸역 꾸역이라는 말이 적확하다 싶을 그런 하루를 보냈다. 해야 하니 했지만 하는 내내 성에 차지 않아 답답함에 터져버릴 심정이었다.


아, 혹시 이렇게 표현하면 '얘, 괜찮은 건가' 염려하는 마음이 생길지도 모르겠지만, '괜찮습니다'라고 미리 답을 남기고 싶다. 그냥 어쩌다 보면 그런 날도 있는 거니까.


결국 소리친다. 화산이 폭발하는 심정으로 내뱉는다. 온몸을 울림통으로 삼아 혼신의 힘을 다해 응어리를 내뱉는다. 그런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무성영화의 한 장면처럼 그냥 얼굴만 일그러지고 목에 핏대만 설뿐이다. 


글쓰기 덕분에 생겨난 민감함이 가끔은 나를 찌르기도 한다. 글을 쓰기 전 같음 그냥 무디게 흘려보냈을 그 감정들이 지금은 널을 뛴다. 붙잡아두려 심호흡도 해보고, 조용히 눈을 감아 잔잔한 음악을 듣기도 하지만 멈출 생각을 안 한다. 결국 글을 쓰기 시작한다. 어쩔 수 없다. 글로 풀어내는 수밖에.








오늘은 아내나 나나 우리 둘 다 참 지치는 하루인가 보다. 평소 같음 글 쓰러 방에 들어오면 그냥 내버려두는데 오늘따라 같이 TV를 보자고 조른다. 내적 갈등이 생긴다. 나도 내 마음을 빨리 풀고 싶은데. 아내의 얼굴을 보니 애기가 많이 힘들게 했구나 싶다. 어떡하지. 아내는 뭐 하나라도 같이 보고 글을 쓰면 되지 않느냐고 한다. 하지만 그게 또 그렇지 않다. 글을 쓰는 사람들은 이해하겠지만, 창작의 순간은 말 그대로 순간이다. 순간을 놓치면 또다시 기다림의 시간이 이어져야 한다. 더욱이 오늘 같이 응어리의 순간은 빨리 풀지 않음 내내 찝찝하기에. 아내에게 양해를 구한다. 30분만.


그렇게 후루룩 글을 쓴다. 깊게 생각도 안 하고 그냥 감정이 흘러나오는 데로 잡아넣어본다. 시작과 끝이 어떤 상태인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말 그대로 쓰는 행위가 필요해서 쓰는 것이기에. 그럼에도 마무리는 좀 긍정적으로 해보고 싶어 이렇게 기록해본다. 


힘든 하루도 글로 마무리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R.I.P. 내 안에 응어리들. 여기 이 글 속에 묻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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