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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레 Dec 21. 2022

내어 보이고 싶지 않은 나의 연약함에 대하여

'나' 사용 설명서

오늘도 어김없이 글 쓰는 새벽이다. 요즘 매일 쓰기를 실천하려 하다 보니 쓰다 잠들어도 마음이 급하지 않을 이른 새벽, 아니 늦은 밤 중에 글을 쓰게 된다. 어쩌다 보니 근래에 이런 말을 종종 하게 된다. '밤은 위험하다'라고. 다른 의미보다 나 자신의 감정선이 지극히 감정적인 상태로 치닫는 시간이라는 뜻이다. 


감정적인 상태가 된다는 말에는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좋은 감정 상태와 좋지 않은 감정 상태 모두를. 이왕이면 좋은 감정 상태가 내내 유지되길 바라지만, 인생살이가 뭐 늘 그렇기만 하던가. 오늘은 오랜만에 나의 연약함과 마주했다. '오랜만'이라고 표현한 건 정말 오랫동안 잊고 살았기 때문이다. 


나는 '말'과 '말투'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아니, 다시. 나는 대체로 '말'과 '말투'를 신경 쓰는 편이다. 내가 예민한 만큼 남들에게도 조심하는 편이다. 그래서일까. 가끔 말실수를 할 때가 있는데, 그게 참 오래도록 해소가 되지 않는다. 체한 듯 가슴에 턱- 얹혀 답답하게 만들 정도로. 


사람이 참 웃기다. 전혀 생각도 나지 않던 말실수 에피소드가 이럴 땐 또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오랜만에 스쳐 지나갔으니 그 흔적이라도 남겨보려 한다. 


첫 번째 떠오른 건, 대학원 석사 과정 중의 일이다. 연구소에서 조교로 근무할 무렵, 교수님과 단 둘이 있었다. 분명 교수님께서 강의를 가실 시간인데 안 가고 계시는 거다. 내내 기다리던 혼자만의 시간을 도둑맞은 기분에 선임 조교 누나한테 문자를 보냈다. "누나, 교수님 오늘 수업 없어요?" (전송). 순간 머리가 쭈뼛 서는 기분과 동시에 얼굴이 하얘지는 경험을 했다. 그렇다. 내 문자는 그 교수님에게로 전송된 것이다. 옆에서 교수님 전화기에 문자 알림음이 울리자 나는 뛰어가서 교수님 핸드폰을 뺐어 창 밖으로 던져버리고 싶었다. 이내 들려온 대답은, "어, 나 오늘 수업 안가. 왜?"


진심 너무 민망해서 책상 밑으로 기어 들어가 숨어 버리고 싶었다.


또 하나는, 군대에서의 일이다. 아마 내가 상병 때였던 것 같다. 나보다 3개월 후임이었던 후임병이 작업을 하러 가는 걸 보고 그냥 장난 삼아 쌤통이라는 식으로 놀렸더랬다. 내가. 하아. 지금 생각해도 진짜 그때의 나를 다시 만나면 주둥이를 틀어막고 싶은 심정이다. 아무튼 그랬더니 그 후임이 진심 짜증 났는지 정색하며 나에게 한 마디 던졌다. "후임 놀리면 재밌습니까?" 할 말이 없었다.


기억나지 않을 뿐 살면서 말로 빚어진 불편한 상황들은 분명 더 있었던 것 같다. 중요한 건 그 에피소드가 아니고 그때 느껴졌던 내 감정이다. '실망감'. 생각해보니 나는 실수하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언제나 믿음직스러운 사람이길 바라고 있었다. 늘 잘한다는 말을 듣고 싶어 했다. 그랬던 것이었다. 나의 지난 행동들이. 그랬기에 이에 반하는 순간을 맞닥뜨리는 것이 심리적으로 굉장한 불편함을 자아내었던 것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경험하고 싶지 않은 순간은 아마 내가 좋아하는 사람, 나를 좋아하는 사람, 내가 속해있는 집단 또는 사회에서 이런 약점을 내보이는 것이다. 내가 열심히 하는 이유의 4할은 아마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서일 것이다. 그래서 난 근거 없는 신뢰감을 내비치며 나를 행동하게끔 만드는 상황을 불편해한다. 또한 그래서 직장생활이 좀 싫었던 것도 있다. 다분한 의도를 가지고 입에 발린 소리를 해대는 사람들 덕분에.


지금은 그 전보다야 많이 나아졌다. 사람은 누구나 완벽한 존재가 아니기에 저마다의 약점은 존재하는 법이니까. 확실히 나아졌기에 이렇게 글로 나의 연약함을 적어 내려 갈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생각해보면 그리 실수라고 보이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것도 완벽주의적 성향 때문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결국 내 마음이 문제라는 것을 알고 있다.  


다행히 지금은 실수도 용납해주고 포용해주는 사람들과 함께하고 있다. 그 덕분에 나 자신을 넘어서는 경험도 할 수 있었다. 


오랜만에 잠시 스쳐 지나간 이 감정 덕분에 오늘도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하니 싫지만 또 좋다. 감정을 면밀히 들여다보고 글로 기록할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어느 날 어느 때 또다시 이런 감정이 밀려온다면 그럴 때 다시 꺼내 볼 수 있으니까.


'나' 사용 설명서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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