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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레 Jan 03. 2023

오늘, 이곳에서, 행복해지는 삶

그래서 오늘이 가장 소중합니다.

오랜만에 책을 펼쳤다. 서문을 읽던 중 한 문장을 만났다. "오늘, 이곳에서, 행복해지는 것. 그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라네." 오늘도 습관처럼 흘러가던 시간이 순간 멈춰 섬을 느꼈다. 그리고 외쳤다. "이거다!"






회사를 나와 겨우살이로 살아가지만 그래도 1년 하고 3개월째 생존하고 있다. 홀로서기를 잘 해낼 거라는 결의와 경제적 자유를 이루겠다는 당찬 포부와 함께 자리를 털고 일어났지만 막상 현실은 나의 포부와 그리 가까이에 있지는 않은 듯하다. 덕분에 때론 우울했고 때론 좌절했으며 그러다가 다시 새로운 힘으로 걸어가기를 반복하고 있다. 


난 늘 더딘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업무를 배워도 초반 스피드는 늦은 편이다. 그래서 설명을 친절하게 해주는 사람을 좋아한다. 되물어도 짜증 내지 않는 친절함을 탑재한 사람. 문득 한 사람이 떠오른다. 전혀 반대의 사람.


첫 회사에서 하필 나를 가르쳐야 하는 사수가 회사 생활에 권태를 느끼고 있던 대리였다. 업무를 1, 5, 9, 13, 띄엄띄엄 알려주었다. 덕분에 내내 고생했다. 억울한 핀잔도 많이 들어야만 했다. 시간이 지나 업무에 익숙해지고 난 뒤에야 겨우 내 한몫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마지막 회사인 원예 회사에서 일할 때는 담당 업무와 상관없이 온실에 자주 나가 있었다. 식물을 글로만 배운다는 건 어불성설 아닌가. 바라보고, 만져보고, 느껴보고, 때론 죽여보기까지 해야 비로소 조금은 알게 된다. 하루에도 몇 대의 차가 들락날락하며 식물을 싣고 가는, 먼지 폴폴 나는 유리 온실이었지만 매일 초록 식물을 마주하는 시간은 좋기만 했다. 


오늘 만난 한 문장은 시간의 태엽을 돌려 지난날의 나를 돌아보게 했다. 그리고 내가 "이거다!"라고 외쳤던 이유. 그 이유는 삶의 분명한 목적을 만났기 때문이다. '오늘, 이곳에서, 행복한 삶.' 너무 멋지지 않은가! 진작에 이 문장을 만났더라면 지난 시절이 조금은 달라졌을까 하는 생각에 잠시 잠겨본다.


언젠가부터 나 자신에게 '왜'를 계속 던졌다. 나는 왜 글을 쓸까. 나는 왜 SNS를 하는가. 나는 왜 여러 가지 고민들을 하고 있는가. 여러 답을 달아보았지만 언제나 2% 부족한, 어딘가 충족되지 않는 기분에 늘 찝찝함을 안고 살아왔다. 인생의 순간을 하나의 프로젝트로 생각해 본다면, 각각의 프로젝트 목적은 존재했지만 큰 틀에서 인생의 목적을 정리할 문장에 대한 갈증은 늘 해소되지 못했던 것이다. 오늘의 문장을 만나기 전까지는.


때론 골든 레트리버 마냥 헤헤 거리며 그저 자기만의 행복에 겨워 살아가는 모습일지라도 나는 나의 삶을 행복으로 채워가고 싶다. 이제야 나의 모든 선택들을 아우르는 하나의 큰 틀이 만들어진 기분이다. 글을 쓰는 것도, 콘텐츠를 기획하고 만들어가는 것도,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마음을 나누는 순간들 모두가 다 오늘을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함이다.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이곳에서'다. 바로 이곳. 바로 지금. 내가 서있는 곳. 내가 머무르는 곳. 


행복을 멀리서 찾으려 하면 결국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지난 세월을 통해 깨달았다. 이 부분은 신앙의 힘이 크다. 순종은 내일 그곳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내가 서있는 이곳에서 해야 하는 것처럼, 삶의 행복도 추운 겨울이 가고 따뜻한 봄이 오면 찾아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곳'이 중요하다. 자족할 수 있는 마음. 감사할 수 있는 마음. 그것을 누릴 수 있는 삶이야 말로 진정 행복한 삶이다.


비록 조금은 더딘 사람이지만, 그래서 늘 뒷북 같은 삶을 사는 듯 하지만 그냥 내 속도로 살아갈 수 있음에 만족하게 된다. 오히려 이제는 빠른 속도가 피로하다. 어차피 따라가긴 글렀으니 그냥 꽃구경 사람 구경하며 하루를 정성스럽게 채워가는 삶을 살아가려 한다. 내 아이의 속도에 맞춰. 


오늘을 사는 삶이 좋은 건, 행복도 불안도 기쁨도 두려움도 다 오늘에 족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의 나를 기록하는 시간이 소중해진다.

그래서 난 오늘 또 나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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