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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레 Jan 05. 2023

P형 인간도 계획이라는 것을 하긴 합니다만.

제목을 보고 '네?'라고 반문하실 J형 사람들에게 드리는 글

자꾸 MBTI를 빌어 나를 설명하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어쩐지 쉽게 공감과 이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보니 일단 또 꺼내 적어본다. 보통 P형 인간의 최 약점이라 하면 계획형 인간이 아니라는 점을 들 수 있다. 부정하진 않겠지만 또 한 편으론 전적으로 인정하고 싶지도 않다. 더 치밀하고 체계적인 계획을 세우는 경향이 있어 보이는 J형 인간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밀릴지도 모르겠지만 우리도 우리 나름의 방법이 있다. 그저 서로 다를 뿐. 


P형도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있을 테니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일단 차치하고, 내 얘기를 해보자면, 나는 지금 스트리밍 서비스인 FLO에서 팟캐스트 형식의 음악 콘텐츠를 진행 중에 있다. 한 달에 한 번 녹음을 하는 알레's Bar (a.k.a 알레쓰바)는 자그마치 한 달이라는 준비 기간이 주어진다. 


와- 이 정도면 뭐 충분하지 않겠냐고 생각하겠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이 녹음이 있던 날이었다. 그 충분해 보이는 한 달의 기간이 주어졌음에도 내가 준비를 시작하고 끝마친 것은 바로 오늘 새벽. 1시부터 4시 반 사이였다. 아니 계획이라는 것을 한다면서 뭔 소리 하는 건가 싶겠지만 사실 나에겐 아주 치명적인 한 가지 포인트가 있다. 딱 뭐라고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아닌데 그냥 굳이 뭐라도 끼워 넣어보자면 '영감'이다. 


글쓰기와 달리 음악 콘텐츠를 준비할 때나, 카드뉴스 콘텐츠 디자인 작업을 해야 할 때면 딱 잡히는 '한 가지'가 매우 중요하다. 가령 디자인 작업의 경우 원하는 어떤 이미지, Flaticon이나 사진 자료 등이 딱 잡히지 않으면 내내 풀리지 않는다. 알레쓰바를 준비할 때는 해당 회차의 '주제'가 핵심 요소가 된다. 


오늘의 녹음도 첫 곡은 작년 12월에 이미 정해 놓았다. 그러나 문제는 아무리 고민해도 딱 주제가 잡히질 않다 보니 결국 내내 고민만 하다 녹음 당일 새벽에서야 작업을 끝낼 수 있던 것이다. 이쯤 되면 그냥 다 내려놓고 선곡한 곡들에서 공통점을 찾아 역으로 주제를 끼워 맞추는 식이 되어 버린다. 


아! 그렇다고 실제 콘텐츠를 허투루 준비하지는 않는다. 궁금하면 FLO에서 찾아 들어보시길. 


다시 MBTI를 꺼내보자. 엄밀히 따지면 내가 단지 P형 인간 이어서라기보다 N, F, P의 조합을 가진 사람이라 더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혹, 같은 P형이지만 인정할 수 없다면 그냥 그러려니 하시길 바라본다.


그러니까 하고 싶은 말은, 각각의 콘텐츠마다 풀어가기 위한 실마리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물론 그러거나 저러거나 일단 끝을 맺고 다시 정리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적어도 나는 실마리가 매우 중요하다. 그것을 찾지 못하면 내내 힘들어한다. 오늘의 팟캐스트 준비 과정처럼.


사실 나라고 미리 해보겠다는 마음을 먹지 않는 것은 아니다. 늘 녹음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돌아오는 길에 다음 달 녹음을 미리 생각한다. 와우, 놀랍지 않은가?! 다만, 그 약발이 오래가지 못할 뿐. 하루 이틀 지나고 나면 또 그때그때 처리해야 할 것들에 온 신경이 집중되고 그러다 보면 또 잊어버린 체 살아간다. 결국 임박해서야 부랴부랴 서둘러 준비하게 된다. 


실마리를 찾아내야 한다는 점이 첫 번째라면 두 번째는 각각의 연결고리를 발견해야 한다는 점이다. 주제부터 선곡한 음악들은 나름의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다. 밴드의 활동 시기라던가, 아니면 뮤지션들이나 장르적 교집합과 같은 연결점이 필요하다. 이도저도 없을 땐 하다못해 '나'라는 사람의 추억이라도 그 연결고리가 되어야 한다. 이럴 경우 장점은 녹음하는 내내 흐름을 자연스럽게 끌고 갈 수 있다는 점이다. 반면 단점은 자칫 장르적 혼재가 오히려 혼란을 야기시킬 수도 있다.  


마지막 세 번째 핵심요소는 환경이다. 내가 일하는 공간의 환경. 시간대. 온도. 소음도 등 은근히 환경에 민감하다. 어질러진 나의 방도 그 나름 나에게는 질서가 존재한다. 그래서 그 안에서 나는 안정감을 느낀다. 글을 쓸 때처럼 나만의 시간과 공간에 앉아 음악을 찾아 듣고 자료를 조사하다 보면, 대체로 삼천포로 빠져버리는 경우가 많지만 어떤 날은 그에 힘입어 매우 높은 퍼포먼스를 내 보였던 적도 있다. 


  






막상 적어놓고 보니 한 마디가 떠오른다. Feel. 그렇다. 소위 '필'이 중요하다. 정말 필 가는 데로 움직이는 경향이 다분하다. 그러다 보니 필 받으면 없던 창의성과 속도가 확 좋아진다. 반면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위의 상황처럼 하세월이다.


MBTI 유형을 빌어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결론적으로 하고 싶은 말은 누구나 다 자기 방식이 있고 자기 페이스가 있다는 점이다. 아무리 미리 준비한다 해도 준비 완료 시기를 앞당길 수는 있을지 몰라도 그날의 준비하는 모습은 아마 별반 다를 게 없을 것이다. 한 곡을 듣다가 그 곡에 빠져 주제와 상관없는 다른 영상들을 더 찾아보며 음악감상을 시작한다던가. 


그래도 삼천포에 자주 다녀온 덕분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게 되니, 뭐 이 정도면 나름 계획적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아니면 말고.


안녕하세요, 알레쓰바 DJ 알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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