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이 사라진 시대를 살아가기 위한 마음가짐

앞으로 더 지독해져도 괜찮을 것 같다는 마음이 듭니다만

by 알레

2023년 트렌드 발표에서 주목하게 되는 것이 있다면, 평균이 사라졌다는 말이다. 책을 읽은 것은 아니고 그냥 흘러 다니는 콘텐츠들을 통해 귀동냥하듯 들은 게 전부이지만 이것이 나에겐 어쩐지 반갑게 들리기만 한다. 나는 늘 나의 인생이 평균에 있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그것을 '중간지대의 저주'라고 표현하기까지 했다. 학창 시절의 성적도, 그냥 직장 생활할 때의 업무 퍼포먼스도 특출 나지도 모나지도 않은 딱 그 정도에 늘 머물러 있었다.


그래서 더욱 나를 찾고 싶었다. 나에 대한 갈증이 커져 글을 쓰게 되었다. 글을 쓰다 보니 한 가지 느껴지는 것이 있는데, 어쩌면 나는 평균에 있는 사람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것이다.


글을 쓰며 보낸 2022년, 나의 내면의 변화에 주목해 보았다. 늘 입버릇처럼 평범하다고 여겼던 나의 일상에는 다양한 이야기가 준비되어있음을 깨달았다. 매일 어떤 이야기든지 꺼내 기록하는 시간을 보내면서 점점 '평범한'이 '나만의 특별한'으로 변화되어 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미 유명세를 타고 있는 사람이나, 개인의 브랜딩을 잘 일궈낸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는데 자기 이야기를 하라는 것이다. 그렇다. 결국 또 '나'로 귀결된다. 생각해보면 이미 오래전부터 들은 말이지만 그 시절에 이 말이 그리 와닿지 않았던 이유는 그땐 내가 나를 이만큼 깊이 바라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 물론 '그들은 이미 유명해졌으니까 그런 말을 하는 거다'라는 삐뚤어진 마음도 있었음을 인정한다.


온라인 지식창업, 콘텐츠 기획, 크리에이터, 퍼스널 브랜딩의 영역에 관심이 많다 보니 SNS를 자주 모니터링 하는 편이었다. 기회가 되면 강의 수강도 해보고, 코칭도 받아보는 등 나름의 관심을 쏟아부었던 적도 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손을 놓게 되었다. 가장 큰 이유는 토익 시험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제 아무리 토익 만점 받는다 해도 진짜 영어 실력과는 무관하다는 말이 있듯이, 점점 방법론으로 후킹 하려는 콘텐츠들이 넘쳐나고 있는 것에 피로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제로 적용해봤냐고 묻는다면, 그리 열심히 해본 것 같지는 않기에 할 말은 없다만, 근본적인 질문에 스스로 답을 낼 수 없었기에 손을 놓았다는 것이 더 큰 이유라 할 수 있다.


'내 콘텐츠엔 내가 담기고 있는가?'라는 질문 말이다.


이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서는 '나'에 대한 정의 또는 스스로 명료함이 선결되어야 하기에 항상 늘어지는 기분이다. 이런저런 문장으로 나를 표현해보았지만 여전히 명쾌하지 않아 어딘가 늘 석연찮았다. 그러던 중에 최근 나를 매우 사랑해주는 친구가 나에 대해 이렇게 표현을 해주었다.


'삶을 정성스럽게 사는 것 같아'라고.


이 표현이 진한 여운으로 남은 이유는, 나의 망설임이 완벽주의로 인한 필요 이상의 고집 때문인 것일까 하는 고민이 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에서 벗어나야만 하는 것일까?'에 대해 여전히 답을 내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 나에게 친구의 한 마디는 지난 삶의 고민에 종지부를 찍어주는 한 문장처럼 다가왔다.


'완벽주의 성향에 따른 지나친 열심'으로 치부될 수 있던 나의 삶이 관점을 달리하니 '스스로에게 정성스러운 삶'으로 달리 해석되니 오히려 내 삶에 자신감이 생기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어쩌면 우리는 모난 돌이 정을 맞는다는 말을 자연스레 삶의 지혜로 받아들이며 살아오진 않았던 것일까? 물론 그런 시대도 분명 존재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바야흐로 모난 돌이 정을 맞는 것이 아니라 모나지 않은 돌이 버려지지 않기 위해 스스로 모를 내려고 뭐든 하는 시대가 왔다.


이제는 누구나 자신의 색을 더 분명하게 보여줘야 살아남는다. 절대적 다수의 지지를 받는 인기도 좋지만 소수의 마니아가 오래도록 향유할 수 있는 것이 더 끌리는 시대다. 그러니 더 지독해져야 한다. '나'라는 사람을 더 지독하게 각인시켜야 한다. 이것이 내가 평균이 사라졌다는 말을 반갑게 여기는 이유다.


난 충분히 지독한 사람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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