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은 했지만 그저 아쉽기만 하다.
퇴사한 지 이미 1년이 넘었다. 작년 10월에 퇴사했으니 1년 하고도 2개월이 더 지난 셈이다. 이미 떠난 마음이니 그 사이 회사가 어찌 되든 크게 관심은 없다마는 그럼에도 이왕이면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이 조금은 남아있었다. 물론 이미 내가 퇴사하기 전 한 명 두 명 떠나기 시작했고, 내 뒤를 이어 몇 달 간격으로 또 사람들이 나갔다는 말을 들었을 땐 그리 희망적으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동안 간혹 전 회사 소식을 들을 때가 있었다. 친했던 직원에게 안부차 연락하면 언제나 그랬듯 시시콜콜한 회사 이야기를 듣게 된다. 또는 가깝게 지냈던 거래처 사장님과는 그나마도 종종 연락을 주고받곤 하는데, 그분을 통해 간접적으로 듣기도 했다.
역시나 들려오는 이야기들은 대체로 좋지 않은 소리들이다. 뭐 이미 사공이 여럿이었기에 산으로 가고 있던 배가 갑자기 정신 차리고 다시 바다로 가는 경우가 얼마나 있겠나 싶다.
솔직히 난 처음 회사에 입사했을 때만 해도 기존 직원들이 이야기하는 불만이나 회사의 부족한 면들이 그저 그들의 불만족스러움의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사장님의 비전이 어딘가 설레는 마음을 갖게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1년, 2년 시간이 지나고 나니 분명히 볼 수 있게 되었다. 비전은 그럴싸한지 모르겠지만 그것을 실현가능하게 만들 실력은 없다는 것을. 애석한 것은 그 실력 없음엔 나 또한 포함된다는 사실이다.
최근 오랜만에 또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한참 재직 중에 내가 하던 업무를 결국 건당 비싼 돈을 지불하고 외주를 주기로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기분이었다. 아니 그보다, 어쩌다 그 지경까지 갔을까 싶은 애석한 마음이 피어올랐다.
잘은 모르겠지만 분명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내 뒤로 인수인계를 받았던 사람이 그 뒤로는 제대로 안 남겨 주고 나갔다던가, 기존 직원들이 대부분 떠나버린 상황이다 보니 새로 온 직원들 중 마땅히 그 일을 할 사람이 없다던가. 어떤 이유가 되었든 순간 그 돈 나 주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든 생각은, '내 결국 그럴 줄 알았다'였다.
그래도 나름 업계에선 제일 큰 회사라고 여겨지던 회사가 그 모양인데, 하물며 다른 곳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란 생각을 하니, 그 시장이 국내에서 그냥저냥 한 게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근래에 읽었던 책, <Start with Why>에서는 기업이 장기적으로 존속되려면 WHY가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안타깝지만 대부분의 기업들은 자신들이 판매하는 WHAT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한다. 가장 성공적인 대표사례가 애플이다. 컴퓨터 회사이지만 음악, 스트리밍, 콘텐츠, 등 다양한 사업 확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만의 WHY가 뚜렷했기 때문이라고.
지난 회사를 돌아보니 결국 어느 누구도 WHY를 제대로 규정하지 못했음이 가장 안타까운 부분이다. 역시나 책에서 언급한 대다수의 기업들처럼 전 회사도 회사가 판매하는 WHAT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아무리 업계에서 나름의 관록이 있다 해도, 동일한 WHAT을 가진 경쟁자들이 늘어나니 점점 치킨게임이 되는 시장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상황이 돼버렸던 것이다.
만약, 뚜렷한 WHY가 있었더라면, 그래서 오래 머물러 있던 그 시장에만 한정시키지 말고 사고의 확장을 통해 사업의 확장을 이뤄냈더라면 어땠을까. 참 때늦은, 아니 그보다 참 쓸데없는 생각이 잠시 스쳐 지나간다.
그랬더라면, 아마 난 지금도 그곳에 몸 담고 있었으려나?
그랬더라면, 네덜란드나 코스타리카에 출장 몇 번 더 나갔을 수도 있었을 텐데.
이건 좀 아쉽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