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나를 알레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알레 Jan 30. 2023

항상 감사하라 하셨거늘...

Way Maker, Lord I pray,,,

나에게는 몇 가지 페르소나가 있다. 전업 육아 중인 아빠이며 남편이라는 페르소나, 글을 쓰는 작가라는 페르소나, 한때는 직장인으로서의 페르소나가 있었고, 콘텐츠 크리에이터라는 페르소나도 있다. 그중에서도 나에게 가장 익숙한 페르소나는 크리스천이며, 예배자라는 페르소나이다. 보통은 잘 내어놓지 않는 나의 페르소나. 오늘은 가장 오랜 세월 함께 살아오고 있는 그것에 대해 처음으로 꺼내본다.


나의 신앙생활은 중학생 때부터 시작되었다. 친구와 놀고 싶어서, 악기를 배우고 싶어서가 이유였다. 그때는 신앙에 관심은 없었다. 그저 노는 게 좋았으니. 본격적인 신앙생활이 시작된 건 고등학생 때부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매주 토요일, 교내 기독교 동아리 모임에 참석했고, 매월 셋째 주 토요일에는 기독학생연합모임에 참석했다. 아마 삶을 통틀어 가장 뜨거웠던 시절이었을 것이다.


열정이 가득했고 순수한 마음으로 나는 성경에 기록된 삶이 모두 쉽게 믿어졌다. 그러나 그땐 몰랐다. 사람의 믿음이 얼마나 연약한 것인지. 그리고 그때 난 어렸다는 사실을.


지금도 여전히 예배자의 페르소나를 입고 살아간다. 매주 금요일 그리고 주일, 교회에서 예배를 인도하는 예배 사역자이며, 예배팀의 리더이고, 교회 내 운영위원 조직에서 예배와 관련된 일을 담당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뭔가를 많이 하고 있지만, 그것과 신앙의 깊이는 별개임을 절실히 깨닫는다. 한때는 누구보다 뜨거운 열정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나의 자격을 묻고 있다. 


나는 지금 순전한 기독교인인가?


크리스천으로 살면서 자주 고백하는 신앙고백이 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자주 되뇌는 이유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그것을 지켜내기가 어려움을 느끼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만약, 이 성경구절이 '기뻐하라, 기도하라, 감사하라'였다면, 차라리 한 결 편했겠다 싶다. '항상', '쉬지 말고', '범사에'라는 수식어가 붙으니 그리 살아내지 못하는, 아니 점점 그 삶에서 멀어져만 가는 나의 현실이 찔림이 된다.


매일 난 무엇을 기뻐할 수 있을까.
매일 난 무엇을 기도할 수 있을까.
매일 난 무엇을 감사할 수 있을까.

아직도 이것을 매일 해낼 자신이 없다.
이게 나의 솔직한 마음이다.


글을 쓰며 나의 깊은 내면을 느낀다. 어떤 날은 환희를 경험하지만 많은 날은 추악한 민낯을 바라보게 된다. 누구도 볼 수 없고 느낄 수 없는 수면 아래 깊은 곳에 있는 나. 그곳에는 욕망으로 가득한 내가 있고, 사랑이 아닌 이기심으로 가득한 내가 있으며, 무기력한 내가 있고, 회피하는 나, 미혹하는 나, 시기하는 나...


그런 나를 만나고 나면, 침묵하게 된다. 아니, 침묵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리고 무력감을 느낀다. 나는 나 스스로 온전히 설 수 없는 존재였음을 비로소 깨닫게 된다. 그리고 나서야 다시 무릎을 꿇고 입을 열어 기도한다.


Way Maker,  Miracle Worker,
Promise Keeper, Light in the Darkness,
My GOD, that is who you are.

- Way Maker 중에서,,,


지금 나는 내 힘으로는 풀리지 않는 상황을 마주하고 있다. 처음에는 나의 힘을 믿었고 자신했다. 길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거라 여겼다. 그러나 그럴수록 꼬이고 엉켰으며 결국 넘어졌다. 다시 일어나 정신을 차려보지만 아직 남아있는 지푸라기 같은 나의 힘을, 의지를 또 붙잡는다. 결국 또다시 주저 앉는다. 


이제야 다시 나는 길을 만드시는 분을, 내가 믿는 사랑의 하나님을 향해 외친다. 

'도와주세요 주님.'


항상 감사하라 하셨거늘, 아직도 내려놓아야 할 아집과 고집이 셌음을 깨닫습니다.
항상 감사하라 하셨거늘, 상황에 따라 감사하는 어린 나를 깨닫습니다.
항상 감사하라 하셨거늘, 점점 감사에 인색해져 가는 나를 마주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제 다시 감사할 수 있는 것은, 나의 아집과 고집을 깨닫게 되었음입니다.
이제 다시 감사할 수 있는 것은, 여전히 자라지 못한 어린 나를 안아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다시 감사할 수 있는 것은, 솔직한 나를 마주하고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내가 할 수 있다는 오만함을 내려놓기로 했다. 나의 사랑으로는 턱없이 부족하기에, 간절히 도움을 구한다. 나를 통해 그분의 사랑이 흘러갈 수 있기를. 나의 소중한 친구에게, 부디 그 상처가 아물고, 그 삶에 평안의 길이 이어질 수 있기를 난 오늘도 기도한다. 


길을 만드실 주님을 의지하며, 다시 범사에 감사하기로 했다. 

감사하라고 하신 그 말씀대로. 









매거진의 이전글 퇴사 후 홀로 서는 시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