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쓰는 게 좋아서 씁니다.
오전 8시 30분. 쓰기 위해 책상에 앉은 이 시간. 새벽 내내 머릿속에 울리던 음악을 찾아 플레이한다. 어슴푸레한 기억에 영화 냉정과 열정사이의 메인 테마곡은 한 때 나의 싸이월드 BGM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저 차분하게 들을 수 있는 음악이라 좋다. 그중에 특히 첼로 연주곡은 글쓰기나 책 읽는 시간에 잔잔하게 함께 놓아두기 좋다.
오늘의 새벽기도 담당자였기에 평소와 다르게 이른 아침 하루를 시작했다. 6시부터 30분간의 새벽예배를 마치고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산책길에 나섰다. 오랫동안 상상했던 그 하루를 오랜만에 실천해 본다. 새벽 찬 공기가 여전히 온몸을 감도는 시간, 조금은 손과 귀가 아리고 그러다 머리도 살짝 찡한 느낌을 받았지만 상쾌함에 취해 그저 걷고 또 걸었다.
동이 트는 시간을 사진에 기록하며 가다 서다를 반복하니 시간은 좀 더 지체되었지만 약 40분간의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니 몸이 개운해지고 가뿐해짐을 느낀다. 바로 어제였으면 아직도 자고 있었을 시간. 최근 목이 많이 안 좋아진 상태이다 보니 따뜻한 물 한 잔을 마시고, 병원에서 받은 약으로 가글을 해준 뒤 아침 샤워를 마쳤다. 시나몬 차를 한 잔 내리고 빵 몇 조각을 자르니 8시 30분. 아직도 집은 고요하다.
이제 글을 쓸 차례다. 무엇을 쓸까. 매일 글쓰기를 하고 있지만 오늘도 고민하기는 매한가지. 평소와 다르게 시작한 하루 덕분에 끄적일 무언가가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이렇게 나의 아침이 시작되었다.
요즘 글쓰기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눈에 띄는 글을 쓰는 사람들, 메인에 오르는 글을 쓰는 사람들, 구독자가 늘어나는 사람들 등 주목받는 사람들의 글과 나의 글은 무엇이 다를까. 나의 글을 잠시 돌아보았다.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냥 그들의 글에는 이목을 집중시킬 어떤 매력적인 요소가 있겠거니 하며 생각을 접는다. 할 줄 모르는 분석을 해보겠다고 앉아있는 시간이 아깝다. 그냥 나는 오늘도 내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갈 뿐이다.
내가 속해 있는 팀라이트에서는 '작가라서 쓰는 게 아니라 쓰니가 작가다'라는 점을 늘 강조한다. 공감한다. 나 역시 이제는 누군가 '작가님-'이라고 불러주는 게 익숙해졌고 나 역시 습관적으로 누군가를 '아무개 작가님'이라고 호칭하는 게 편해졌다. 그만큼 쓰는 내가 익숙해진 것이고 작가라는 페르소나가 자연스럽게 내 삶에 스며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작가라서 쓰는 것도 강조하고 싶어 진다. 브런치에 글을 쓴 지 2년째. 2년 동안 꾸준히 썼고 지금도 쓰고 있기에 작가라는 호칭이 익숙해진 것이 사실이다. 만약 계속 쓰지 않았다면 여전히 나는 몸서리를 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평생을 작가로 살아가고 싶다는 마음은 없다. 그냥 쓰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을 뿐이다. 그러나 적어도 작가라고 불리다 보니 쓰는 것에 대한 일말의 책임감이 생겨 더 쓰게 되는 효과는 있다. 때론 스스로에게 그에 걸맞은 부담을 지우는 것도 행동을 지속하는 방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라서 쓰는 것' 또한 필요하다.
요즘 다시 내 삶이 많이 가라앉고 무기력해짐을 느꼈다. 내 안에는 나 자신을 향해 끝도 없이 나의 무능을 일깨워주는 내가 자리하고 있다. 오늘의 산책길에 그에게 질문을 던져보았다. 내가 무능하다고 말하는 너의 근거는 무엇인지 말해 보라고. 막상 질문을 던지니 별다른 답이 없다. '뭐지?' 순간 허탈함이 밀려왔다. 근거 없이 붙잡고 살아왔던 나의 잘못된 신념. 그것에 지난 십수 년을 발목 잡고 있었다는 생각에 조금은 어이가 없었고 의외로 시시한 결론에 그저 멍-해질 뿐이었다.
아무렴 오늘 이것을 느꼈다고 당장 사람이 짠-하고 180도 바뀌겠냐만은 그래도 새벽 산책의 좋은 성과라고 생각한다. 나를 끌어내리고 있던 잘못된 신념으로부터 한 발짝 나아간 시간이었다.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역시 단연 글쓰기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매일 살피고 꾸준히 기록해 온 '나'라는 존재는 글을 통해 깎이고 다듬어져 왔던 것이다. 표면적인 나, 그리고 외부세계를 바라보는 나를 기록했던 것이 시작이었다면 이제는 심연의 나와 나 자신을 바라보는 나를 더 많이 생각하게 된다. 끊임없이 반성하고 돌아보며 써 내려가는 이 행위를 멈추지 않는 이유는 그만큼 깊어지기 때문이다. 중심에 있는 본연의 나에게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이 오늘도 나를 쓰게 만든다.
'작가라서 쓰는 게 아니라 쓰니까 작가다'라는 말에 위로를 얻게 된다는 말을 종종 보았다. 그 말에 용기를 얻어 쓰게 된다는 이야기를 간혹 듣게 된다. 위로와 용기를 얻는다는 것은 그것에 나의 바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는 작가라서 쓰는 삶에 대한 재미와 희열도 느껴보길 바라본다. 쥐어 짜내는 시간도 생각보다 그리 나쁘지 않기에.
오늘도 난 그저 쓰는 게 좋아서 쓴다. 설령 그것이 아무 말일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