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는 곧 시차 적응이다.

글을 쓰지 않고 살아온 나와 글을 쓰기 시작한 나와의 시차 적응

by 알레
작가님은 왜 글을 쓰시나요?


이 질문을 던질 때마다 나의 답이 조금씩 달라짐을 느낀다. 처음에는 나를 알기 위해, 그리고 다음에는 그저 쓰는 게 좋아서였다. 이유는 조금씩 달라져도 여전히 변하지 않는 것은 ‘나를 기록한다’는 것이다. 나의 글은 언제나 ‘나의 이야기’로 채워진다.


故김광석 님은 그의 곡 <나의 노래>에서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이에게
시와 노래는 애달픈 양식
아무도 뵈지 않는 암흑 속에서
조용한 읊조림은 커다란 빛

나의 노래는 나의 힘!
나의 노래는 나의 삶


그에게 노래가 힘이었고 삶이었다면 나에겐 글쓰기가 그렇다는 것을 새삼 느끼며 살아가는 요즘이다. 여행 중에도 아침에 글쓰기가 떠오르고, 차 창 너머로 바라보는 낯선 세상 풍경도 글감 창고에 기록되어 남는 걸 보면 이제 정말 삶 쓰기가 되어가는가 보다.


3박 5일간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새벽 비행으로 인해 지친 몸을 잠시 뉘었다. 자다 깬 몽롱한 상태에서 문득 한 단어 떠올랐다. '시차 적응.' 불현듯 나의 글쓰기는 내 삶의 시차 적응이라는 생각으로 연결되었다. 여행의 피로와 시차로 틀어져버린 몸이 제 자리를 찾아가기 위해 사투를 벌이듯 글을 쓰기 시작한 뒤 나의 삶은 쓰지 않았던 시간 동안 켜켜이 묻어둔 본연의 나를 찾아가기 위해 사투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글쓰기는 언제나 부담과 불편함이 수반되며 또한 그러한 이유로 설레고 즐겁다.


삶을 돌아보면 생각보다 자주 간극을 경험하게 된다. 요즘 시대에 가장 대표적인 간극은 '본연의 나'와 '페르소나' 사이일 것으로 생각된다. 나의 눈에 비친 요즘 세상은 나다움에 대한 목마름이 최고조에 달해 보인다. 그도 그럴만한 것이 세상엔 온통 '나의 성공담'들이 가득하다. 그 크기야 각자가 정의하기 나름이지만, 작은 성공부터 큰 성공까지, 마치 성공과 성취 중독에 빠져 살아가는 듯 보일 지경이다.


최근 몇 년 간 매일 듣는 소식이 그러하니 나 역시 뭔가 이뤄야 할 것 같았다. 특히 나다움을 찾아 제대로 나의 삶을 살아내야만 할 것 같은 조급함과 불안감이 생겨났다. 사실 나의 글쓰기도 시작은 그러했다. 성공으로 가는 길에 글쓰기는 마치 전공 필수과목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제야 분명히 깨달은 것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다. 아니, 오히려 글쓰기가 주는 삶의 풍요를 지엽적으로만 바라보고 있었음을 반성하게 된다.


정리해 보자면, 나의 글쓰기는 곧 나를 기록하는 것이다.

본질인 '나'를 선명하게 스케치하는 것이고, 보다 더 가까워지는 중이다.


잠에서 깨어나도 여전히 울렁거리는 몸이 적응하면 아무런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듯, 나는 매일 글을 쓰며 삶의 울렁 거림을 조금씩 달래주고 있다. 그렇게 나는 매일 나만의 시차 적응을 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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