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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라도 빨리 깨닫는 게 답이다.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봐야 아는 거 아니잖아요.

by 알레

살다 보면 그런 순간이 있다. 굳이 안 겪어봐도 될 것을 기어코 겪어보고 뒤늦게 깨달음을 얻는 것. 옛 어른들이 굳이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봐야 아느냐고 하셨던데는 다 이유가 있었나 보다. 사람의 미련함은 그것을 결국 먹어보는 우를 범하는 경우가 인생에 꼭 한 번 이상은 찾아온다는 것을 알고 계셨던 것이다. 그리고 노파심에 문장으로 잘 남겨놓으셨다.


덕분에 경각심을 가지고 살아가게 된다. 아마 보통의 경우 사람들은 그럴 것이다. 그걸 누가 굳이 찍어 먹어봐. 당연히 구분하는 거지. 그러나 보이스 피싱에 당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말한다. 내가 뭐에 홀렸나 싶었다고.


우리는 생각보다 넓게 어리석음의 그물을 펼친 체 살아간다. 무엇이 되었든 지금 나에게 일어나지 않은 일이라고 스스로를 과신하면 안 된다. 죽을 때까지 언제 어떤 상황에서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저 지금이 아닌 것에 다행이라 여기고 감사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똥과 된장이야 그래도 구분이 될 속성이니 그걸 왜 구분 못하냐 할 수 있겠지만, 삶의 실전에는 애매하고 모호한 상황들이 생각보다 자주 발생한다. 그때는 스스로 현명해지기를 바라야 할 것이다.


성공을 논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성공의 자리에 서기 위해 수많은 실패를 경험했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실패는 기회의 상실이 아닌 그저 성공으로 가는 과정일 뿐이다. 인생의 성장과 성숙도 마찬가지의 과정을 거쳐가는 듯하다. 성숙한 어른이 되기까지 우리는 수차례 넘어지고 깨지는 아픔을 경험해야 한다. 그것이 성장통일수도 있고 때론 스스로의 선택에 따른 결과일 수도 있다. 무엇이 되었든 아직 삶이 주어졌다면, 벌어진 아픔에 머무르기보다 딛고 나아가기 위해 시선을 돌림이 현명하다.


물론 결코 쉬운 것은 아니기에, 어느 정도 일지는 모르겠지만 아파해야 할 시간 동안은 아파야 하고 견뎌야 하는 시간 동안은 견뎌야 그다음에 비로소 고개를 들고 나아갈 방향을 다시 바라볼 수 있는 법이다. 그러니, 아프다고 아픔에 머물러만 있지도, 주저앉아만 있지도 말자. 후회스럽다고 자꾸 고개를 뒤로 돌리지만 말고 만회할 수 있는 삶을 바라보자.


짧은 인생에 깨달은 것 한 가지가 있다면, '답은 내 마음속에 있다는 것'이다. 나는 늘 길을 잘 모르겠다는 말을 한다. 그러나 길을 잘 모르는 이유는 아직도 내가 내 마음의 소리에 제대로 귀 기울이지 못했음을 뜻한다. 또는 마음의 외침을 의도적으로 무시했거나.


이왕이면 하루라도 빨리 깨닫길 바란다. 한 살이라도, 하루라도 젊을 때 시행착오를 경험해 보길 바란다. 당신을 눈물짓게 만든 그날의 경험이 내일 다시 일어서게 만드는 힘이 되어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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