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도생이지만 함께라서 외롭지 않다
40대가 되면 뭔가 대단한 삶의 변화가 생겨날 줄 알았다. 일단 맞는 것 같긴 하다. 그러나 그것이 과거의 내가 상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 양상을 보인다. 과거의 나의 기대치는 성과를 거두는 삶으로서의 변화였고 그로 인해 경제적으로 안정된 삶을 살아가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정작 나는 오히려 불안정한 삶을 선택했기에 현재 내가 맞닥뜨리고 있는 삶의 변화는 애초의 기대와 전혀 다르다.
뭐라도 하면 뭐라도 될 줄 알았지만 뭐라도 되었다기엔 스스로가 아직 잘 받아들여지지가 않는, 그렇다고 아무것도 아니라기엔 뭐라도 하고 있기에 참 애매한 상태가 지속되고 있는 중이다.
대개 나이의 앞자리 수가 바뀌면 그때마다 삶의 변곡점을 지난다고 하는데 스물아홉에서 서른이 될 때와, 서른아홉에서 마흔이 될 때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마치 20대와 30대는 아직 끝나지 않은 에피소드 같았다면 40대는 새로운 시즌이 시작되는 느낌이랄까. 더욱이 마흔 살에 직장에서 떠났으니, 더 강렬한 이미지를 스스로에게 부여한 셈이었다.
언젠가 내 나이 50을 상상하며 지금의 나에게 건네고 싶은 말들을 편지로 적어본 적이 있었다. 다시 그때의 글을 꺼내보니 뭐 별 이야기는 없었다. 그저 지금 걸어가고 있는 길을 계속 가라고. 그리고 내가 느끼는 불안에 너무 마음을 두지 말라는 정도랄까. 그때의 글이 애절하지도, 구체적이지도, 특별한 어떤 내용을 담고 있지도 않지만 그러나 다시 꺼내 보며 상상해 봐도 아마 난 같은 말을 해줄 것 같다. 그냥 계속 가라고. 너 자신을 믿으며 끝까지 가보라고.
미래는 누구에게나 불안하다. 불확실하기에 어느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예측은 할지언정 확신은 할 수 없다. 아마 인간의 예언이 정확했다면 우리는 모두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노스트라다무스 형님 께서 존재하지 않을 거라고 그리 예언하셨었으니. 예언이라도 붙잡고 싶은 건 그저 불안을 떨치고 싶은 본능적인 연약함이지 않을까.
내가 매일 경험하는 가장 주된 감정은 불안이고 막막함이다. 차라리 초, 중, 고 때처럼 그냥 다음이 확실하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가 많다. 중간고사, 기말고사처럼 목표가 뚜렷하면 좋겠다. 그런데 지금 내가 마주하고 있는 인생은 전혀 그렇지 않다. 망망대해에서 노를 젓고 있긴 한데 주변에 안개가 뿌옇게 껴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체 그냥 멈춰 있을 수 없어 노를 젓고 있는 기분이다. 신기한 건, 그래서 되게 불안한데 동시에 매우 평안하다.
30대 때까지는 저 멀리 세워진 푯대를 바라보기 위해 애썼다. 그것이 보이지 않을 때 불안했고 삶의 방향을 잃어버린 듯했다. 그런데 40대가 되니 저 멀리 세워진 푯대를 바라보기보다 그냥 지금 눈앞에 보이는 한 걸음 앞만 바라볼 뿐이다. 그렇게 한 걸음 가고 또 한 걸음을 내디뎌가며 그저 묵묵히 갈 뿐이다. 가다 보면 어디엔가 닿겠지 하는 생각에.
글쓰기는 나에게 그런 한 걸음이 되어준다. 어떤 날은 그냥 멈춰 서있고 싶은데 글은 자신을 쓰라고 나를 재촉한다. 그래서 오늘도 글을 쓰며 또 한 걸음 나아가는 중이다.
요즘은 MZ세대 못지않게 40대에게 많은 이목이 집중되는 듯싶다. MZ세대가 새로운 트렌드를 선도해 나가는 세대라면 40대는 구매력을 가진 세대인 만큼 잘 붙잡아야 할 고객이 되는 듯싶다. 그러나 그보다 내가 느끼는 40대는 이제야 한 숨 돌리며 진짜로 나에게 집중하는 시기인 듯하다. 입시부터 취업, 그리고 결혼까지 내리 달려오다 현타를 경험하고 이제야 제대로 멈춰서는 시기. 그게 삶이 40대에 접어든 나에게 던지는 숙제이고 나 자신이 나에게 매일 던지는 질문이다.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으로 삶에 기여할 것인가.'
다행인 건 혼자가 아니라는 것. 나 혼자만의 고민이었으면 아마 내가 잘 못 된 것이겠지만 비단 나만의 고민이 아니라는 것을 그나마 위안 삼으며 오늘도 내게 주어진 하루를 살아간다. 우리는 비록 각자도생의 길을 걷고 있지만 동시에 함께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힘을 내본다. 그리고 또 힘을 내주길 기대해 본다.
아직 몇 걸음 가보지 못한 40대이기에 긴 걸음을 더 가야겠지만, 여전히 나의 바람은 한결같다. 돈을 많이 벌고 싶다보다 50에 돌아본 40대의 10년은 부디 뿌듯함이길 바라는 것. 나의 선택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은 것. 조금은 더뎠지만 그 시간에 나는 더 단단해졌음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이 지금 내가 바라는 삶이다.
오늘도 이렇게 나를 적어 내려 가며 오늘의 한 발짝을 걸어가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