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요. 우리에겐 아직 내일이 있잖아요.
하루 중 의외로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이 있다. 잠자는 시간. 아마 나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대번에 '무슨 소리?'냐고 되물을 것 같다. 사실 나는 잠자는 시간이 가장 아까운 시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니까. 그럼에도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어느 날 문득 은연중에 내 입에서 내뱉어진 표현을 들었기 때문이다. '아~ 좋다~' 침대에 누워 두 다리를 발 끝까지 쭉 펴면서 했던 말이다. 그렇다. 잠을 자는 시간은 여전히 아깝다 여기지만 침대에 눕는 그 순간, 그 순간을 좋아한다.
기다림은 참 많은 해석을 담아낸다. 기다림의 대상이 무엇이냐에 따라 기분은 천지차이다. 최신 스마트폰을 구입했을 때, 10년 넘게 사용한 노트북을 바꾸기 위해 새 노트북을 구입했을 때, 느껴지는 기다림은 언제나 즐겁기만 하다. 비행기 티켓을 끊어두고 그날이 어서 오기만을 기다리는 기다림은 또 어떤가. 직장인에게 휴가, 아니 금요일 저녁을 기다리는 마음은.
반대로 수술실 앞에서 담당 의사를 기다리는 마음은 초조함 그 이상의 무엇일 것이다. 뭔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 상대의 침묵이 길어진다면 그 또한 기다리는 내내 가시방석이다. 여행에서 돌아오는 시간 동안의 기다림은 깨어나고 싶지 않은 꿈이 계속되기를 바라는, 그러나 그럴 수 없어 서서히 받아들이는 체념의 시간이고 아쉬움과 작별의 순간이다.
인생은 참 다양한 기다림을 경험하며 살아간다. 빨강머리 앤처럼 삶을 대체로 설레는 기다림으로 살아갈 수 있으면 좋으련만 나이를 먹어 갈수록 설렘의 순간은 점점 줄어드는 기분이다. 오히려 인고의 시간이 점점 늘어나는 건 기분 탓일까.
나에게 가장 오랜 기다림의 시간은 무엇이었을까 생각해 보니, 첫째는 결혼이고 둘째는 아이였다. 나와 아내는 7년의 연애를 끝으로 부부가 되었다. 나름 긴 시간 연애를 했다는 것에 누군가는 놀라고 또 다른 누군가는 대단하다 말한다. 물론 연애의 기간은 너무나 행복하고 매일이 즐거웠지만 사실 그 시간은 어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마음은 일찌감치 결혼을 하고 싶었다. 참고로 나는 결혼 장려주의자이다. 즉, 이 사람이다 싶음 빨리 결혼하는 게 답이라는 주의라고나 할까. 그랬던 나지만 역시 결혼은 현실이었기에, 당시 대학원생이었던 나로 인해 우리에게는 반 강제적인 기다림의 시간이 시작되었고 그것이 7년이라는 세월을 흘려보냈을 뿐이다.
그리고 또 7년이다. 아이를 갖기까지. 그 사이 유산의 경험도 있었고, 몸과 마음을 추스르는 시간도 필요했기에. 아마 겪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아이가 잘 생기는 사람은 참 쉽게도 생긴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사람은 아무리 노력해도 매번 좌절을 경험한다. 아이를 갖기까지 나름의 우여곡절이 많았다. 나의 기다림보다 아마 아내의 기다림의 시간이 더 쓰디쓴 시간이었지 않았을까.
인고의 시간과 우여곡절의 산을 넘어 2021년에 지금의 아이가 태어났다. 그 어느 때보다 경이로운 순간이었다. 신생아실의 간호사 선생님이 아이의 손가락 10개, 발가락 10개, 눈코입, 팔, 다리를 확인시켜 주는데 그 당연한 것들이 어찌나 감사하던지. 이제는 매일 실랑이를 벌여야 하는 사랑스러운 고집쟁이가 되었지만 아이를 안고 있을 때마다 아빠라는 존재의 벅차오름은 삶을 통틀어 가장 오랜 기다림에 대한 평생의 보상이지 않을까.
그나저나 이제 곧 아이가 깰 시간이 다가온다. 얼른 글쓰기를 마쳐야겠다. 혼자만의 시간이 끝나간다. 안돼!!!
기다림이란 참 하루에도 다양한 얼굴로 찾아온다. 이왕이면 설렘으로 와주길, 이왕이면 봄날의 따스함으로 와주길 바라본다. 그러나 어떤 모습으로 오든 기다림이 있기에 기대감을 갖고 살아가는 것 아닐까. 오늘 좌절하더라도 내일 일어서길 기대하는 마음으로. 오늘 답을 찾지 못해도 내일은 조금 더 답에 가까워질 수 있길 기다리는 마음으로. 나는 오늘을 또 살아갈 뿐이다. 아직 내일을 기대할 수 있는 삶은 소중한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