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긴 들에도 봄이 왔듯, 빼앗긴 마음에도 봄은 언제나 온다
한 알의 씨앗이 땅에 떨어진다. 불어오는 바람에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다 지나가는 발걸음에 밟혀 땅속으로 점점 깊게 파고 들어간다. 땅속의 어둠이 두 눈을 가린다. 그렇게 씨앗은 짧은 생을 마감한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가쁜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기를 반복하며 눈꺼풀에 닿는 강렬한 빛을 느끼기 시작한다. '뭐지?' '이 따스함은?' '여기가 천국인가?' 살포시 눈을 떠보니 따사로운 햇살이 비쳐 투명해진 연둣빛 그림자가 보인다. 이윽고 '사르르' 들려오는 바람 소리를 느끼며 이제야 깨닫는다. 죽음이 다시 생명이 되었음을. 다시 태어났음을. 그리고 봄이 왔음을.
봄은 저마다 다양한 모습을 다가간다. 누군가에게는 움트는 생명의 탄생과 같은 벅차오름으로, 또 다른 누군가에겐 얼어붙은 마음을 어서 녹여주길 바라는 간절함으로 다가간다. '봄'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이미지는 '생명', '시작', '희망'과 같이 대체로 긍정적이다. 그러나 어떤 누군가에게는 다른 이의 행복을 지켜보며 상대적 박탈감과 더 큰 좌절감을 느껴야만 하는 아픔의 시간이기도 하다. 웅크린 마음을 활짝 펴게 만드는 봄의 따스함이 어떤 이에게는 여전히 그늘진 곳에 웅크린 체 시린 마음을 움켜쥐어야 하는 아픔이 된다.
그러나 빼앗긴 들에도 결국 다시 봄이 오지 않았던가.
상처받은 마음에도 그렇게 봄은 반드시 올 것을 믿는다.
나는 맑은 날의 햇살을 좋아한다. 파란 하늘에 봄날의 햇살이 더하면 하늘은 바라만 봐도 가슴속까지 시원하게 만드는 파란색으로, 그리고 땅은 편안함과 따뜻함을 자아내는 밝은 전구색으로 빛깔을 달리한다. 따스함을 딛고 시원함을 바라보니 대기가 순환하듯 마음도 거센 움직임을 시작한다. 그렇게 가만히 서서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괜스레 주먹을 불끈 쥐어본다. 마치 오늘 뭐라도 해내겠다는 마음을 먹은 사람처럼.
봄날 아침의 햇살은 부드러운 카스텔라처럼 사르르 녹아든다. 겨우내 꽁꽁 얼어붙은 땅은 쇠질을 해도 깨지지 않을 만큼 단단하다. 더 이상 생명을 잉태할 수 없는 황무지처럼 느껴질 만큼 단단한 그곳마저 봄날의 햇살은 부드럽게 스민다. 조금씩 조금씩 스며들어 어느새 언제 그랬냐는 듯 한 삽 푹 파이는 땅으로 변한다. 그리고 점점 황무지는 다시 푸르름을 입는다.
지난날 동안 내 마음은 어쩌면 꽁꽁 얼어붙은 황무지 같지 않았을까. 억지로 깨려고 두드리고 긁어내려 하면 할수록 오히려 생채기만 남았다. 이대로 만년설이 내려앉을 것 같은 차가움이 가슴속을 가득 메워가고 있음을 느낄 무렵 봄의 햇살이 내 온몸을 감싸 안아줬다. 그렇게 다시 녹아들고 있다.
나는 믿는다. 스스로 만년설을 품고 살지 않는 한 결국 우리의 마음에도 봄날의 햇살이 스미는 순간이 올 것이다. 아니, 온다. 반드시 온다. 모든 것은 내 선택이다. 내내 녹지 않는 만년설을 품고 사는 삶도, 회복과 소생의 힘을 머금은 햇살을 받아들이는 삶도, 결국 내 선택이니 살아있다면, 살아가야 한다면 녹을 줄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또 다른 생명을 움틀 수 있으니.
상처받은 마음, 감정적으로 깊은 수렁에 빠져 허우적대는 마음을 제대로 알 턱은 없으나 비슷한 어디쯤에는 머물러 본 경험은 있다. 제아무리 웃을 일 하나 없는 세상이라지만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으니까 행복해진다고 하듯, 내 감정의 자리도 종국에는 내가 정해야 하는 게 삶의 이치다.
다시 봄이 왔다.
다시 생명이 움트는 계절이 왔다.
여전히 웅크리고 있다면 한 발짝만 나아가 보자. 딱 한 발짝만 햇살이 드리운 곳을 향해 내디뎌 보자. 당신의 마음에도 그 햇살이 스밀 것이니. 그다음은 햇살에 맡기자. 상처받은 마음에 빼앗긴 우리의 마음에도 그렇게 봄은 반드시 올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