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40에 접어들면서 퇴사를 결심했고, 고민 끝에 행동으로 옮겼다. 밀려오는 후련함을 가지고 아내랑 아이와 함께 제주로 떠나 한 달 살기를 하며 뭔가 이뤄 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과 빨리 이뤄내고 싶다는 조급함을 가지고 돌아온 지도 벌써 2년 차에 접어들었다. 처음과 달리 수많은 날을 감정의 부침 가운데 보내야 했고, 점점 꺾이는 자신감은 자존감 마저 위태롭게 만들 정도였다. 행복하기를 선택했던 것의 대가는 순간순간의 우울감이었고 불행이었다.
나만 못하는 것 같다는 기분이 밀려올 때마다 밀려들었던 자괴감은 순간을 가장 불행하게 만들었고 나는 자주 그곳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다행인 건 말 그대로 순간순간의 감정이었을 뿐, 매일의 삶은 대체로 나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런 순간에 빠질 때마다 좋은 사람들이 곁에서 많이 응원해 줬고 지금도 나는 그들과 함께다.
불행과 행복은 종이 한 장 차이처럼 느껴진다. 동전의 양면처럼 행복을 뒤집으면 불행인 듯하다. 누구에게나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작년 한 해 동안 나에게 현실은 행복보다는 불행 쪽으로 살짝 기울어있었다. 그럴만한 게 퇴사 후 아직 이렇다 할 삶의 해결책을 찾지 못했으니까. 그리고 그것이 온전히 나의 선택의 결과임을 잘 알기에.
가끔 삶의 고민이 깊어질 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가 있다. 어김없기 고민을 털어놓았고, 나의 이야기를 듣던 나에게 이렇게 답을 해줬다. '너무 문제를 끌어안고 살아가는 것 같아. 사실문제를 안고 살지 않는 사람이 어딨겠어. 누구나 크고 작은 문제들을 안고 살잖아. 너무 문제에 집중하면서 자신을 괴롭히고 있는 것 같아.'라고.
듣고 보니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나의 현실이 불행 쪽으로 살짝 기울어 있다고 느꼈던 것은 내가 자꾸 그 상황들과 감정들을 움켜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상황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삶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라고도 이야기한다. 그러면 자연스레 더 많은 행복을 느낄 수 있게 된다고.
어쩌면 나는 늘 높은 곳만 바라보았던 것 같다. 내가 바라보는 곳은, 닿으려면 닿을 수 있지만 닿기 위해서는 오늘도 내일도 삶을 갈아 넣어야만 가능한 삶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정작 내가 원하는 삶의 모습은 그게 아니라는 것 또한 알고 있기에 나는 늘 그 괴리감에 갈팡질팡했다. 그래서 나의 순간은 늘 괴로웠다.
40대는 무언가를 빨리 이루어야만 한다는 자기 오류에 빠지기 쉬운 때인 것 같다. 살면서 들은 말이 30대에 다져놓은 기반으로 40대부터는 치고 나가야 하는 시기라는 것이다. 그러나 나의 40대는 오히려 다시 기반을 닦기 위해 리셋 버튼을 누른 상태다. 그러면서 하루빨리 치고 나가고 싶은 욕망과 조바심은 여전하다.
40대가 된 첫 해는 퇴사고민과 퇴사를, 두 번째 해는 자기 오류의 늪에 빠졌다 나오기를 수차례 반복하며 보냈다. 그리고 맞이하는 세 번째 해, 이제야 나는 나만의 속도를 되찾아가는 기분이다. 쓰고 단 인생의 잔을 마시는 게 습관이 되어버린 듯 하지만 그 시간은 부정적인 나를 도려내고 본연의 나를 다듬는 시간이 되어줬다. 덕분에 이제는 좀 가벼워진 기분이다.
삶은 언제나 불행과 행복이 반복된다. 어쩌다 보니 불행이 더 진한 색을 띠어 파스텔 톤의 행복을 덮어버리는 것 같다. 그렇지만 잘 생각해 보면 불행보다 행복의 순간이 더 많았을지도 모른다. 감정도 습관이라고 한다. 어떤 습관을 길들일지는 온전히 내 선택이다. 이왕이면 행복을 느끼는 오감이 발달하길 바라본다.
순간은 불행할지라도 삶은 행복하길 간절히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