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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왜 매일 시간이 부족하지?

혹시 시간이 부족한 게 아니라 관리할 마음이 부족한 건 아닌지.

by 알레

'아, 오늘도 시간이 없네.'

'난 백수인데 왜 매일 시간에 쫓기지?'


근래 들어 자주 드는 생각이다. 분명 회사를 다닐 때와 비교하면 내가 가용할 수 있는 시간의 절댓값은 상당히 증가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마음으로 느껴지는 시간은 늘 촉박하다 못해 모자라다. 그 덕에 매 순간 예민하게 곤두선다. 어떤 날은 먹는 시간, 자는 시간도 아깝다. 인간이 하루를 살아가려면 '회복'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 자체가 맘에 안 드는 날도 많았다.


근데, 같은 고민을 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시간의 부족함은 결국 나의 선택의 결과라는 사실을. 모든 상황을 거꾸로 되짚어보면 확연해진다. 오늘 내가 피곤한 이유는 어제 늦게 잠든 탓이다. '분명 하루를 일찍 시작한 것 같은데 왜 벌써 아이의 하원 시간이 돼버린 것 같지?'라는 생각이 들 때는 어김없이 내가 오늘 스마트 기기와 얼마나 친하게 진했는지를 돌아본다. 쓸모 있다 생각하여 손에 쥐고 있지만 생각보다 쓸데없이 버려지는 시간이 많기에. 오죽하면 사람들은 스마트 디톡스가 필요하다는 말까지 할까.


나의 백수라이프를 돌아보면 하루가 충만해질 때와 하루를 그냥 날려버렸다는 마음이 들 때는 크게 딱 두 가지 이유로 나뉘는 것 같다. 첫 째는 수면 시간이 충분했는가이고 둘 째는 스마트폰과 내외하는 사이가 되었는가이다. 나는 감정적인 상태에 따라 하루에 대한 만족도 편차가 좀 심한 편이다. 특히 우울감이 강하게 몰아칠 때는 가용할 수 있는 신체 에너지의 70%는 감정과 싸우기 위해 써버리는 듯하다. 결국 생산성을 위해서는 30%의 에너지에서 나눠 써야 하는 상황이니 만족도가 매우 낮아질 수밖에.


특별한 이유 없이 우울감이 몰아치는 날은 어김없이 수면량이 부족했을 때거나 수면의 질의 좋지 않았을 때다. 워낙 커피를 좋아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예전처럼 많이 마시는 편은 아니다. 어쩌다 커피를 많이 마시는 날에는 잠은 들지만 아침에 개운함을 느끼지 못한다. 내내 선잠 자고 일어난 기분이다.


요즘은 커피보다는 아이를 재우고 난 뒤 아내와 함께 보내는 드라마 타임이 더 큰 이유일 것 같다. 낮시간에는 해야 할 일들에 시간을 쓰고, 저녁에는 아이와 시간을 보내고 나니 정작 둘 만의 시간은 밤늦은 시간뿐이다. 하루의 컨디션 관리를 생각하면 결코 좋은 수가 아님을 알지만, 그러나 또 쉽게 포기하기엔 즐거움이 큰 시간이니 늘 갈팡질팡한다.


퇴사 후의 삶을 상상만 했던 시절에는 나의 삶을 생산적이고 건강한 것들로 적절하게 채워 넣을 수 있을 거라 확신했다. 직장 생활을 할 때 그만큼 간절했고 아쉬웠기에 가능할 거라 믿었다. 그러나 인간은 그런 존재가 아닌가 보다. 여유로워지면 욕구도 없어진다. 언제 그런 것들을 원했냐는 듯 내 몸은 도무지 움직여지지 않는다. 무한한 자유를 적절하게 다룰 줄 아는 건 아마 매우 성숙한 인간에게나 가능한 일인 듯하다. 그렇지 않다면, 지독함의 끝판왕이던가. 그것도 아니라면 시한부 인생이던가...


이제 3월부터는 매월 초에 '만약 이번 달 말이 내 생이 끝나는 날이라면'이라는 마음으로 일기라도 써야겠다. 아니면 다이어리에 뭐라도 적어둬야겠다. 그렇지 않음 매일 시간을 낭비하는 삶을 살아갈 것 같다는 불안한 생각이 든다.


구독하고 있는 무과수님의 레터에서 이런 문장을 발견했다.


혹시 여전히 무언가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스스로를 탓하거나 신경 쓰고 있다면 마음을 조금 더 편안히 먹어도 된다는 말을 해주고 싶어요. 저는 모두가 각자의 할 일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모두가 책을 내고, 모두가 유튜브를 하고, 모두가 N잡러가 되어야 하는 건 아니니까요. (개인적으로는 창작자는 좋은 소비자가 있음으로 완전해진다고 생각해요)

암튼, 마음 가는 대로 하면 됩니다. 무엇이 됐든요.


머리로는 동의하지만 마음으로는 아직 완전히 동감하지는 못하나 보다. 생각과 달리 여전히 무언가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스스로를 꾀나 자주 탓하고, 신경 쓰며 살아야 고 있기 때문이다.


조금 더 삶을 편안하게 살고 싶었다. 그런데 돌아보니 이것은 시간의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시간의 많고 적음이 전혀 연관이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더 중요한 건 내 삶을 대하는 마음의 문제다. 그리고 그런 나를 대하는 태도의 문제다.


사실 오늘따라 여유가 없다 느껴지는 건 또다시 마감이 임박한 무언가가 눈앞에 있기 때문이다. 했으면 진작 했을 일이지만, 잘하고 싶다는 그놈의 완벽주의가 오히려 전혀 집중하지 못하게 만들었음을 안다. 누굴 탓할 수도 없는 온전히 내 잘못임을 알기에, 오늘이라도 끝내겠다는 마음으로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 근처 카페로 꾸역꾸역 나왔다. 그리고 반성문 같은 오늘의 글쓰기로 생각과 감정을 달래준다.


지금 나에게 가장 큰 재산은 시간이다. 잘 활용하면 누구보다 몇 곱절은 불릴 수 있는 어드벤티지를 가지고 있으면서 오히려 줄줄 새어나가는 것을 제때 땜질하지 못하여 구멍이 커져버렸다. 다시 월요일이고, 곧 다시 월 초가 돌아온다. 새 마음을 먹기에 좋은 타이밍이니, 오늘부터 다시 재산 불리기에 집중해 봐야겠다.


대체 언제 철들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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