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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극적인 세상에서 진짜 나로 살아가는 법

지금 당신의 삶의 축은 어디에 있습니까?

by 알레

오랜만에 집을 나섰다. 지하철 역까지 가면 어김없이 음식점들과 노점상이 놓여있는 곳을 지난다. 코를 자극하는 구이의 향기,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러운 분식들. 분명 좀 전에 든든하게 먹어 배가 부른데도 향기를 맡는 순간, 먹음직 스런 음식을 보는 순간 당장이라도 먹을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이번엔 소파에 앉아 TV를 틀어본다. 한 편의 짧은 영화를 보는듯한 광고. 손에 들고 있기만 하면 스마트해지는 듯 보이게 만드는 마법 같은 장면들과 귀에 꽂고 있으면 크리에이터가 된 듯한 느낌을 자아내며 없던 창의력도 솟아날 것만 같게 하는 감각적인 영상. 오늘도 나의 감각은 온갖 자극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길거리의 향기는 배고픔을 자아내고 TV 속 화려함은 굳이 필요에 이유를 만들어준다. 그러나 나는 지금 배고프지 않으며 가지고 있는 것으로도 이미 충분하다. 자극적인 세상에서 나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자극에서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견물생심을 믿는 나로서는 매일 수많은 자극 속에 살아가는 삶 가운데 그것으로부터 자유롭기란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자극적인 세상에서 대체 어떻게 하면 나로 살아갈 수 있을까?


없이 살아보니 그것이 전혀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아, '없이'라는 표현조차 다소 자극적인 표현인 듯하다. 뭐 또 그렇게 없는 건 아니니까. 다시.


퇴사 후 이전처럼 지출을 할 수 없게 되니 애초에 나에게 그것들을 살 수 있는 가능성이 없다면 자극에서도 일부분 자유로워질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물론 진정한 의미의 자유가 아니라고 반박한다면 인정. 나는 그저 지금 가질 수 없음을, 당장 누릴 수 없음을 수용한 것이니까. 그렇지만 이 또한 욕망의 지배 아래 놓인 인간에게는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이지 않을까. 일편 수동적이긴 해도.


또 다른 방법은 시선의 축을 옮기는 것이다. 갖고 싶은 것에서 가지고 있는 것으로. 가만히 돌아보면 우린 가진 게 참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만큼 살아보니 대체로 주변의 공통점은 서로 각자를 맥시멀리스트라고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그만큼 필요보다는 버리지 못해 이고 지고 살아온 것들이 참 많다. 그중에서는 진짜 필요했던 것도 있지만, 상당수는 자극에 이기지 못해 소유한 것들이라는 사실은 놀랍지도 않다.


이처럼 시선의 축을 이미 소유하고 있는 것에 두기 시작하면 굳이 더 가져야 할 명분이 사라진다. 명분이 사라지니 스스로도 납득시키지 못하는 꼴이 돼버리고 결국 소비에 대한 통제력을 갖게 되는 나름의 선순환 구조가 형성된다.


앞의 두 가지 방법은 어쩔 수 없는 환경을 설정하는 방법에 해당된다면, 오래 걸리긴 하지만 더 궁극적이며 장기적인 방법은 진짜 나의 필요에 질문을 던져보는 것이다. 이 방법은 분명 어렵다. 왜냐면 의사 결정은 이성이 아닌 감정에 따른다는 말처럼 욕망은 이성적 판단에 늘 앞서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방법이야 말로 자극적인 세상에서 진짜 나로 살아가기 위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진짜 나로 살기 위해선 나를 잘 알아야 한다. 나에게 질문해야 하고 지속적으로 나와 대화를 나누며 합의점을 찾아가는 과정. 그 과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이 잘 될수록 성장에서 성숙의 단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나의 삶의 축이 나에게 있지 않고 나 외의 곳에 있다면 나는 끊임없이 자극 앞에서 필요치 않은 고민과 갈등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어쩌면 위의 세 가지 방법은 동시에 진행돼야 효과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환경적인 통제와 자발적인 절제가 더해져야 겨우 자극에서 벗어날 수 있을 만큼 세상이 던지는 자극은 강력하다. 세상은 언제나 '지금', '당장' 갖지 않으면 엄청난 기회를 잃는 것처럼 표현한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어디 그런가? 그러는 것들보다 안 그런 것들이 절대다수였음을 삶이 더해질수록 깨닫게 된다.


조금이라도 자극에서 멀어지는 선택을 해보자. 하루에 단 얼마간이라도 자극에서 벗어나보자. 나의 욕망을 자극시키는 대화에서, 콘텐츠에서 한 발 물러서보자. 그럼 분명히 알게 될 것이다. 결국 불필요한, 그 자극이 없어도 삶은 계속 살아진다는 사실을. 그리고 불안하지 않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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