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이라는 시간을 여행하는 삶
오랜만에 넷플릭스 시리즈를 봤다. <DARK> 3개의 시즌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드라마는 독일의 한 시골 마을이 배경이 되는 드라마다. 사건 사고도 거의 없는, 지루할 만큼 정적이고 조용한 동네에서 미스터리 한 사건이 발생한다. 의문의 실종 사고는 점점 미궁에 빠지는데 우연히 단서를 발견한다. 33년 전 발생했던 유사한 미제 실종 사건. 그렇다. 이 드라마는 시간 여행자들의 이야기이다.
드라마 리뷰를 하자는 건 아니고, 개인적으로 타임슬립 이야기를 좋아한다. 지나온 과거에 남겨진 아쉬운 선택들을 바꿀 수 있다면 현재의 삶이 지금 보다 더 나아질 것 같은 막연한 기대. 그리고 살아갈 앞날에 대한 힌트를 얻게 된다면 현재 느끼는 불안과 두려움이 사라지 않을까 하는 소망. 결국 큰 맥락에서 시간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들은 이러한 범주 안에서 반복되는 듯하다.
시간 여행이 재미난 소재임은 맞지만 그것을 좀 더 과학적 이론에 근거하여 이해하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일전에 본업이 물리 선생님인 친한 작가님이 인터스텔라를 과학 이야기로 쉽게 풀어 설명을 해준 적이 있었는데 듣는 동안은 재밌었지만 지나고 나서 또 잊어버렸다. 잘은 모르지만, 시간 여행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려면 적어도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 정도는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만큼 복잡하고 어려운 개념을 대중적인 드라마로 풀어내는 시나리오 작가의 힘은 정말 대단하다. 물론 드라마의 흐름을 따라가기 위해서 몇 회차를 보는 동안 계속 검색에 검색을 거듭했어야만 했지만.
그런데 이런 과학적 이해가 없이도 시간 여행을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우리의 삶을 돌아보는 것으로 말이다. 삶은 어제, 오늘, 내일이라는 시간의 삼각점으로 반복적으로 찍어가며 흘러가는 시간의 연속이다. 생애주기라는 틀 안에 우리는 누구도 멈출 수 없는 시간 여행을 지속한다.
드라마나 영화처럼 극적으로 넘나들 수는 없지만 그러나 인생을 돌아보면 우리의 시간 여행도 꽤나 극적이라고 할 수 있다. 사진이나 영상으로 기록된 과거의 어느 시점을 돌아볼 때면, 삶은 연속적으로 흘러왔지만 연속되지 않은 기록 속에서 보이는 변화를 자주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 변화는 충분히 드라마틱하다.
외적인 변화뿐만 아니라 내면의 변화는 또 어떤가. 삶의 주도권을 잃어버리고 살아왔던 지난날과 비교하면 지금의 나는 제법 많은 부분 주도권을 쥐고 살아가고 있다. 그만큼 내면의 성장이 있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만큼 고뇌하는 시간을 지나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우리는 현재를 살아간다. 그러나 과거에 근거하여 현재의 시간을 보내면서 내일을 바라본다. 과거의 경험을 반면교사 삼아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오늘에 최선을 다하는 삶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그러나 만약 과거로 돌아가 나를 만난다면 나는 이렇게 말해줄 것이다. "내일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지 마"라고.
나의 시간여행은 결국 오늘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지나치게 내일에 몰두하면 오늘이 희생되기 쉽다. 과거에 함몰되어 있으면 살아가는 오늘이 두려움과 불안 속에 갇혀버린다. 현재의 관점에서 과거와 미래는 존재하지 않는 시간이다. 나는 최근에서야 이 것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제야 내가 머뭇거리고 망설이는 것들의 기저에 두려움이 깔려있음을 깨달았다. 무의식 중에 과거의 흔적이 나의 발목을 잡고 있었음을.
이제야 나는 진정한 시간 여행을 하고 있다. 바로 오늘이라는 시간 여행. 내일이라 불리는 그 시간도 결국 오늘이 될 것이니, 오늘에 충실한 것이 가장 지혜로운 선택임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 지나온 과거에 대한 아쉬움도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궁금함도 이제 나에겐 큰 의미가 없다. 나의 시간은 오늘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