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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일상이 휴일인 퇴사자의 삶

by 알레

나의 퇴사는 1년 6개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21년 10월 22일. 나는 지난 5년간, 아니 도합 9년 간의 회사 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자유인이 되었다. 퇴사와 동시에 나의 가족과 함께 제주 한 달 살이를 다녀왔다. 이후에도 평일 시간을 이용해 아이와 아내와 함께 동쪽으로 남쪽으로, 수도권으로 여행을 다니고 있다.


나와 친한 누군가는 나에게 혹시 돈 많은 백수 아니냐고 장난스레 말한다. 그럴 때마다 속으로 생각한다. '진심으로 그랬으면 좋겠다!'라고. 우리가 여행을 떠나는 건 돈이 남아돌아서가 절대 아니다. 다른 소비를 줄여서라도 아이와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을 더 갖고 싶을 뿐이다. 삶은 예나 지금으니 녹록지 않은 건 동일하니. 시간이라도 많은 지금 그것이라도 누려야 하지 않겠나 싶었다.


작년 한 해 동안은 감정적으로 정말 많이 힘들었다. 퇴사에 대해 여러 번 곱씹어 보기도 했다. 물론 그럴 때마다 결론은 동일했지만. 경제적으로 해법을 찾아내지 못한 가장의 마음은 정말 매일이 심판대에 올라가는 기분이었다. 이런 상황을 옆에서 말없이 견뎌주는 아내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 마음이 어려우니 주어진 시간마저 충분히 가치 있게 활용하지 못하는 스스로가 더 한심했다.


여전히 해답은 찾지 못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삶에 여유가 생겼다. 지금 나에게 무엇이 가장 소중한지에 대해 많이 생각했고 아이와 추억을 쌓는 것이라는, 이성적으론 지극히 당연하지만, 마음으로는 많은 고민 끝에 내린 결론에 도달했다. 그 덕에 시간에 대한 선택이 보다 수월해졌다.


최근에는 감사하게 새로운 팀에 합류하게 되었다. 직장인일 때 꿈꾸던 일하는 방식이 있었다. 소위 느슨한 연대감 속에 일을 놀이처럼 즐겁게 하되 놀이에 머무는 게 아니라 실제 매출이라는 성과로 이어지는 일을 하는 팀에 속해보고 싶었다. 최근 합류한 팀이 그런 팀이다. 회사처럼 규율에 속박되지 않으면서도 스스로 책임감을 가지고 자신의 역할을 다한다. 덕분에 여행도 맘 편히 다녀올 수 있다. 그러면서 오히려 여행을 떠나는 순간도 이 팀에서 만들어 볼 수 있는 콘텐츠나 굿즈를 고민하게 된다. 이것이야 말로 진정 일. 놀. 놀. 일이 아니겠나.


퇴사해서 가장 좋은 건 평일을 휴일처럼 보낼 수 있다는 점이다. 모두가 출퇴근을 하는 시간에 구속받지 않는 삶. 그리고 평일에 어디든 갈 수 있는 삶. 성수기가 없고, 피크 타임은 피해 갈 수 있는 삶. 그것이 퇴사자의 특권이다. 말로만 들어도 설레지 않은가?!


단, 그만큼 포기해야 하는 것이 많다. 평일을 휴일처럼 보내기 위해 대부분의 평일은 조용히 집에만 있는다. 가장 힘든 건 내면의 평화를 유지하는 것일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지난 1년 6개월은 솔직히 '생존'이라고 표현해야 더 맞을 것 같다. 그럼에도 이 선택을 돌이키고 싶지 않은 건 나에게 휴일 같은 평일이 주는 가치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나의 성장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벌었고, 삶을 주도적으로 살기 위해 '나'라는 한 인간을 더 깊이 탐구하게 된다. 직장에서 벗어나보니 이번엔 직장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잘 살아내고 있는 사람들과 하나 둘 연결고리가 생긴다. 새로운 관계를 통한 인적 네트워크가 만들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좋은 사람들과 서로 응원하고 격려를 나누는, 말 그대로 새로운 삶의 공식이 이어지고 있는 중이다.


모든 선택은 분명 대가가 따른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자신의 선택을 존중할 수 있는 마음만 있음 그것이 퇴사이든 아니면 직장생활을 더 유지하는 것이든 모두 다 가치 있는 선택임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스스로 길을 찾고자 노력하기를 멈추지 않으면 삶은 그리 쉽게 무너지지 않음을 또한 배우게 되는 시간이다. 퇴사를 해보지 않았으면 몰랐을 인생의 배움. 이것 또한 퇴사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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