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내게 가르쳐 준 것
스승의 날이다. 특정 일이 있다는 것은 좋은 것 같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등 그날의 대상에게 감사의 마음을, 사랑을 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삶은 대체로 분주하다. 나 하나를 돌아보기도 버거울 만큼 시간은 복잡하고 빠르게 흘러간다. 그러다 보면 받은 은혜를 잊고 지나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서로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겠지만, 그리고 은혜를 베푼 격이 되는 사람은 굳이 그에 대한 보상을 바라고 한 것은 아니겠지만, 어떤 날이 되어서 오랜만에 감사 인사를 주고받게 된다면 서로 기분이 좋다.
세상에 스승이라 불리는 이는 많다. 그러나 '스승'이라는 단어 앞에 '참(된)'이라는 형용사가 붙는 순간 딱 떠오르는 누군가가 있는지는 조금 다른 얘기다. '스승'의 사전적 의미를 보면 이렇다. '자기를 가르쳐 인도하는 사람(네이버 사전 참조)'. 뜻에 따라 생각해 보니 어쩌면 '스승'은 되기도 만나기도 어려운 존재인 것 같기도 하다. 누군가를 가르친다고 다 스승이 아니니.
이쯤에서 난 잠시 글쓰기를 멈추고 생각에 잠기게 된다. '나에게 스승님은 누구신가?'
우선 떠오르는 분이 한 분 계신다. 고등학교 선생님이시자 신앙의 선배이신 분. 여전히 제자들과 함께 소통하시고 때에 따라 만나며 서로의 삶을 진심으로 응원해 주시는 분. 그분은 진정 스승님이라 불리는 게 마땅하다. 아직까지 실제로 그런 경험은 없지만, 인생에 어려움에 직면하거나 깊은 위로가 필요할 때 찾아봬면 언제든 품어주실 것 같은 분이라는 믿음이 있다.
또 어떤 분이 있을까. 다른 누군가를 언급하기 전에 사실 가장 먼저 이야기했어야 할 분들이 부모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말해 무엇하랴. 나에게 아버지 어머니는 '자기를 가르쳐 인도하는 사람'이라는 사전적 의미에 가장 부합하는 분들이니. 두 분에 대한 마음은 어버이날 즈음 썼던 글에 자세히 기록했기에 여기에서 다시 꺼낼 필요가 있나 살짝 고민했지만 그럼에도 나에게 부모님 만한 스승이 또 없기에 짧게라도 다시 언급하는 것이 맞다고 여겼다.
고등학교 선생님, 그리고 부모님 말고도 나에겐 목사님이 또 한 분의 스승이시다. 청소년 시절부터 지금까지 가까이에서 지켜봐 주시고 이끌어 주신 분이신 만큼 나의 삶에 좋은 영향력을 나누어 주신 분이시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살면서 나를 불편하게 만든 사람들. 이런 분들은 주로 회사에서 만난 사람들이다. 어떤 모습으로든 등장하여 다채로운 방식으로 사람을 짜증 나게 만드는 존재들이 있다. 순간에는 분노하게 만들고, 잠시 자리에서 일어나 바람을 쐐러 나갈 수밖에 없게 만들었던 사람들. 그런데 지나고 보니 그들이야 말로 참된 스승이었다.
삶이 내게 그걸 가르쳐주었다. 나에게 불편한 마음을 갖게 만드는 사람들. 그땐 그들을 향해 날 선 비판과 험담, 그리고 그들 탓을 하며 마음을 달랬다. 그러나 지나고 보면 그들은 나의 모자란 부분을 들춰내어 직면하게 만들었고, 결과적으로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사회생활이라는 복잡 다양한 변수가 작용하는 정글 같은 곳에서 내가 나로 서 있기 위한 '돌아봄의 시간'을 강제로 제공해 준 사람들이고, 나와 결이 맞는 사람에 대한 기준을 가질 수 있게 해 주었다.
타산지석이라 했던가. 저들이 있었기에 과거의 난 직장에서 좀 더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었고, 이들 덕분에 힘들어하는 누군가를 더 이해해 줄 수 있는 깊이와 '사람'에 대해 수용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돌아보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 남는 건 '그때 내가 어떻게 반응했느냐' 뿐인 것 같다. 나는 나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 그 반응들의 면면을 자주 되짚어 보았다. 그 덕분에 내가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음을 깨닫는다. 그러하기에 이제야 나는 그들을 향해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다.
당신은 나의 스승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