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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레 Jun 13. 2023

책은 쌓아둬야 맛이지!

난 슬플 때 학춤을... 아니 책을 산다.

아직 읽지도 않은 책들이 수북이 쌓였다. 쌓인 책들은 책상 양쪽에 칸막이 열람실처럼 벽이 되어 방 안의 다른 공간과 경계를 지어준다. 가끔 혼자 고민하게 된다. '나는 책을 읽으려고 사는 건가 아니면 모셔두려고 사는 건가?' 마음은 전자이지만 어째 결과는 점점 후자로 향해가는 듯한 요즘 나의 책 쇼핑을 되돌아보게 된다.


나는 다독자가 아니며 그렇다고 책을 엄청 좋아하거나 독서 습관을 가지고 있던 사람도 아니다. 그저 퇴사를 앞두고 자기 계발을 시작하기 위해 한 권 두 권 읽기 시작했을 뿐인데 지금은 제법 책이 많아졌다. 생각해 보니 오래전부터 책이 많은 공간을 좋아했다. 대학생 때 도서관에 자주 앉아있었던 이유도 그 때문이다. 공부를 하기보단 그냥 그 공간의 느낌이 좋았다. 지금도 내 방에 책이 쌓이는 걸 보니 그 마음이 그대로 남아있나 보다. 


책이 있는 공간을 좋아하긴 하지만 요즘 책 값이 많이 비싸진 탓에 필요 외의 소비는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콘텐츠를 만들고 글을 쓰다 보니 지속적인 인풋을 위해 다른 사람들이 올려놓은 책 콘텐츠를 저장해 두었다가 가끔 충동적으로 몰아 구매하는 경향이 있었다. 처음 자기 계발을 시작할 땐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해 아직 가늠할 수 없어 이 책 저 책 좋다는 책들을 다 사서 읽었다. 그중 어떤 건 잘 읽혔지만 더러는 잘 읽히지도 와닿지도 않아 덮어 버린 것도 있다.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겪고 나서야 책을 구매하는 속도가 줄어들었다. 양심적으로 일단 있는 책들부터 읽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 노력의 저지선을 뚫고 구매 버튼을 누르는 때가 있으니 비로 기분이 가라앉을 때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특히 SNS에서 책을 읽고 퍼스널 브랜딩을 이뤄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볼 때면 가장 심리적으로 타격이 크다. '저 사람은 책을 읽고 됐는데 나는 왜 안되지?'라는 생각이 무한정 되풀이 되면서 불안 심리가 책을 구매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고 또 아무 책이나 사는 건 아니니 차라리 다행이려나? 그리고 울적하다고 사는 게 쓸데없는 게 아니라 책을 사는 거니 그것도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려나? 


그래도 그간 쌓인 책들 덕분에 앞으로 읽을거리에 대한 걱정은 없다. 육아를 시작한 뒤로 외향인에서 내향인으로 바뀌어 가는듯해서 조용히 책을 읽는 시간도 제법 견딜만하다. 간혹 주변에서 나에게 '책 많이 보잖아요'라고 얘기할 때면 늘 마음 한구석 찔림이 있긴 하지만 그럴 땐 그냥 나에게 주문을 걸듯 그 말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날은 꼭 책을 펼쳐 본다. 


일전에 어떤 작가님께서 하신 말씀이 기억난다. 책은 원래 쌓아두고 하나씩 꺼내 보는 거라고. 정확한 표현은 기억나지 않지만 이런 맥락의 말씀을 하셨던 것 같다. 나도 그렇게나마 스스로 위안을 삼아 본다. '그래도 책이니까. 소비되고 버려질 것이 아닌 오래도록 나를 풍요롭게 만들어줄 지혜의 보고니까.' 난 나를 위해 투자한 거라고 그렇게 위안 삼아보며 오늘은 책장을 검색해 본다. 아무래도 책상은 한 번 정리해야 할 것 같다. 


사실 책이든 다른 것이든 소비를 통해 얻는 즐거움은 같은 이치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무언가를 손에 넣는다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이던가. 그러나 소비와 소유의 즐거움은 지극히 순간의 즐거움에 불과하다는 것을 잘 알기에, 이왕이면 나의 마음을 살찌우는 마음의 양식을 소비하는 게 낫지 않을까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E-Book이라는 좋은 대안이 있지만 여전히 종이책을 구입하는 건 밑줄을 긋고 책 모퉁이를 접어가며 읽는 독서 방법은 저자에 대한 존중의 표현이며 책을 대하는 내 나름의 진중한 태도라 여기기 때문이다. 


글을 쓰며 다시 방을 둘러본다. 그리고 쌓여있는 책을 보며 다시 한번 혼잣말을 내뱉어본다.


역시 책은 쌓아둬야 맛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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