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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레 Jul 04. 2023

오늘도 힘차게 돌고 멈추고 다시 돌기를 반복한다.

그저 제 몫을 다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띠 띠리리 리리 띠리리 띠리리 디디 띠 띠리리 리리 띠리리리리리리' 뭐라고 표현하든 이걸 보고 이해하는 분은 같은 회사 제품을 사용하시는 분이겠거니 하며 혼자 피식거려 본다. 아무튼 그 익숙한 멜로디를 들으면 이제 몸이 절로 일으켜진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학습된 반응이랄까. 손이 비치는 묵직한 문을 여니 깨끗하고 뽀송해진 옷가지들이 온기를 머금은 상태로 얼굴을 내비친다. 


참 뜬금없지만 오늘도 우직하게 오늘치의 세탁물을 잘 감당해 준 녀석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해 본다. 






요즘은 세탁기들도 색이 참 예뻐졌다. TV 광고를 보면 이젠 세탁기마저 힙하다. 안 예쁘면 사고 싶지 않고 싶을 만큼, 집에 들여놓고 싶을 만큼 디자인이 훌륭하다. 생각해 보면 오래전 집에서 사용하던 세탁기들은 대부분 투박한 색깔이었던 것 같다. 아마 디자인보다는 기능에 충실했던 시절이었기에 그랬겠거니 싶다. 지금이야 기능에서의 경쟁이 더 이상 무의미해진 것 때문일까, 유난히 디자인 경쟁이 치열해진 기분이다. 그래도 덕분에 예쁜 거 하나 집에 놓을 수 있으니 기분은 좋다. 물론 눈에 거의 띄지 않는 베란다 한쪽 구석에 우두커니 서있을 뿐이지만.


결혼 후 줄곧 세탁기만 사용하던 우리 집에 건조기가 입주한건 아이가 생기고 나서다. 건조기는 주변의 아기 엄마들이 적극 추천했다. 처음엔 망설였지만, 기존에 있던 세탁기를 처분하고 세탁기와 건조기가 세트로 구성되어 있는 제품으로 교체했다. 사용해 보니 알겠다. 교체하길 정말 잘했다는 것을 말이다. 나 역시 아이가 있는 집이라면 무조건 추천하고 싶은 제품 1위가 건조기다. 이제는 신혼 필수품처럼 장만하는 듯 하지만 그래도 혹, 당장 필요 없을 거라 생각하는 분이 있다면 제발 그 생각을 내려놓으라고 말리고 싶을 정도니.


삶을 편리하게 만들어주는 많은 것들 중에 세탁기와 건조기는 상위권을 차지한다. 특히 요즘처럼 갈수록 동남아보다 습해지는 우리나라의 여름철을 생각해 보면 세탁기 못지않게 건조기는 필수템이라고 본다. 


가끔이지만 사극 드라마에서 그 시절 여인내들이 개울가에 앉아 빨래 방망이를 두드리며 빨래를 하는 모습을 볼 때면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만약 저분들이 지금으로 시간여행을 할 수 있다면 소쿠리를 들고 빨래방에 자주 왔다 갔다 하려나?' '만약 운 좋으면 나라님 옷도 들고 왔다 갔다 하는 모습도 볼 수 있으려나?' 하는. 요즘 워낙 타임슬립을 테마로 하는 드라마가 많다 보니 나도 모르게 멍-하니 세탁기를 바라보며 잠시 상상에 잠겨본다.






오늘도 세탁기는 버튼을 누른 만큼 그저 돌고 돌고 또 돈다. 참 충실한 친구다. 언제나 제 몫을 다한다. 그 덕에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깨끗하고 뽀송한 옷을 입을 수 있다. 나도 오늘 주어진 오늘치의 삶을 충실히 살아내기 위해 애써본다. 하루가 끝날 무렵 나 자신에게 '참 충실한 친구다'라고 이야기해 줄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오늘을 살아본다. 


오늘의 할 일이라는 버튼을 눌러보지만 늘 그렇듯 결과물은 입력값에 충실하게 산출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돌 수 있는 만큼이라도 돌아주면 그걸로 다행이라 여긴다. 살아보니 나의 내면에는 하루를 온전히 작동하지 못하게 만드는 저항이 참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 숱한 저항 가운데에도 뭔가를 꾸역꾸역 하며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 오늘은 꼭 음성으로 전해줘야겠다. 


'오늘 하루도 충실히 살아줘서 고마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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