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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레 Aug 09. 2023

누가 내 (입속의) 비타민을 옮겼을까

의사 선생님 비타민과 사탕은 선결제 부탁 드릴게요

오늘로써 5일째다. 아이가 아데노 바이러스로 내내 고열에 시달린 시간. 다행히 5일째가 되니 38도를 넘는 고열은 보이지 않는다. 이제야 한시름 놓는다. 마음이 좀 풀리고 나니 새삼 코맹맹이 소리를 내며 힘겹게 단어를 내뱉는 아이의 어눌한 발음이 한편으로는 안쓰러우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웃기기도 하다.


5일간을 돌아보니 피로도가 제법 높아진 건 사실이지만 아내랑 피식거리게 되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들도 떠오른다.


아이의 고열 증세를 보고 난 뒤 혹여 코로나 바이러스는 아닌지, 수족구는 아닌지, 노심초사하며 병원에 갔던 첫날, 아내는 진료를 보고 웃음을 참지 못한 얼굴로 나오는 게 아닌가. 뭔 일인가 물어봤더니, 진료가 끝나고 걱정거리를 한가득 쏟아낸 엄마와 달리 아들은 진료실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선생님에게 손을 쭉 내밀며 당당하게 비타민을 요구했다고 한다. 그것도 콕 집어서 ‘앰버 비타민!’이라고. 물론 '사탕도!'라는 말도 빼먹지 않았다.


이를 본 선생님은 ‘아이가 콕 집어서 앰버 비타민을 달라고 요구할 정도의 의지라면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은데요 어머니’라고 답했단다. 민망한 건 엄마의 몫일뿐, 아이에게 소아과 선생님은 비타민과 사탕을 주는 산타할아버지 같은 존재인가 보다.  


여담이지만, 우리 아들은 치과에 가면 자동차를, 소아과에 가면 비타민과 사탕을 마치 선 결제하듯 당당하게 요구한다. 어린아이의 순수함이란 참 민망한 웃음을 짓게 만들지만 그래도 덕분에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다. 


병원에 다녀온 뒤라 한동안은 좀 컨디션이 괜찮아 보였다. 그러나 금방 다시 고열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해 다음날 다시 병원에 갔다. 역시, 이번에도 아이는 당당하게 사탕과 비타민 두 개를 받고 나와 행복해한다. 이번엔 앰버 비타민이 아닌 로이 비타민이다. 아, 참고로 앰버와 로이는 아이가 좋아하는 로보카 폴리의 캐릭터다. 아무튼. 비타민을 오물거리며 자리에 앉아있던 아이는 잠시 뒤에 벌어질 상황을 전혀 알지 못한 채 그저 행복해하고 있었다. 엉덩이 주사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아이는 영문도 모른 체 엄마와 간호사 선생님과 함께 어떤 방으로 들어갔고, 머지않아 ‘으앙, 으아앙~, 흐아악~ 엄마~~~~~~~’하는 아이의 3단 고음 울음소리가 대기실까지 들렸다. 괜스레 마음이 아픈 상태로 아이가 나오면 꼭 안아줘야겠다 생각하고 있는데 이번에도 엄아와 간호사 선생님이 웃음을 참으며 나오는 게 아닌가. 


이번엔 또 무슨 상황이려나 물어봤더니, 엉덩이 주사를 놓기 위해 서서 상체만 엎드린 상태로 비타민을 먹고 있던 아이는 주사 바늘이 꽂히자 순간 놀라 엉덩이에 힘을 주며 상체를 곧바로 쳐들어 올린 체 울음을 터뜨렸다. 근데 그 순간 입안에 있던 비타민이 날아간 것이다. 분명 당황스럽고 근육 주사로 엉덩이가 아픈 그 상황에서도 아이는 ‘로이? 로이!’라고 비타민을 찾고 있었더란다. 


결국 간호사 선생님이 다시 비타민을 하나 쥐어 주는 걸로 상황은 종료되었다. 물론 집에 가는 동안 아이는 불쑥불쑥 억울했는지 눈물을 계속 흘렸지만.


고열과 싸우는 시간은 서로에게 모두 고되고 긴 시간이다. 검색해 보니 아데노 바이러스는 꼬박 5일은 고열 상태가 지속된다는데, 정말 그렇긴 한 것 같다. 5일째가 되어서 고열증상이 멈춘 것을 보니. 아이를 갖기 전에는 어린아이의 경우 39도, 40도의 고열이 지속되면 진심 크게 잘못되는 줄 알았다. 근데, 꿋꿋이 비타민과 사탕을 요구하는 32개월 아들의 정신력을 보니 꼭 그런 건 아님을 깨달았다. 


39도가 넘는 고열은 처음이라 체온계에 찍히는 숫자의 높고 낮음에 따라 일희일비했지만, 정작 본인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요구할 건 당당하게 요구하는 것을 보며 이게 바로 중꺾마(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정신이구나를 배운다. 내 아이의 강인한 정신력을 진심으로 리스펙 하게 되는 순간이다.


육아는 분명 고된 날들의 연속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고된 순간보단 덕분에 웃고, 덕분에 행복하고, 덕분에 성장하는 날들이 많기에 오늘도 서서히 잊힐 기억을 글 속에 추억으로 기록해 본다. 아이로 인해 오늘치의 웃음이 적립되고 행복이 쌓여가는 것이 새삼 감사한 요즘이다.

  

그래도 우리 이제 아프지 말자. 제발. 아빠는 널 무척 사랑하지만, 하루의 몇 시간은 어린이집에 가 있는 게 더 좋긴 하단다. 아들, 미안. 


열이 있어도 해맑은 너의 정신력를 진심으로 리스펙한다.



글쓰기로 우주정복을 꿈꾸는 브런치 작가들이 모여 팀라이트가 되었습니다. 
팀라이트 매거진에는 매월 한 가지 주제를 선정하여 각양각색 이야기를 작가님들의 다른 시선과 색깔로 담아 갑니다. 이번 달 주제는 <웃음>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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