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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페인 한량 스티브 Aug 11. 2023

나를 웃게 만드는 건

그대. 당신.

8월 한 달 모처럼 만에 가족과 휴가 중입니다. 

어느새 우리나라의 여름은 폭염 아니면 스콜 중 하나가 되어버렸어요. (소나기는 디폴트)

그러니 날씨 자체를 즐기기엔 아쉬움이 크지요. 

그래도 까페, 식당, 쇼핑몰 어디를 가도 시원하게 반겨주니 그것으로 족합니다.


스페인에선 에어컨이 있는 곳이 생각보다 의외로 없어요. 

아니, 실은 있어도 잘 안 켜요. 40도가 넘는 사악한 기온인데 대체 왜?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결국 돈이죠. 전기료를 감당하기가 어려우니까요.


그러니 식당에서는 선풍기 몇 대 돌리거나 아님 창문을 열어젖혀놓습니다.

거리 테라스에 테이블이 있는 경우엔 자동 분무기를 뿌리며 열기를 달래지요. 

집에서는 해 떠 있는 시간에는 무조건 셔터를 내리고 전등 두어 개만 켜서 암굴 생활을 영위하고요. 


스페인에 여행 온 손님들에겐 농반진반 한마디 건넵니다:

여름은 스페인에서 타 죽거나, 한국에서 쪄 죽거나 둘 중 하나라고요.

그럼 구름 한 점 없이 태양만을 오롯이 마주하는 

스페인 남부 세비야의 광장 한복판을 지나가더라도 잠시나마 빵 터집니다.


야외 활동을 아무리 좋아해도 스페인의 여름은 감당하기 쉽지 않아요.

비발디의 사계 중 여름은 다들 지치고 늘어지는 상황을 그대로 묘사하고 있지요.


그런 열기 속에서 힘을 내게 하는 건 투박한 얼음 들어간 상큼한 상그리아 한 잔 들이켜는 겁니다.

적당한 취기 속에 신나게 수다 떨다 시에스타로 낮잠 한숨 자면 하루를 이틀처럼 사는 매직을 경험합니다. 

  



작년 이맘때만 하더라도 코로나가 완전히 끝난 게 아니었어요. 

요즘 재감염자가 늘어난다며 이슈가 되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만 그런 듯 싶어요.

그 당시만 해도 정말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잔뜩 있었죠.

계속 스페인에 있는 게 맞는지,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건지, 가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문자 그대로 전전긍긍하며 하루하루를 감내해야 했어요.


그런 저에게 힘과 웃음을 주게 만든 건 고색창연한 건물과 위인들의 작품들 보단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사람의 목소리를 전화기 건너 안부를 주고받을 때.

그 사람과 메신저에서 손편지 쓰듯 서로에 대한 마음과 생각을 나눌 때.


아빠가 무엇을 하고 있건 변함없이 지지하며 응원하는 가족이 있고,

본인도 분명 어려울 텐데 후원금을 보내준 천사들이 있었기에,

웃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웃음을 넘어 울음이 저를 덮었지요.

  



일상을 되찾은 지금, 이제는 쉬는 날이 없습니다.

이러다 객사하는 거 아닌가 싶어 하루만이라도 쉬게 해 달라고 빌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으니,

인생은 살아도 살아도 여전히 모르는 것 투성이입니다. 


문득 코로나 당시 얼마나 어려웠고 힘겨웠는지는 

분명 미디어에서 숫자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자료가 있겠지만,

저는 기억나는 게 별로 없습니다.

다들 팩트가 중요하다고 하지만, 객관적 지표로 제시되는 건 시간 지나면 흐릿해져요.

(아니, 그건 스티브 머리가 나빠서 그런 거 아녀요?라고 한다면, 

네, 님 말씀이 모두 맞습니다. 반박불가. 크흡...)


하지만 그때 느꼈던 감정은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저에게 웃음을 준 분들. 고마운 사람들. 복 받으실 분들. 아니 받아 마땅하신 분들.


웃음 또한 시간이 지나면 옅어질 겁니다.

프라 안젤리코의 템페라화 작품이 오랜 시간 지나면서 

색이 빠지고 심지어 패널에서 떨어져 나간 것처럼 말이죠.


그러니 복원이 필요할 수도 있을 거예요.


회화의 복원이 복원전문가를 통해서 이루어진다면,

감정의 복원은 사람을 통해서 완성되는 거겠지요.

 

옅어지긴 해도 없어질 순 없어요.

저와 당신의 마음이 느끼는 거니까요.

당신이 있어 웃음도 울음도 소중한 추억입니다. 


프라 안젤리코, 수태고지, 1435, 패널 위 템페라 (출처: 프라도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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