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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늘 커피처럼 모자라다

시간을 기록하는 새로운 방법

by 알레

'시간과 커피, 두 단어를 연결 지어 하나의 문장으로 만들어보기.'


재미난 미션이 주어졌다. 시간과 커피. 둘을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 내가 매일 느끼는 둘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둘 다 항상 모자라기만 하다. 집에서 거의 매일 스타벅스 벤티 사이즈 정도의 커피를 마신다. 참고로 벤티 사이즈의 용량은 591ml(20oz)인데도 불구하고 늘 아쉽다.


시간도 마찬가지다. 아이를 등원시키고 하원 시간까지 결코 적지 않은 시간을 보내지만 턱없이 모자라다. 분명 오늘 아침, 다이어리에 To-Do List를 적을 때만 해도 충분했는데. 대체 누가 다 마셔버린 걸까. 아니면 금이라도 가서 새어버린 걸까. 결국 아이를 재운뒤 새벽 시간까지 다 끝내지 못한 일을 붙잡는 날이 반복된다.


나의 이번달 키워드는 '정리'다.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의 재정비가 필요하다. 특히 시간관리가 급선무인데, 다이어리에 0부터 23까지 숫자를 적고 시간단위로 기록하는 것은 도저히 내 취향이 아니라 다른 방법이 필요해 고민 중이었다. 그러던 중 한 작가님의 글에서 묘한 아이디어를 발견했다.


나는 하루에도 여러 번 모자를 바꿔 쓴다. 아침 운동 중에는 '언니라는 모자를', 시어머님 앞에선 '어미', 간호 봉사를 할 때는 '선생님', 혼자만의 시간에는 내 이름이 적힌 '나'라는 모자를 쓴다. 다시 코칭을 하는 자리에선 '코치'로, 예배를 드릴 땐 '하나님의 자녀'라는 모자를 쓰고, 집에 돌아와 남편과 함께 할 때는 '아내'의 모자로 바꿔 쓰게 된다. 그중에 가장 편안한 모자는 '나'라는 모자다. 아무렇게나 푹 눌러써도 좋으니까.

-마더홍 작가님의 글, <아홉 번의 모자를 바꿔 쓰는 날> 중에서 재구성함


'오호! 이거 재밌네!'


작가님의 글을 보자마자 느껴진 감정이다. 동시에 나의 하루를 시간이 아닌 행위 단위로 정리해 보는 건 어떨까 싶어 바로 오늘 하루를 기록해 봤다.


매일 아침, '아빠와 남편'이라는 모자로 하루를 연다. 아이를 등원시키고 돌아와 '기록자'라는 모자로 바꿔 쓰고 책상에 앉는다. 다이어리에 지나간 하루를 정리하고 오늘 하루 해야 할 일을 세팅한 뒤 이번엔 '크리에이터'의 모자를 쓴다. 요즘 숏폼 영상 편집에 재미를 느끼고 있는데 오늘은 기록 영상을 찍고 편집까지 마쳤다.


이제부터는 '작가'의 모자를 깊이 눌러쓴다. 금요일은 개인적으로 일주일 중 가장 바쁜 하루다 보니 아기 하원시간 전에 글쓰기라도 마쳐야 마음이 편하다. 메트로놈처럼 고르게 째깍거리는 초침 소리에 맞춰 연신 자판을 두드려대다가 어느 순간 글문이 막힌다. 이럴 땐 잠시 '나'라는 모자로 갈아 쓰고 숨 고르기를 해준다.


슬쩍 친구한테 채팅으로 말을 걸며 수다 몇 마디를 나누다 보니 다시 '째깍' 소리가 '재깍!'으로 들리기 시작한다. 이번엔 마음속에서 외친다. '재깍재깍 쓰지 못해!?' 화들짝 놀라 서둘러 모자를 바꿔 쓴다.


저녁이 되면 '예배자'라는 모자를 쓰고 교회를 간다. 예배를 마치고 다지 집에 돌아와 '나'라는 모자를 대충 걸치면 하루가 끝난다.


모자를 쓰는 행위에 빗대어 하루를 표현하니 재미도 있고 오히려 정리가 잘 되는듯하다. 어쩐지 시간순으로 정리하는 하루는 조금 인간미가 떨어지는 느낌이다. 마치 선글라스 차림에 빨간 모자를 쓰고 빨간 호루라기를 입에 문 교관이 초시계를 들고 나를 감시하고 있는 기분이랄까.


작가님의 글을 통해 관점을 조금만 달리하면 삶을 재미나게 기록할 수 있음을 깨닫는다. 시간 단위로 기록하면 보다 디테일한 분석이 가능할 테지만 조금은 융통성 있는 접근도 필요하지 않을까. 드디어 오늘 적절한 타협점을 발견했다. 덕분에 이번 한 달의 기록엔 매일 모자를 썼다 벗는 기록이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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