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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 고민 중이라면 진지하게 다시 생각해 보세요

퇴사 2년 차 생존자의 고백. '솔직히 X빡세요'

by 알레

새벽 2시 30분. 눈을 떴다. 평소라면 아직 깨어 있을 시간에 잠에서 깼다. 오늘은 아침 6시에 회의가 있어서 전 날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등에 땀이 흥건하다. 자기 전에 찬물로 샤워도 하고, 미리 에어컨을 틀어놓아 방 안을 시원하게 만들어 두었지만 밤사이 차오르는 열기는 등판을 축축하게 적시기 충분했다.


물 한 모금 마시고 다시 잠을 청해 보지만 온몸으로 느껴지는 불쾌감은 더 이상 잠들지 못하게 만들었다. 결국 거실로 나와 자리에 앉았다.


사실 더위만이 문제였다면 그냥 그 새벽이라도 다시 찬물로 땀을 씻어내고 들어가 누우면 그만이다. 그보다 더 근본적인 원인은 멈출 줄을 모르는 부정적인 생각들 때문이었다. 무슨 바이러스에 걸린 컴퓨터처럼 팝업창이 무한대로 열리는 듯이 생각이 끊이질 않았다.


돌아보니 퇴사한 지 어느덧 2년째다. 완전한 단절은 아니었지만 소소한 수입만으로 견뎌온 시간은 시쳇말로 X빡세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요즘은 그 어느 때보다 매월 정기적으로 입금되던 급여소득의 소중함을 절감한다. 가끔 2년 전의 내 모습이 오버랩된다. 금방이라도 해낼 것 같은 포부로 얼굴 한가득 웃음꽃을 피우며 사무실을 나서던 그때의 나를 다시 마주 보고 있자니, "잘했어, 잘 선택했어!"라는 그 한마디를 내뱉기가 점점 망설여지는 기분이다.


한동안은 나 자신이 모든 가능성을 다 잃어버린 사람 같았다. '무능한 존재.' 별 다섯 개가 이마에 붙어있는 CF처럼 이 다섯 음절이 이마에 착 달라붙어 마음 깊은 곳까지 곪게 만들었던 시간을 보냈다. 최근에야 그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오긴 했는데, 아직도 몸이 기억하는 듯하다.


그러고 보면 고통은 마치 TV 같다. 전원이 들어오면 쓰라림의 기억을 여러 시간대에 골고루 편성해 보여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 한 가지는 2년 동안 제법 단단해졌다는 것이다. 연단의 시간을 보내고 나니 이제 제법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오늘 새벽도 그랬다. 요동치는 가슴과 끊어버릴 수 없는 생각의 반복이었지만, 소용돌이의 중심에서 한 발 물러서서 부정적인 감정이 소멸될 때까지 기다려줄 수 있었다.


과거의 나에게 퇴사는 새로운 기회이자 희망의 메시지였다면 현재는 생존 그 자체다. 그럼에도 변함없는 것은, 난 지금도 퇴사는 여전히 찬성한다. 비록 지난 2년 동안 쓰나미 같은 감정을 겪기도 했지만 그 덕분에 나를 둘러싼 자의식이라는 알을 깨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 새벽, 전부터 즐겨보던 인플루언서의 콘텐츠를 둘러보다가 지식창업과 관련된 그분의 전자책을 구매했다. 지금의 난 그 어느 때보다 실천 의지가 충만한 상태이기에 '다시 한번 더'라는 간절함으로 마지막 배팅을 했다. 이제 앞으로 남아있는 4개월 안에 뭔가를 만들어 내기 위해 이를 악 물고 달려볼 것이다.


새벽에 무심코 켜졌던 불안의 스위치 덕분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과연 앞으로 첫 번째 입금이 기록되는 날은 언제일 것인가. 지금부터 한껏 부픈 마음으로 기대해 보기로 했다. 반나절의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불안이 의지의 도화선이 되어줬으니 오히려 잘 된 일인 듯하다.


앞으로는 좋은 일만 일어날 거라 믿자. 삶은 내가 믿는 대로 흘러간다고 한다. 2년을 반추해 보니 그 말이 옳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의 무의식은 늘 안될 거라는 메시지를 흘려보냈고 난 그렇게 믿었으니. 이제부터는 '어떻게 하면 가능할까?'와 함께 매일 마법의 주문을 외우며 살아가볼 생각이다.


자, 입금의 쓰나미여! 내게로 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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