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한가운데 활시위를 당기는 기분으로 글을 쓴다

아내가 없는 하루엔 육아 멀티력이 최고조가 되어야만 한다.

by 알레

'원씽'과 '멀티력'은 단어의 의미부터 상충된다. 한 번에 다양한 일들을 처리해 내는 멀티력과 한 가지에 몰입하는 원씽. 단어만 보면 서로 대치되는 듯 하지만 실생활에서 느끼는 것은 오히려 상호 보완 관계라는 것이다. 한 가지를 온전히 해내기 위해서는 잔뿌리처럼 자잘한 일들을 동시 다발적으로 처리해 내야만 시간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아침부터 아내와 나, 둘 다 외부 일정이 있는 날이었다. 아이를 일찍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고 각자의 볼 일을 보기 위해 출발했다. 처가에 간 아내는 느지막이 집에 올 예정이니 아이의 하원부터 저녁 시간 육아 담당은 '나'라는 것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볼일을 보고 집에 돌아올 때까지만 해도 크게 실감하지 못했는데, 하원시간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긴장이 된다. 생각해 보니 오늘 써야 할 글을 쓰지 못했다. 지난 며칠간 새벽 3시, 4시경에 잠들었더니 거의 반쯤은 가수면 상태로 하루를 보내는 듯했다. 순간 정신을 집중하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자, 이제 뭐부터 해야 하지?'


하원 뒤부터 시간의 흐름을 상상하며 최대한 틈을 만들기 위한 나름의 전략을 짰다. 무엇보다 저녁 식사가 가장 고민이었는데 아이에겐 미안하지만 오늘은 중식으로 결정했다. 일단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하원시킨 후 집에 돌아와 후다닥 몰아쳐 아이 손을 씻기고 옷을 갈아입혔다. 잠시라도 틈을 보여선 안된다. 어느 순간 아이가 비 협조적인 태도로 돌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까진 일단 오케이.


이번엔 중국집에 배달 주문을 마쳤다. 음식이 도착하기 전, 아이 식판과 물병을 씻고 아이를 자리에 앉혀 TV를 틀어줬다. 음식이 도착한 뒤 아이 먹을 것을 덜어 놓고 내 몫을 후루룩 해치웠다. 아이랑 함께 밥을 먹으면 늘 마음이 급하다. 여유를 부리다 오히려 제때 먹지 못 한 경험을 한 두 번 겪고 난 뒤부터 그냥 빨리 먹는 게 차라리 속편 하다.


남은 탕수육을 덜어놓고 중국집 그릇을 재빠르게 정리해 밖에 내놨다. 아이가 아직 자장면과 탕수육을 먹고 있는 중이지만 밥 한 술 국 한 그릇은 먹어야 하는 전형적인 한국인의 피를 타고났기에 얼른 국을 데우고 미지근해질 때까지 놓아뒀다.


아이의 식사 타이밍을 봐가며 커피를 내렸다. 커피를 내리고 난 뒤 밥과 국을 먹였다. 아이의 식사가 모두 끝나고 난 뒤 아이가 TV를 보는 동안 설거진을 마쳤다. 이제부터는 글을 쓰자!라고 마음을 먹었는데, 급 졸음이 쏟아진다. 정신 못 차릴 정도로 졸음이 쏟아진다. 안 되는데...(꾸벅)... 얼른 써야 되는... 데...(또 꾸벅) 연신 고개를 떨구다 겨우 정신을 차렸다.


겨우 쓰긴 썼는데... 그냥 오늘은 일기라도 쓰자라는 심정으로 글을 쓴다.


퇴사 후 집에서 육아와 일을 병행하다 보니 일과 삶의 경계가 모호해졌다. 모호해진 경계를 넘나들며 말 그대로 짬짬이 한 줄, 한 줄 이어가는 글쓰기는 도무지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흐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잔뜩 긴장하게 만든다.


마음이야 늘 글쓰기도 육아도 잘 해내고 싶지만, 현실은 언제나 마음을 졸일 뿐이다. 그래도 덕분에 처음부터 다시 읽고 쓰기를 반복하니 쓰기와 퇴고가 동시에 이뤄지는 가성비 글쓰기라는 능력치를 얻게 되어 다행이라 여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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