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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레 Sep 14. 2023

밤새지 말란 말이야

밤 샘의 후유증 = 다음 날 하루가 사라져 버린다.


바로 어제오늘의 일이다. 매주 목요일 오전 6시에 있는 팀 회의에 최근 몇 주간 참석을 하지 못했다. 늘 이유는 있었다지만 어떤 이유건간에 그것이 합당하든 변명이든 이유가 반복되면 마음에 부담이 커지기 마련이다. 오늘 회의는 꼭 참석하겠노라 다짐하고 있었는데, 하필 화요일 밤부터 아이에게 수족구 증상이 시작됐다. 그로 인해 수요일부터 가정 보육 중이다.


당초 계획했던 하루의 스케줄이 모두 틀어지고, 목요일 오전 회의에 준비해 가기로 한 내용은 하나도 준비하지 못한 상태. '이럴 바에야 그냥 밤을 새우자'라고 마음을 먹었다. 


아이를 눕히고 뒷정리를 한 뒤 아내도 오늘 출근이어서 잠자리에 든 시간. 혼자 방에 앉아 자료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밀려오는 피로감에 자리에 앉았다 서기를 반복하니 시간이 금방 흘러갔다. 몽롱한 상태로 오랜만에 아침 회의에 참석했다. 


우선 내가 브리핑할 내용은 조사한 만큼 전달하고 나니 급 피로감이 몰려왔다. 줌 화면을 바라보고 있는데 점점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지 나 조차도 모르겠는 상태에 접어들자 그냥 화면을 껐다. 더 이상은 무리겠다 싶어 책상에 엎드린 상태로 회의 내요을 듣고 있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아내가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고 있고 그 사이 아이도 일어나 칭얼거리고 있는 게 아닌가. 


회의는? 글쎄. 어느 순간부터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유를 모르겠는데 노트북에 띄워져 있던 인터넷 창이 모두 닫혀있었다. 물론 줌 화면도. 어차피 아내가 일어나면 회의에서 나올 생각이었던 터라 그냥 그대로 아이를 데리고 거실에 누웠다. 컨디션이 안 좋은 아이는 계속 엄마를 붙잡고, 아내는 출근시간이 지연되는 상황에 난감해하고. 나는 나대로 몽롱한 상태고. 결국 아이를 눕혔고 나는 정신을 잃었고 아내는 출근을 했다. 


오전 내내 자다 깨기를 반복, 아이는 입 안이 아파 울다 말다를 반복. 물이라도 먹으면 좀 나아지려나 싶지만 아이는 한사코 거부한다. 그나마 아내가 출근 전에 약이라도 먹여 다행이었다. 그렇게 또 오전시간이 흘렀고, 그나마 정신을 차린 오후. 내내 먹기를 거부하며 누워있던 아이는 그제야 주스라도 마셨다. 


퇴사 후 이만큼 견뎌오면서 가끔 '이게 맞나?'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었다. 그래도 그땐 나의 선택을 후회하진 않았다. 그러나 요즘은 조금 다르다. 같은 질문에 대해 '잘 모르겠다'로 답하게 된다. 아무래도 시간이 그만큼 흘러버린 탓도 있고, 그 사이 성과를 만들어 내지 못한 탓도 있겠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나에게 이 길이 맞는 건가?'에 대한 의문이 떠나지 않기 때문이다. 


바라는 삶의 모습이 있고 그 삶을 이루기 위해선 지난날의 선택이 분명 맞다고 믿었는데, 그 과정에서 겪게 되는 감정적 부침, 그리고 자존감 하락은 예상했던 것 이상이다. 극복해 낼 수 있다고 스스로 믿으며 견뎌보지만 밤 샘으로 쌓인 육체의 피로는 눌러놨던 마음의 피로감을 모두 들춰내는 듯하다. 오늘 하루 독박 육아 보다 내 마음이 날 힘들게 만드는 걸 보니.


이래서 밤을 새우면 안 된다. 밤을 새우면 언제나 후회했는데, 알면서, 후회하면서 또 밤을 새웠다. 문제는 오늘도 밤샘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 하아, 이걸 누굴 탓하랴. 부디 오늘은 이른 새벽에라도 잠자리에 들 수 있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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