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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많다고 글을 잘 쓰는 건 아니다

by 알레

요즘 1시간 타이머를 맞추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몇 가지 챌린지에 참여하다 보니 무엇 하나라도 길게 늘어지면 하루 계획이 틀어지기 때문이다. 그 덕에 글쓰기도 무조건 1시간 이내로 끝내려 한다. 1시간이라는 마감시간을 정해 놓고 나면 기계적이든 쥐어 짜내든 무어라도 쓰게 된다. '써야만 한다'는 압박감은 정말로 쓰게 만든다.


인생을 통해 확실하게 배운 것이 하나 있다면 시간이 많다고 시간을 잘 활용한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나를 포함하여 지금까지 내가 만난 사람들의 99%는 시간이 많으면 오히려 하루가 늘어진다는 말을 했다. 여가 시간에 한이 맺힌 듯 살았던 직장인 시절엔 그렇게 다짐했지만 정작 시간의 통제권이 완전히 나에게 주어진 이후 언제 그랬냐는 듯 한 없이 늘어지는 삶을 살았다. 지금은 그나마 경계선에 서있는 중이다.


그러니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우리가 글을 쓰지 못하는 건 시간이 없어서가 아니다. 그냥 오늘은 글을 쓸 마음의 여유가 없을 뿐이라는 걸 인정하자.


솔직히 하루하루를 마감에 쫓기듯 몰아치며 살아가고 싶지 않았다. 근데 시간이 많다고 여기는 순간 습관적으로 넷플릭스 그물에 낚여버리는 걸 깨닫고 나니 그냥 나는 나는 스스로를 의지박약형 인간으로 인정해 버렸다. 말이 좀 심하다 싶을지 모르겠지만 사실이 그러니 큰 타격은 없다. 오히려 깔끔하게 인정하고 나니 이제부터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가 더 명료해진다.


비단 글쓰기뿐만 아니라 아무 생각 없이 몇 시간이고 지나가게 만드는 것들이 아닌 행동을 하려면 물살을 역행하려는 힘이 필요하다. 삶이라는 급류에서 제자리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적잖은 힘이 들어가는데 역행하려면 오죽할까. 이미 생각부터 힘이 드는 건 당연한 이치다. 그러니 스스로 의지가 부족함을 탓하지 말자. 그냥 그건 자연스러운 거니까.


그래서 자기만의 타이머가 필요하다. 마감의 압박을 줄 수 있는 장치.


꾸준히 글을 쓰기 위한 장치에 대한 나만의 팁을 몇 가지 남겨 보겠다.


첫째, 스마트폰 타이머를 활용하기. 스마트폰은 집중력을 흐트러 뜨리는 주범이기도 하지만 스마트하게 잘 활용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기다. 글을 쓸 때 일단 스마트폰을 비행기에 태워 보내자. 그리고 타이머를 맞추고 시작 버튼을 누름과 동시에 글쓰기 버튼을 누른다. 1시간 해내고 나면 적절하게 보상을 해준다.


둘째, 인증의 마감시간을 활용하기. 대부분의 일일 챌린지는 밤 11시 59분까지 인증을 완료해야 하는 시스템으로 운영된다. 이건 좀 무모한 방법인지도 모르겠지만 효과는 대단하다. 11시부터 글쓰기를 시작하는 것. 만약 자신이 계획형 인간이라면 이 방법을 추천하지 않겠다. 적어도 계획형 인간은 마감이 임박한 경우 오히려 손을 놔버리게 될지도 모르니.


이 방법을 실제로 한동안 글쓰기 챌린지에 참여할 때 내가 자주 써먹은 방법이다. 의도했던 바는 아니지만 어쩌다 보니 시간은 흘러 밤 11시가 되었고, 인증은 놓치고 싶지 않고, 그렇다고 또 대충 하고 싶지도 않고. 지금 생각하면 무모했다고 생각하지만 그 순간의 몰입감만큼은 다른 어느 때보다 높았던 기억이 난다.


할 수 있다면 미리미리 하는 게 최고지만, 정말 가끔은 나 자신을 벼랑 끝에 세워 보는 것도 방법이라면 방법이지 않을까 싶다.


셋째, 강력한 정체성 세팅하기. 나의 행동을 촉발시키는 내면의 장치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의지, 동기, 결핍, 등 다양한 요인들이 있겠지만 나에게는 '정체성'이 가장 큰 장치였음을 깨닫게 되었다. 나의 내면에는 '글 쓰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이 확고하게 자리 잡혀 있다.


처음부터 정체성이 자리 잡혀 있던 건 아니다. 행동을 반복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반복된 행동이 나의 정체성이 되었다. 그런데 많은 자기 계발서에는 정체성을 먼저 확립하고 나면 행동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고 한다. 요즘 나는 글쓰기 이외의 것들에서는 정체성을 우선 세팅하고 있다.


지난 2년 동안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쏟은 것이 글쓰기다. 브런치, 인스타그램, 블로그, 노션, 메모장, 그리고 불렛저널 등. 나의 일상은 무언가를 끄적이는 시간으로 채워져 있었다. 그중에 브런치 글쓰기는 거의 빼먹지 않고 지속하고 있다. '작가'라는 정체성이 확고하게 자리 잡히는 게 자연스러울 수밖에 없다.


3가지 팁을 적어 보았지만 가장 강력하고 확실하며 오래 지속되는 것은 '정체성 확립'이라고 생각한다. 나머지 두 가지는 급할 때 활용할 수 있는 방법 정도다.


앞서 오늘 글을 쓰지 못하는 건 시간이 없는 게 아니라 마음이 없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여기서 '마음'이 바로 나의 정체성과 맞닿아있는 부분이다. 자신이 스스로를 누구라고 설정해 놓느냐에 따라 우선순위는 달라진다. 그러니 꾸준히 글을 쓰려면 정체성부터 세팅해 보자. 없던 시간도 생겨나는 마법을 경험하게 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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