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부족한 잠에 대한 미련을 한껏 안은 체 하루를 시작한다. 어김없이 늦게 잠자리에 든 탓에 피로가 역력한 것이니 오늘 아침도 어김없이 지켜지지 않을 후회 한 마디를 내뱉어 본다. '오늘은 꼭 일찍 자야겠다.'
요즘 부쩍 어린이집에 가기 싫어하는 아이와 오늘도 한바탕 실랑이를 벌인다. 화와 설득의 시간이 마무리되면 오전 시간이 훅 가버린다. 마음속에 품었던 하루의 시작에 대한 계획은 늘 그렇듯 오늘도 지켜지지 못했다. 계속 이어지는 유쾌하지 못한 기분을 끊어내기 위해 TV를 켰다. 샌드위치와 커피를 마시며 드문드문 보던 일본 드라마 한 편을 보고 나니 마음이 좀 차분해진 듯했다. 이제야 주섬주섬 책과 노트, 그리고 노트북을 챙겨 들고 집을 나섰다.
매서운 추위를 느끼며 카페를 향해 걸어가는 10여분 남짓의 시간, 귓구멍에 꽂은 이어폰에서 잔잔한 겨울 감성의 재즈가 흘러나온다. 나의 늦은 하루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직장인들의 점심시간 무렵은 웬만해선 피하는 시간대이지만 오늘은 더 망설이다간 이도저도 아닌 시간을 보낼 듯하여 무조건 카페에 왔다. 타이밍을 잘 맞췄는지 작업하기 좋은 구석 테이블 자리에 마침 손님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얼른 가방부터 던져두었다. 따뜻한 카푸치노 한 잔 주문하고 돌아와 오늘의 커피 셀프 토크를 읽는다. 원서로 보고 있는 이 책도 어느덧 끝이 보인다. 야호! 올 해는 원서도 1권 읽었다!
집을 나설 때마다 늘 고민한다. 이 책 저 책 둘러보면서 어떤 책을 가져갈까 한참 고민한다. 결국 들고 나오는 건 매일 똑같지만 마음 한 구석엔 늘 이렇게 발걸음을 붙잡는 녀석이 함께 살고 있다.
요즘은 글쓰기에 대한 책을 읽고 있다. 나름 오랜 시간 느꼈던 글쓰기에 대한 갈증해소와 글쓰기 강의를 준비하기 위함이다. 작가이면서 글쓰기 강사인 이동영 작가님의 책은 오래전에 사 두긴 했지만 이제야 읽고 있다. 전문가는 어떤 이야기를 할까 궁금함을 안고 본 책에서 의외로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을 많이 발견한다. '어? 이거 나도 이렇게 하고 있는데?' '어라? 작가님도 나랑 똑같네?'
뭐랄까. 전문가와 유사한 글쓰기 방법을 가지고 있다는 게 신기하고 반가우면서 안도감을 준다. 나 자신이 잘하고 있다는 생각이 용기를 더해준다. 생각해 보면 글쓰기라는 게 어떤 특별한 방법이 있다기보다는 다작을 하다 보면 절로 익혀지는 것들이 의외로 더 많은 듯하다. 나머지는 삶의 경험치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을까에 대해 수시로 떠올려 본다. 전문가들의 고견을 읽으면서 배울 수도 있겠지만 일부러 그렇게 하지 않는 건 생각을 붙잡아 보고 싶어서다. 작가에게 머릿속에 들어찬 물음표는 그 자체로 축복이다. 질문이 사라지면 쓸거리도 사라질 테니. 질문에게 질문하기를 반복해 본다. 그러다 보면 새 모이만큼 찔끔찔끔 던져주는 답을 가지고 한 편의 글을 쓰게 된다.
편협한 생각일지도 모르겠지만 삶의 우여곡절이 많거나 전쟁과 같이 거대한 사건을 겪은 세대가 아닌, 가장 보통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글쓰기는 매 순간이 벽돌 깨기와 같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그런 우여곡절이나 전쟁을 겪고 싶다는 소리는 아니고.
일기는 연인과 헤어졌을 때 가장 잘 쓰인다는 말처럼 고난은 한편으론 창작자에게 영감의 샘이 되어주니 평탄한 삶이라는 축복은 오히려 창작자에게는 고난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글쓰기의 주제 찾기를 어려워하는 건가 싶기도 하다.
나 역시 같은 고민을 하며 살아가는 한 사람이지만 그나마 매일 쓰기를 통해 터득한 나름의 노하우가 있다면 카페에 가는 것이다. 카페에는 다양한 모습이 존재한다. 하나씩 눈에 담고 생각회로를 돌려 나의 이야기에 접붙이면 그게 또 한 편의 글이 된다. 그래서 오늘도 카페에 앉아 글을 쓴다.
하루를 돌아보면 너무 익숙해서 보지 못한 것들이 많다. 여행을 떠나면 어느 식당의 화장실조차 새롭게 눈에 들어오는 것처럼 의도적으로 하루를 낯설게 바라보는 것은 글쓰기를 지속하게 만드는 힘이 된다. 그래서 작가들이 산책을 나서는 게 아닐까. 익숙함에 낯섦 한 스푼 보태기 위해.
사실 우리는 쓸 거리가 없는 게 아니라 낯설게 볼 여유가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오늘 하루 잠깐의 여유를 허락해 보는 건 어떨까. 카페에 앉아 커피 한 잔 마실 시간만이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