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 다가오니 습관적으로 뒤를 돌아본다. 2023년에는 어떤 발자취를 남기며 살아왔을까. 이쯤 되면 자연스레 파이팅 게임의 첫 장면처럼 왼편엔 '후회'가 오른편엔 '성취'가 상대를 겨누며 서 있다. 파이팅 싸인을 알리는 신호가 떨어지기 전까지 낮게 깔린 잔잔한 리듬에 가볍게 몸을 흔드는 게 적잖이 긴장한 모양새다.
그동안의 전적은 후회가 압도적으로 승리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지만 늘 그랬다. 돌아보면 남는 건 후회뿐이었으니. 덕분에 새해 첫 달은 늘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후회라는 녀석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끝은 예견한 것처럼 그저 비웃을 뿐.
올 해는 좀 다르려나? 다르길 진심으로 바라본다.
요즘 글쓰기 강의를 준비하면서 나의 글을 자주 돌아본다. 단순히 써 놓은 글만 다시 읽어보는 것은 아니고 글 쓰는 나 자신과 글에 담아 전하고 싶은 마음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그동안 나는 나를 쏟아내는 것이 글쓰기의 목적이었다. 덕분에 나와의 관계가 친밀해질 수 있었다. 이해와 화해의 시간을 보내고 나니 이제는 전하고 싶다는 마음이 슬몃 올라온다. 무엇을 전할 수 있을까, 요즘 내내 이 생각을 하며 지낸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글을 대한 마음이다. 돌아보면 언제나 글쓰기에 진심이었다. 벌써 10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학위 논문으로 삽질에 삽질을 거듭하던 그때만 해도 '다시는 글쓰기는 내 인생에 없다!'라고 굳건히 다짐했는데, 지금 난 그 어떤 것보다 진심이라는 말을 내뱉고 있으니 사람이 이렇게 변해도 되나 싶기도 하다.
살아보니 알겠는 건 글 쓰는 시간은 내가 나와 마주하는 가장 고요한 시간이라는 것이다. 소리 없는 대화의 시간. 표정도 없지만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느껴지는 시간. 그게 글 쓰는 시간이다. 2년 전 다시 글쓰기를 시작하게 되었을 때만 해도 목표는 1년이었다. '딱 1년만 해보자'라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어느덧 2년이 넘어섰다. 그리고 이제는 글을 대하는 마음이 사뭇 진지해졌다. 아니, 작가로 불리는 게 감사할 뿐이다.
그래서 전하고 싶은 또 다른 마음은 부디 지금이라도 글쓰기를 시작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자주 이야기 하지만 글쓰기는 어려우면서 동시에 어렵지 않다. 잘 쓰기란 한 없이 어렵지만 내어놓기란 한 없이 쉽다. 그러니 우선 내어놓기부터 시작해 보자. 우선 나 스스로 해갈의 즐거움을 맛보는 게 먼저다. 작게 시작하고 꾸준히 해보는 거다.
마지막은 함께 하는 것! 무릇 혼자보다는 함께가 멀리 가는 거고 오래가는 법이다. 아주 살짝 광고 아닌 광고를 해보자면 지난 1년 동안 글쓰기 루틴 만들기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작년 12월에 첫 기수를 시작한 게 어느덧 13기째를 모집 중이다. 그중에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함께 쓰고 계신 작가님들도 있다. 나 역시 그분들이 계셨기에 지금까지 멈추지 않고 올 수 있었고 또한 글쓰기에 더욱 진심을 담을 수 있었다.
글쓰기는 태생 자체가 고독한 작업이다. 그 마음을 공감해 주는 사람들이 곁에 있다는 것 만으로 위안이 된다. 그리고 글을 통해 다른 이들을 만나는 시간은 일상에 설렘을 안겨주기도 하니 꼭 추천하고 싶다.
솔직히 내가 무어라고 글쓰기에 대해 이야기 하나 싶은 생각에 빠질 때도 있지만 그냥 나는 글쓰기에 덕질을 하고 있는 한 사람이라 여겨주길 바란다. 덕후는 원래 하지 말래도 자랑하는 게 디폴트 아니던가. 부디 12월에는 글쓰기를 시작할 수 있길 바라본다. 글쓰기로 남들보다 한 달 빠르게 새 해를 시작해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글쓰기를 삶에 들이고 싶다면, 작가님을 글루틴으로 초대합니다.
(자연스러웠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