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글을 안 쓰면 그게 작가인가, 짜가지.’
주말 늦은 밤. SNS에 잠시 머물며 지인들의 소식을 업데이트한 뒤 가볍게 1분 플랭크 자세 3세트를 마쳤다. 이제 씻어야지 하는데, 머릿속에 짧은 한 문장이 팝업창처럼 튀어 올랐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서둘러 글쓰기 버튼부터 눌렀다.
괜히 혼자 찔리는 마음이다. 이번 달은 SNS에 집중하느라 브런치에 글을 매일 쓰고 있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예 안 쓰는 것도 아닌데, 작가 페르소나가 자꾸 쿡쿡 찔러대는 기분이다. 근데 또 솔직히 고백하자면 안 쓰니까 잘 안 써진다. 대신 그만큼 SNS에 올릴 콘텐츠는 꾸역꾸역 뽑아내고 있다.
그러고 보면 사람이 참 신기하다. 집중하고 있는 하나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는 기분이다. 아무리 이전까지 꾸준히 해왔던 것일지라도. 나머지도 같은 퍼포먼스를 낼 수는 없는 걸까? 욕심인 건가?
아무튼 짜가 작가가 되고 싶지는 않아 씻으러 들어간 화장실에 가만히 서서 생각나는 몇 문장을 적어 내려가는 중이다. 근데 또 생각해 보면 이것도 신기하다. 글쓰기 시작한 지 2년 되었더니 안 쓰는 게 어색한 지경이 돼버렸다는 게. 지난 수십 년을 글과 무관하게 살아왔는데 기껏 2년이 사람을 이렇게까지 바꿔 놓을 수 있는 걸까?
나의 글쓰기는 언제나 불현듯 시작된다. ‘자, 이제부터 글을 써볼까?’하는 준비도 없이 마치 래퍼처럼 와다다다 외치는 내면의 소리가 들리면 얼른 받아 적기부터 한다. 생각은 언제나 쉽게 증발하여 버리기에 한동안은 열심히 글감 노트에 메모했다. 그렇게 쌓인 기록은 대부분 글로 발행되었다.
어느 때부터는 메모를 건너뛰기 시작했다. 원래 기갈난 생각은 늘 샤워할 때나 화장실에서 볼일 볼 때 자주 떠오르는 법이다. 그래서 늘 폰을 가지고 들어갔는데, 요즘은 영상 작업을 자주 하다 보니 수시로 충전기에 꽂아놔야 한다. 그 덕에 맨손으로 화장실에 들어갈 때가 많다.
떠오른 아이디어가 그대로 잊힐 땐 안타까웠지만 가끔은 생각이 자유롭게 드나들도록 굳이 억지로 붙잡지 않는 것도 그 나름 좋지 않을까 싶어 흘려보낸다. '잊힌 생각은 진즉 내 거가 아니다!'라고 여긴다기보다는 생각의 흐름을 계속 유지해 보고 싶었다. 막상 해보니 안타까운 건 여전히 안타깝지만 그래도 생각 근육이 더 유연해진 기분이 들기도 한다. 물론 기분일 뿐이지만.
글쓰기에 익숙해지면 가끔은 이런 객기를 부려 보는 것도 재밌다. 얼마나 머릿속에 남아있을까 하는 생각이 꼭 나와 내기를 하는 기분이다. 글을 쓴다는 게 마냥 즐거운 일은 아니다. 가벼우면 가벼운 대로 아쉬움이 남고, 힘을 주자니 부담스럽고. 깊어지자니 생각의 깊이가 빗물 고인 아스팔트 도로 정도니. 그렇지만 꾸준히 오래 하려면 뭐든 재밌어야 한다. 그러니 자기만의 피식 포인트를 만들어 보는 것도 좋다. 굳이 좋지 않은 기억력을 가지고 나 자신과 내기하는 것처럼.
이제 연말도 2주 정도 남았다. 나사를 다 풀어 재끼고 보내도 될 만큼 우리 모두 한 해를 열심히 살아왔겠지만 짧게라도 글을 쓰면서 하루 20분이라도 나의 내면과 독대해 보는 건 어떨까. 23시간 40분은 정신줄을 내려놓고 보낼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