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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는 영혼의 무게를 재는 것

by 알레

나는 왜 글을 쓰는가? 이 물음은 반복하고 또 반복하지만, 여전히 나에겐 새롭다. 하나의 답을 발견하면 뒤이어, 또 다른 답이 나온다. 마치 양파를 손질할 때처럼 어떤 순간엔 매운 기에 눈을 질끈 감게 되지만 씻어내듯 눈물을 흘리고 나면 또 다른 나를 만나게 된다.


나는 지난 시간 글을 쓰며 내 영혼을 살찌웠다. 삶 속에 젖어 들어 살아가는 날 동안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던 나 자신의 이야기를 글에 담아 써 내려가기를 2년. 오늘 다시 나의 글 쓰는 이유를 돌아보니 이제야 제법 살집이 오른 나의 영혼을 깨닫는다. 생기 하나 없던 지난날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지금은 단단해진 나를 보게 된다.


글을 쓰며 비로소 나 자신을 마주했다. 마음의 소란을 적어 내려가며 평온함을 느꼈다. 자판을 두드리는 시간과 손을 기록하는 시간은 온전한 나만의 시간이었다. 숨소리와 낮게 깔린 연주곡, 그리고 연신 키보드를 누르는 소리 외에는 어떤 소리도 방해가 될 뿐이다. 화면을 바라보는 시선은 깜빡이는 커서처럼 쓰이는 활자를 쫓아 다음의 이야기를 짓는다.


글쓰기가 신기한 건 내가 나의 마음과 생각을 글에 담아 표현하는 건데 글이 거울이 되어 다시 나를 비춘다는 것이다. 마치 거울 속에 비친 얼굴을 바라보며 표정을 잔뜩 일그러뜨렷다 다시 두 눈을 치켜뜨고, 한 건 입을 벌리며 활짝 웃었다 다시 무표정 상태로 돌아오기를 반복하듯, 차오르는 생각을 꺼내었다 지우고 수정하기를 반복한다. 이왕이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싶어 몇 번이고 백스페이스를 누른다.


글쓰기는 신원 미상이 된 나를 다시 찾는 것


이주희 작가님의 책 <이토록 멋진 오십이라면> 속에 등장하는 한 구절이 가슴에 훅 들어왔다. 그리고 이 한 구절이야말로 지난 시간 나의 글쓰기를 표현할 수 있는 문장이라고 생각했다.


나를 안다는 것이 무엇일까. 내가 나에게 깨어있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 가령 매일 아침 공복 상태로 체중계 위에 올라서며 육신의 중량을 확인하고, 가벼운 움직임을 통해 몸 곳곳의 상태를 점검하는 것처럼, 글을 쓴다는 건 결국 내 영혼의 무게를 재는 것이지 않을까? 꾸준한 측정을 통해 영혼의 상태를 깨닫는 것이 곧 나를 알아가는 것이지 않을까?


나는 왜 글을 쓰는가에 대해 매번 같은 질문을 던지며 여러 답을 내어 보았지만, 결론은 늘 하나였다. '나를 아는 것.' 나는 그저 나를 알아가는 시간을 글 속에 담아 기록할 뿐이다. 그리고 그 궤적을 돌아봤을 때 바라는 건 조금씩이라도 성숙해졌으면 한다.


이제 글쓰기는 삶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일상이 되었다. 이제는 글쓰기가 곧 내 영혼의 호흡이라고 편안하게 말할 수 있다. 숨쉬기조차 버거운 순간에는 언제나 글을 쓰며 호흡을 가다듬어 왔기에. 그래서 계속 쓰게 된다. 아니 쓸 수밖에 없다.


나는 언제나 작가이기 전에 글 쓰는 사람이길, 그리고 글을 쓰는 사람이기 전에 기록하는 사람이길 바란다. 그래서 더 편안하게 쓸 수 있다. 매일 아침 자고 일어나 체중계에 올라갈 때처럼, 아무도 보지 않는 내 영혼의 무게를 오늘도 재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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