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따라 그저 멍하니 모니터를 바라봤다. 평소와 다른 하루를 보내고 느지막이 자리에 앉았더니 벙어리가 된 듯 한 마디를 제대로 써 내려가지 못한다. 내가 나에게 글쓰기로 주어진 시간은 딱 1시간. 짧은 시간 안에 글을 써 내려가는 게 제법 익숙해졌지만, 탄력을 받기까진 언제나 부하가 걸린다. 마치 충분한 예열을 가하지 않은 채 가속 페달을 꾹 밟는 느낌이다.
어제는 다이어리에 지난 한 주에 대한 리뷰를 기록했다. 전반적으로는 나름 루틴을 잘 유지해 온 편이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아침 시간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 책을 더 읽고 싶거나 생각에 잠기고 싶어도 오후에는 이미 짜인 익숙한 습관대로 흘러가니 더 이상 틈을 만들어 내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오늘처럼 아침이 돼도 풀리지 않는 피로감이 온몸을 짓누를 때면 더욱 현실과 이상의 괴리감이 크게 다가온다.
'어떻게 하면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게 자연스러워질 수 있을까?' '굳이 애쓰는 게 아니라 즐거울 수 있을까?' '유료 챌린지 모임이라도 찾아 들어가야 하려나?' 별 별 생각을 다 해보지만, 아직 뾰족한 방법을 찾지 못했다.
언제나 마음속에선 이상적인 하루를 상상한다. 이른 아침 하루를 시작하고, 말씀 묵상을 한 뒤 독서를 시작한다. 생각을 기록한 뒤 글쓰기를 시작한다. 요거트와 견과류로 가볍게 허기를 달래주고 아이를 깨워 등원시킨다. 집에 돌아와 정리를 하고 아내와 점심을 먹으며 드라마 한 편을 본다. 잠시 낮잠을 잔 뒤 다시 책을 읽는다. 하원 시간 전까지 오늘 올릴 콘텐츠 작업을 마친 뒤 아이를 하원시킨다. 저녁에는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낸 뒤 아이를 재우고 다이어리 기록과 함께 하루를 정리한다. 그리고 잠자리에 든다.
늘 이런 하루를 상상하지만, 현실은 이 중의 많은 것들이 소거되거나 짧고 굵게 진행된다. 될 것 같은데 이상하게 된 적이 없는 하루. '어쩌면 이상적인 하루를 보낼 체력이 없는 건 아닐까?' 가끔은 이런 생각마저 든다. 올겨울은 겨우내 비염에 시달리는 걸 보니 정말 체력이 많이 떨어진 것 같긴 하다.
지난 연말부터 올해는 꼭 생활의 안정을 위해 수익화를 실현해 보겠다는 생각을 되뇌고 있다. 방향을 고민했고 목표도 세웠는데, 생각을 거듭하면 할수록 한 지점으로 귀결됨을 느낀다. 수면과 식습관이 잘 잡힌 건강한 생활 습관. 삶의 기초 중의 기초이지만 기초를 간과하고 살아온 세월에 질타받는 기분이다.
이제야 비로소 깨닫는다. 왜 드라마 미생에서 원하는 것이 있으면 체력부터 키우라고 했는지. 삶이 참 야속할 때가 있다. 머리로는 알지만, 가슴으로 깨달아지기까지 한참의 시간이 걸릴 때가 그렇다. 40대가 이런 소리할 나이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지금껏 나는 미래의 에너지를 끌어다 살고 있었다. 이제 그마저도 충분치 않은지 자주 골골대는 나 자신을 반성하는 마음으로 돌아본다.
그래도 쥐어 짜내듯 오늘의 글쓰기를 이어 나가본다. 뭐 매일 쓰다 보면 이런 날도 있고 저런 날도 있는 거니까. 그저 나와의 약속을 지켜낸 것에 만족하자. 내일은 또 달라지겠지.